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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천권청(梵天勸請)은 깨달음을 얻은 범천이 부처님께 법을 설해 줄 것을 간청해 전법(轉法)이 이루어진 것으로, 불교가 세계적인 종교가 되는 계기가 된 사건이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고 나서 자신이 깨달은 바가 너무 심오해서 중생들에게 법을 설해도 그들이 알아듣지 못할 것을 염려해 설법을 주저했다. 처음에는 제석천이 법을 설해 줄 것을 청했지만 부처님은 거절했다. 다음으로 범천이 세 번에 걸쳐 간곡하게 설법해 줄 것을 청하자 부처님은 설법을 결심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범천권청에 관련된 에피소드이다.
부처님은 왜 제석천의 권청은 물리치고 범천의 권청을 받아들였을까? 이에 대한 답변은 기원전 2세기 경 그리스계의 메난드로스(Menandros, 또는 Milinda) 왕과 나가세나(Nāgasena) 스님과의 문답서인 ‘미린다팡하(Milindapañhā)’와 ‘대지도론(大智度論)’에 잘 나타나 있다. ‘대지도론’에서는 “부처님은 인간 세상에 태어나 대인(大人)의 법을 부리는 까닭에 비록 큰 자비가 있다 해도 청하지 않으면 말씀하지 않는다.
만일 청하지 않았는데도 말씀했다면 외도(外道)에게 조롱 받을 것이므로, 처음에는 반드시 청함을 기다리는 것이다. 또한 외도들은 범천을 숭상하는데 범천이 스스로 부처님께 청하면 곧 외도의 마음도 굴복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간다라의 범천권청 장면은 중앙에 선정인(禪定印)을 한 부처님이 있고, 양 옆에는 법을 청하는 범천과 제석천이 합장하고 서 있다. 부처님은 통상의 그리스 풍의 간다라 부처님과는 다른 외모를 하고 있는데, 한쪽 어깨를 드러내고 두 발을 노출시킨 선정인 자세는 바로 인도의 요가 수행자의 자세에서 유래한 것이다. 부처님의 오른편에는 범천이, 왼편에는 제석천이 부처님을 향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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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라 불전도 속의 범천은 수행자를, 제석천은 왕을 모델로 했기 때문에 그 용모에서 차이가 난다. 범천은 수행자처럼 긴 머리칼을 올려 묶고 장신구를 걸치지 않은 모습이다. 이와 달리 제석천은 긴 머리칼 대신 터번을, 수수한 모습 대신 장신구를 하고 있어 왕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유근자 한국미술사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