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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불교학술원장 인환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상대· 분별 떠날 때 걸림 없는 길 걸어”

1·4후퇴 마지막 배 승선 위해
원산 앞 겨울바다에 뛰어 들어

 

오대산 적멸보궁 용맹정진 후
日·美· 캐나다로 유학 대장정

 

 

▲ 인환 스님

 

 

‘무(無)’ 화두로 유명한 조주 스님은 승찬 스님의 ‘신심명’ 첫 구절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으나 오직 취사선택을 피할 뿐이다”는 ‘지도무난 유혐간택(至道無難 唯嫌揀擇)’을 무척이나 좋아한 듯하다. ‘벽암록’ 제2칙 ‘조주의 명백함도 필요 없다(趙州不在明白)’에서 보이듯 ‘지도’를 들어 많은 납자들을 제도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자신이 머문 암자 이름을 ‘지도암(至道庵)’이라 한 데서 그 연유를 엿볼 수 있다. ‘신심명’의 첫 구절이 유명하듯 영가 현각 스님의 ‘증도가’ 첫 구절 “모든 일 끝마치고 한가한 도인 경계, 망상도 멀리 않고 진리도 원치 않네”의 ‘절학무위한도인 부제망상불구진(絶學無爲閑道人 不除妄想不求眞)’도 선가에서는 무척이나 애용하는 한 구절이다.


최근 동국대 불교학술원장을 맡은 경국사 한주 인환 스님을 친견하러 가는 도중 내내 이 글귀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간택만 하지 않으면 도는 어렵지 않다’는 구절과 ‘망상도 멀리 않고 진리도 구하지 않는 한가한 경계에 이른 사람이 도인’이라는 말에 비추어 보면 승찬 스님은 ‘하지 말라’하고, 영가 스님은 ‘하고, 말 것도 없다’고 한다. 승찬, 영가 두 선사의 일언 속에는 분명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 숨어 있을 것이다.


이 물음을 굳이 인환 스님에게 여쭈려 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수행정진은 물론 교학에도 남다른 혜안을 갖고 있는 스님이기 때문이다. 교학 분야에 있어서도 한국불교학은 물론 일본 유학을 통한 교학섭렵에도 남다른 노력을 보였다. 일본 동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몇 안 되는 인재 중의 인재다.


스님들의 출가 인연이 범상치 않지만 인환 스님의 출가인연은 정말 드라마틱하다. 스님 말씀대로 “1·4후퇴 당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것”이 출가의 계기가 됐다. 인환 스님의 출생지는 함경남도 원산.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스님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1950년 12월, UN군이 북쪽 압록강, 두만강까지 진격해 갔다가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후퇴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인환 스님도 형과 함께 남쪽으로 피난하고자 원산항으로 향했다. 사람을 실어 나를 어선은 작은데 피난민은 이미 인산인해를 이뤘다. 배를 타고자 하는 사람들의 뒤엉킴 속에서 그만 형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 만 17세의 아이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있어야만 했다. 어느 순간 형이 보였다. 형은 이미 마지막 배에 승선해 있었고, 배는 수많은 피난민을 뒤로 한 채 떠나고 있었다. 순간, ‘저 배를 타지 못하면 죽는다’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시리고 찬 겨울바다에 뛰어 들고는 사력을 다해 배를 향해 헤엄쳐 갔다. 이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이 ‘저 아이는 구해야 한다’고 소리치자 배가 멎었고, 사람들은 그를 구해냈다.


그의 피난길은 부산으로 이어졌다. 겨우 살았지만 피난길에 본 처참한 광경은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굶주림을 해결하려 무슨 일이든 해야 했지만 손에도 잘 잡히지 않았다. 그 때 한 할머니를 만났다. 불심이 돈독했던 할머니는 그에게 불도수행을 권했다. 불교가 무엇인지도 전혀 알지 못했던 그는 “생각해 보겠다”고만 할 뿐 며칠이 지나도록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열흘째 되는 날 할머니는 “결심 했느냐?”고 물어왔다. 순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결심했다”고 답했다. 자신이 가야할 길임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할머니와 함께 부산 선암사에 이르렀을 때는 7월 백중날이었고, 피난 온 스님들이 경내를 꽉 채우고 있었다. 향곡 스님이 법상에서 주장자를 내려치고는 수좌들에게 물었다.


