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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독-무지②

기자명 법보신문

고통은 중도서 벗어남으로 일어난 현상
진리의 본질은 치우침 없는 자연스러움

우리는 지난 호에서 무지는 결국 일체현상의 무상성(無常性, the nature of impermanence)과 무아성(無我性, the nature of selflessness)에 대한 알지 못함을 의미하고, 우리가 겪는 고통은 그 알지 못함의 크기와 정비례한다는 사실을 이해했다.


 따라서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은 무상과 무아에 대한 깨달음과 직결되어 있는데, 문제는 우리들 대부분은 무아나 무상의 가르침은 너무 심오하고 차원 높은 것이라서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주 스님은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다고 했다. 그러니까 무아와 무상의 가르침은 참다운 진리이므로 분명 어렵지 않아야 한다. 사실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정신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세상만물은 절대적인 것이 없고, 모두 시간과 장소에 따라 변화한다는 상대성은 따로 이해할 것도 없을 만큼 당연하다. 진리라고 말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로 너무나 단순하고 당연한 사실을 자각하기만 하면 그게 바로 깨달음이라고 한다. 알고 보면 깨달음처럼 간단하고 쉬운 것도 없다. 그런데 그것을 실제 관계와 삶속에서 적용하고 실천하는 일은 왜 그렇게도 힘이 드는 것일까?


흔히 깨달음은 몹시 심오하고 대단한 것이라서 아무나 쉽게 깨달을 수 없고 특별한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깨닫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과 에너지, 삶을 바쳐서 수고해야 된다는 무의식적 관념이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다. 그 뿐인가. 평생을 애쓰고도 깨달음은 보장되지 않기에 다음 생까지 닦을 것을 예약하는 이들도 있다. 혹시 그 자체가 깨달음에 대한 환상, 즉 무지가 아닐까.


무아와 무상의 성질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공(空)이 되고, 공은 다시 중도(中道)의 이치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니까 일상에서 중도를 벗어나서,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무리하면 그 결과로 얻어지는 현상이 바로 고통이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 때문에 우리는 깨닫기 위해서 그토록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가. 다소 역설적 표현이긴 하지만 우리는 치우치지 않기 위해서 엄청나게 치우쳐왔고 무리하지 않기 위해서 엄청나게 무리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깨달음은 결코 깨닫고자 분투하는 이들에 의해서는 성취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진리의 본질은 자연스러움이기 때문이다.


삶이 우리가 예상하고 기대하는 대로 일어나면 좌절과 고통은 없을 것이다. 세상 일이 뜻대로 잘 풀리고 행복한 사람이 실존적 고민을 하는 일은 지극히 드물다. 무엇이든 자신의 기대에 어긋나고 예기치 않은 일들이 일어날 때, 우리는 당황하고 거부, 원망, 분노, 우울 등 갖가지 심리적 고통과 불행을 경험한다. 그러한 고통과 불행은 다시 우리로 하여금 삶의 의미와 목적, 존재의 가치 등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만들고 종국에는 무상과 무아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끈다.


그러므로 삶의 좌절과 고통이 무상과 무아에 대한 자각으로 귀결되지 않는 한, 고통과 불행의 치유는 완성되지 않는다. 무상에 대한 무지는 변화에 둔감, 역행하며 무아에 대한 무지는 탐욕과 집착으로 인간관계를 그르치기 때문이다. 또 상생하는 인간관계의 본질을 경쟁과 갈등으로 왜곡하고, 순환과 소통을 막힘과 걸림으로 뒤틀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서광 스님

그런데 우리가 정말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무상과 무아에 대한 자각 자체가 고통을 치유하는 치료제는 아니다. 우리가 전구를 필요로 하는 것은 전구에서 나오는 빛 때문이듯이 무상과 무아에 대한 자각의 빛인 연민심, 자비심 때문에 우리는 깨달음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 사실은 그것이 무지로부터의 해방으로 이끄는 근본 에너지고 힘이다.
 

서광 스님 동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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