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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독-무지①

기자명 법보신문

현상은 ‘조건’이란 인연으로 드러난 겉모습
조건 지어진 일체 존재가 무상임을 깨달아야

‘성유식론’에서 무지는 현상과 본질에 대해 어둡고 알지 못하여 그릇된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무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상과 본질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현상은 우리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대상의 모양과 상태를 말하고, 본질은 현상으로 드러나는 그 모양과 상태의 고유한 성질이다. 그러니까 현상은 그 현상의 본질이 조건과 상황이라고 하는 인연으로 인해서 드러나는 겉모습이다. 이를 ‘현상=본질×조건(상황)’ 이라는 등식으로 표현해 볼 수도 있다.


현상의 특징은 무상(無常, impermanence), 즉 변화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에 조건 지어진 것은 일체가 다 무상하다고 했기 때문이다. 위의 등식에서도 볼 수 있듯이 조건이나 상황이 바뀌면 현상도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상은 무상한 것이다. 한편 현상의 본질은 불변이다. 무상하지가 않다. 왜냐하면 본질은 조건이나 상황으로부터 자유롭고 조건 지어지지 않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상의 본질 자체는 조건 지어진 것이 아니라서 무상하지가 않다. 그런데 부처님의 가르침에 무상한 것은 그 실체가 없기 때문에 무아(無我, no-self)라고 했다. 그래서 일체 현상의 본질은 무아다.


이제 답이 나왔다. 일체현상은 상황과 조건에 따라서 변화하기 때문에 무상하다는 사실과 또 무상하기 때문에 그 본질은 무아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무지하고 어리석다는 뜻이다. 그리고 무지하고 어리석기 때문에 현상을 경험하는 태도나 현상을 대하는 반응이 그릇되고 해석이 올바르지 않고 왜곡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 그렇게 어리석기 때문에 현상을 탐하고 현상에 대해 화를 낸다. 그래서 종국에는 고통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변했다고 배신감을 느끼고 화를 낸다. 사랑도 조건에서 탄생하고, 조건 지어지는 무상함임에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갈망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조건 없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랑에 조건이 붙지 않으면 사랑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라 자비심, 연민심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물질, 명예, 사람을 탐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죽고 고통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반면에 자연과 일체 존재들을 더 널리 더 깊이 차별 없이 사랑함으로서 행복하고 충만된 삶을 사는 이는 많지 않다.


무상에 대한 깨달음은 집착과 탐욕의 격정을 자애로움과 연민심으로 전환시켜 준다. 그러나 그 고통을 무상에 대한 깨달음으로 대치하지 못하게 되면 사랑의 좌절과 허무, 분노에 휩쓸리거나 제2, 제3의 욕망으로 끊임없이 전전하게 된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불교는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근본 처방으로 무지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깨닫고자 한다. 조건 지어진 일체의 존재들은 무상하고 고유한 자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서 또 한 가지 명료하게 이해할 것이 있다. 조건이라는 개념이다. 조건 지어졌다는 것의 의미다. 조건은 셀 수 없이 무수히 많지만 크게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조건이다. 그러니까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것은 모두가 무상하고, 무아라는 의미다. 세상 만물 가운데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을 우리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서광 스님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그 둘의 조합이든 우리의 삶에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것은 없다. 오직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변화하지(무상) 않고 존재하는 존재는 없다(무아)는 그 하나의 진리를 제외하고는. 그래서 부처님은 무상과 무아의 이치를 깨달으면 열반에 이르고 깨닫지 못하면 고통의 한가운데 머물게 된다는 사실만큼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진리임을 도장을 찍어서 선포하신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삼법인 또는 사법인). 


서광 스님 동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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