“창천(蒼天)! 창천! 누가 이 뜻을 아는가?”
한 수좌가 갑자기 일어나 법상을 뒤집으려 했다. 향곡 스님은 이 수좌의 돌발행동(?)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일렀다.
“안 돼, 안 돼! 그것 가지고는 안 돼!” 향곡 스님이 주장자로 그 수좌의 어깨를 살짝 내리치자 수좌는 예를 올리고 물러났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두 대립을 동시에 보았던 것이다. 하나는 땅을 두고 벌이는 총칼의 대립, 하나는 ‘진리’를 두고 벌이는 ‘말의 대립’. 그는 그 자리서 원허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신심명’과 ‘증도가’의 첫 구절에 대한 스님의 견해를 부탁드렸다. 스님은 ‘절학’이라 해서 수행을 그만 둔다는 게 아니고, ‘무위’라 했다 해서 놀며 게으르게 산다는 것 또한 더더욱 아니라고 전제 한 뒤, ‘절학무위한도인’을 풀어나갔다.
“불도를 배워 마치고 진실한 마음을 깨달아서 모든 분별시비를 초월한 경지를 말합니다. 수행하여 깨닫고, 또 깨달은 뒤에는 그 깨달았다는 것까지도 완전히 놓아버리는 것이지요. 모든 시비와 분별을 초월한 뒤에는 이전에 깨치지 못했던 때와 같이 중생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평범하게 다시 녹아들어가는 겁니다. 360도 돌아 원점에 와서는 이제 자신을 위한 것은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으니 바로 쉼 없이 아낌없이 하화중생(下化衆生)하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분별시비’를 하지 말라는 승찬 스님, 분별시비를 초월한 경지를 ‘한도인’이라고 한 현각 스님의 메시지는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분별시비를 하지 않거나, 초월하려면 무엇이 전제되어야 할까?


“‘증도가’ 첫 구에 나와 있듯이 ‘무명 그대로가 여여한 불성이고, 허망한 사대육신 그대로 법신’이라는 무명실성즉불성 환화공신즉법신(無明實性卽佛性, 幻化空身卽法身)을 유심히 보아야 합니다. 무명이란 마음의 눈이 멀고 어두워서 사물의 도리를 모르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번뇌 망상의 근본이 바로 이 무명이지요. 그러나 무명은 마음이 어두워져서 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는 이른바 착각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상태일 뿐이므로 어떠한 실체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제까지 미(迷)하여 있었음을 스스로 바로 알게 된다면, 그 무명이 바로 불성임도 체득할 수 있습니다.”
불성은 이미 내 안에 신령스럽게 존재하고 있음에도 미혹에 가려 그 불성을 발현시키지 못한다는 뜻이리라. 그러니 그 미혹만 거둬 낸다면 그 자리가 바로 불성의 자리임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방편이 수행임에는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인연 따라 생겼다 없어지고, 없어졌다가 다시 생겨나는 등 변화가 심해 실체가 없는 것이 ‘환화(幻化)’입니다. 우리 육체도 여러 인연과 요소가 임시로 결합해서 생겨나 이뤄졌다가 인연이 다해 죽으면 다시 흩어져서 그림자도 자취도 남기지 않고 없어져 버립니다. 마치 꿈(夢幻)과 같고, 헛꽃(空華)과 같이 공으로 돌아간다 해서 공신(空身)이라 하는 겁니다. 법신은 진여법성을 몸으로 삼는다는 뜻이지요. 형상이 없으면서도 널리 우주법계에 가득하여 없는 데가 없으며, 생하고 멸함도 없습니다. 이를 두고 현각 스님은 ‘공신’이 곧 ‘법신’이라 이르고 있습니다. 크나 큰 가르침입니다.”
법신을 어디 먼 데 가서 찾을 일이 아니다. 지금의 사대육신에서도 체득할 수 있음을 인환 스님은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스님은 참선정진을 통해 나와 남이 그리고 의지하고 있는 세계가 본래 공하여 대립이 끊어진 자리임을 깨달을 때 ‘나와 이 세계가 그대로 불세계’임을 명백하게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주관과 객관이 다 공하여 생사도 없음을 파악한다면 분별시비도 넘어 한가한 도인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리라.


인환 스님은 두 손을 비유로 한마디 일렀다.


