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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용 (상)

기자명 법보신문

악귀 물리치는 영물, 고래만 보면 비명

 

▲제등행렬 단골인 용형상 등.

 

 

“무엇을 상상하든지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상상 그 이상의 상상.”

 

이런 말들이 아깝지 않은 해괴망측(?)하고 무시무시한 동물이 있다. 머린 낙타와 비슷하고 눈은 토끼처럼 빨갛다. 귀는 소귀에 목덜미는 뱀과 같고 잉어 비늘을 몸에 둘렀다. 발은 호랑이 발에 발톱은 매 발톱이다. 거기에 머리에 달린 뿔은 사슴뿔을 닮았다. 온갖 동물 잡탕이다.

 

머리에 온통 뱀을 두르고 눈만 봐도 돌로 굳는다는 메두사보다 끔찍하지 않은가. 이 말도 안 되는 동물은 중국 고서 ‘광아’에서 표현한 용이다.


용은 희귀한 모습인 만큼 온갖 신통력을 부린다. 비를 내리게 하거나 구름과 안개를 일으키고, 파도를 손바닥 뒤집듯 한다. 입에서 불도 내뿜는다. 서양용처럼 날갠 없지만 동양에서 상상하는 용은 잘만 난다. ‘성호사설’에는 “용이 싸우면 비가 내리고, 독룡이 놀라면 벼락치고, 용이 화가 나면 홍수난다”라는 내용도 있다.

 

하지만 용의 천적이 바다 포유류라면? 용은 고래를 보면 기겁을 한다. 사찰 종각에 매달린 범종을 보면 무슨 얘기인지 알 수 있다. 한국 범종은 종을 매달기 위해 종 위 종뉴를 만든다. 대부분 용 모습이기에 용뉴라고도 한다. 종 위에 앉은 용을 포뢰라고도 하는데 용생구자설에 의하면 포뢰는 용의 다른 모습이다.

 

포뢰는 바다에 사는 경어(鯨魚, 고래)를 가장 무서워해서 만나면 놀라 크게 비명을 지른다고 한다. 종 소리가 우렁차야 하기에 옛사람들은 포뢰 모양을 만들었고, 고래 형상을 딴 당(撞, 종을 치는 도구)으로 종을 쳤다. 고래를 만나 포뢰가 놀라서 큰 소리를 지른다고 믿은 것이다. 그래서 종 위 포뢰는 항상 입을 벌리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아니다. ‘삼국유사’ 권3 탑상편엔 “아래로 세 개의 자금종을 달아 놓았는데, 모두 각과 포뢰가 있고 경어로 당을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고래만 빼면 용은 그럭저럭(?) 훌륭한 영물이다. 악귀를 물리치는 데 용만한 동물이 없다. 대명사가 있지 않은가. 처용(處容)이라고. ‘삼국유사’ 권2 제2 기이편 얘기다.

 

신라 49대왕 헌강왕이 동해 용을 기쁘게 하고 정사를 도울 용의 아들을 얻었는데 바로 처용이다. 왕은 혹여 처용이 도망이라도 갈까 미녀를 아내로 삼게 했고, 급간(級干)이란 관직도 내렸다.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 경국지색이었다. 역신이 그녀를 흠모해 사람 탈을 쓰고 밤에 처용 집에 들어가 동침한 것이다. 처용이 돌아와 보니 두 사람이 누워 있는 걸 봤다. 어찌 분노가 치밀지 않으랴. 그러나 처용은 도리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 “가랑이가 넷이렷다. 허나 둘은 내 것이지만 둘은 누구 것이더냐? 본디 내 것인데 앗은 것을 어찌할꼬.”


요즘 세상이면 칼부림 날 사태다. 역신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랐고, 곧 형체를 드러내고 처용 앞에 꿇어앉아 이렇게 말했다. “공의 아내를 사모해 지금 그녀와 관계 했는데, 공은 노여움을 나타내지 않으시니 감동하여 칭송하는 바입니다. 맹세코 이후로는 공의 형용을 그린 것만 봐도 그 문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하여 옛사람들은 처용의 형상을 문에 붙여 악귀를 물리치고 경사를 맞아들이곤 했다. 용의 아들 아내를 건드리고도 목숨을 건졌으니 역신에겐 참으로 경사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용은 왕권의 상징이기도 했다. 고려 태조 왕건은 용비늘 두 닢을 국보로 소중히 간직하도록 했다. 자신이 용의 후손임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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