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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태의연한 법문부터 바꾸자

기자명 법보신문

한인사찰에 온존하고 있는 전근대적인 관습이 한국불교를 전파하는 데 장애가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오늘은 한인사찰에서 이루어지는 법문의 문제점을 지적할까 한다. 사실 법문은 기도나 명상보다 더 중요하다. 이민자들이 바쁜 생활 속에서 부처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재충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인사찰에서 이루어지는 법문은 한국 내에서 이루어지는 법문과 별 다를 바 없었다.


우연히 들렸던 한인사찰에서 젊은 비구 스님의 법문을 들은 적이 있다. 신세대적 감각을 갖춘 스님이었기 때문에 내심 큰 기대를 했지만 그날의 법문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법문의 요지는 많이 소유할수록 번거로운 일이 많아지니까 무소유가 좋다는 것이었다. 큰 집을 장만하면 좋을 것 같지만 실제로 잔디 깎을 일이 많아지는 등 귀찮은 일만 늘어난다는 이야기였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았더니 신도들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


그날의 법문은 아무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물질적인 부와 안정을 꿈꾸며 먼 이국까지 온 한인들에게 ‘소욕지족’이라는 수행자적 가치는 그들의 삶과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였던 것이다. 하루하루 고달픈 생존을 이어가는 한인들에게 돈은 절박한 문제이다. 잔디 깎는 일이 힘들다면 돈을 더 많이 벌어 정원사를 두면 되지 그것이 귀찮다고 큰 집을 마다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넓은 마당에 수영장 딸린 집은 모든 한인들의 꿈인데, 그것을 부정하면 그들의 이민 자체를 부정하는 꼴이 된다.


이는 한인들을 대하는 스님들의 태도가 얼마나 안일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그 법문에서는 한인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그들에게 한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가치관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불교가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권위적이고 높은 위치에서 하는 타성에 젖은 법문에 불과했다. 법문은 무엇보다 재미있고 유익해야 하는데, 감동은커녕 목사들의 설교보다 재미없는 법문을 들으려고 올 젊은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는 세속적 가치와 결합하여 ‘부자가 천당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는 성서의 가르침을 버리고 부자들을 위해 연옥을 만들기까지 했다. 루터나 칼빈의 해석을 통해 기독교는 자본주의적 가치와 결합하였으며 이는 교회 성장의 기폭제가 되었다. 이 결합이 너무 지나쳐서 사회적인 성공이나 물질적 부를 쌓은 신도를 일으켜 세워 공공연히 칭찬하고 은연 중 헌금을 강요하는 등 물질주의가 특히 한인교회에 팽배하며 그것이 한인 2세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대적 가치를 부정하는 반물질주의가 대안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전근대로의 퇴행이며 그 배후에서는 오히려 물질주의와의 결탁이 이루어지고 있다. 당시 그 절에서는 법당 신축불사가 한창이었다. 신도들의 보시로 법당을 지으면서 가난을 찬양하는 법문은 도대체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였다.

 

▲명법 스님

이제 불교도 현대사회에 맞게 재해석되어야 하며 법문은 신도들의 삶에 밀착되어야 한다. 물질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소유를 부정하기보다 나눔의 정신을 강조하는 것이 더 좋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스님들의 타성에 젖은 사고방식과 법문, 그리고 법문 스타일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만족에 빠져 사회와의 연결 고리를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전통적 가치를 현대적 가치와 조화시키는 새로운 비전이 요구된다.

 

명법 스님 운문사·서울대 강사 myeongbeo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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