“나의 오른손과 왼손을 모양으로 보는 현상계의 관점에서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지요. 그러나 나의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오른손도 왼손도 나의 생명이라는 하나의 삶을 함께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뿐인 생명이 내 신체의 온갖 곳에 두루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았다 해서 두 손이 아닌 게 아닙니다. 분명 손은 두 개거든요. 하지만 무조건 두 손이라는 관념이나 개념에만 사로잡혀 볼 때의 눈과 두 손도 결국 하나라는 사실을 직시한 후의 혜안은 다릅니다. 혜안을 가졌다면 두 손은 물론 두 발도 예전보다 더 유용하게 쓸 겁니다. 무용이면서도 묘용이지요.”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잔다’는 고구정녕한 옛 선지식의 일언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인환 스님은 무엇보다 수행 중에 일어나는 체험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정진했던 때를 떠올렸다. 출가 후 선방에서 5년 동안 정진한 스님은 해인사와 통도사에서 운허 스님 회상 아래 7년간 수학했다. 이 기간 동안 웬만한 경전 공부는 두루 다 섭렵했고, 통도사에서는 3년을 보내며 ‘화엄경’ 80권을 세밀하게 공부했다. 강원 교육을 마친 스님은 걸망 하나 짊어지고 만행 길에 올랐다. 이 길에도 법이 있었다. 해가 지기 전 절집에 다다르면 마당부터 쓸었다. 날이 밝기 전에 해우소를 청소해 놓고는 날이 밝기 전에 길을 나섰다.

 

두 손도 생명관점서 보면 한 손
깨치기 전후 혜안은 분명 달라

무명 거둔 그 자리가 불성자리
공한 줄 알면 나·우주 한 세계


“운수납자라 해서 특권이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주지 스님은 물론이고 그 절에 머물고 있는 대중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되거든요.”


하루에 딱 한 곳에서만 머무르며 두 달 간 가다보니 오대산에 이르렀다. 적멸보궁을 참배하고 나오는데 신심이 저절로 일어났다. 그 동안의 원칙을 깨고 21일 동안 머물렀다. 1시간 절하고, 1시간 기도한 후, 1시간 동안 참선에 들었다. 하루 한 끼 공양에 이 프로그램을 24시간 가동시켰다. 잠도 자지 않는 용맹정진 그 자체였다. 회향하는 날 적멸보궁을 나서니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뜰 앞의 나뭇가지마다 금색광명을 내뿜는 부처님이 자리하고 계셨습니다. 뭐라 형언할 수는 없지만 환희심 그 자체였지요. 그 때 얻은 힘으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랬다. 스님의 학구열은 강원에서 그치지 않았다. 동국대 불교대학에 진학한 후 1966년까지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고, 일본으로 건너가 고마자와대학과 도쿄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이후 그 어렵다는 도쿄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일본 유학길에 오른 이유가 있었다.


“당시에도 우리는 묵조선을 무작정 ‘부처놀이’라며 배격하거나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그만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요, 누구한테 물어도 속 시원히 답해주는 분이 없었습니다.”
10년간의 일본 유학 이유가 ‘물음’ 하나에 있었던 것이다.


“간화선 법맥을 이은 우리가 볼 때 묵조선 수행법이 마땅치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묵조선의 단점만 눈여겨 확대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간화선도 최상승법이라 하지만 단점도 분명 있습니다. 오히려 지도체계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참고해야 할 게 묵조선에 있다고 봅니다.”


일본 유학을 마친 후엔 곧 바로 미국과 캐나다로 발길을 돌렸다. 이유는 ‘언어 공부’ 때문이었다.
“공부의 외연을 넓히려면 영어는 물론 산스크리트어도 공부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학의 진면목도 더욱 면밀히 볼 수 있습니다. 한국 선불교를 알려야 한다고 하지만 언어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합니다. 저는 이제 80을 넘겼으니 후학들이 더 나서주기 바랍니다.”


1996년 동국대에서 정년퇴임 한 인환 스님은 교양대학과 사찰에서 법을 전하다 다시 동국대 불교학술원장으로 돌아왔다. 인환 스님은 “불교학술원에서의 제 역할은 자동차 엔진 오일과 비슷할 것 같다”며 “각 부서의 유기적 협력을 토대로 학술원이 한국불교학 연구 중심의 세계적 연구기관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원력을 피력했다.


선교를 섭렵하고 내외가 명철한 인환 스님이기에 학술원의 새 전기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환 스님이 펴낸 ‘증도가’는 수행정진의 길을 가는 이에게 지남 역할을 톡톡히 해 주는 것 같아 한번쯤 열독해 주기 바라는 마음 크다. 

penshoot@beopbo.com




인환스님
1952년 부산 선암사에서 원허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전통강원과 선원에서 체계적인 수행을 거쳐 1964년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했다. 1966년 동국대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한 스님은 1975년 일본 도쿄대학에서 ‘신라불교 계율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2년 동국대 불교대학 교수로 부임한 후 1996년 정년퇴임 때까지 불교대학장, 불교문화연구원장, 정각원장 등의 소임을 수행하며 후학양성에 매진했다. 캐나다 토론토 대각사 창건을 비롯해 온타리오 선센터, 미국 시카고 불타사 등 해외에서 포교활동을 펼쳤으며, 서울 정릉 경국사 한주이기도 하다. 현재 동국대 불교학술원장 겸 동국역경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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