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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는 정치판이 만든 법난”

정태혁·김광식 박사 최근 저술서 주장

“제살 갉아먹는 분쟁 순수보다 정치색 강해”

통설 뒤엎는 내용 많아 거센 논란 일 듯




지난 1954년부터 1970년까지 교계를 소용돌이에 몰아넣었던 소위 ‘정화’와 관련해 호평과 찬양일변도의 평가 속에서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주장이 나왔다.

정태혁 동국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국불교융통사』(정우서적)에서 정화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다. 즉 “이 사건은 외부 이교도의 정치노름에 의한 법란인 동시에 이에 놀아난 불교도들끼리의 어리석은 분쟁”이었다는 주장이다.

정 교수에 따르면 해방 이후 비구측과 대처측의 갈등이 내재돼 있다가 1954년 5월 대통령의 유시가 발표되자 불교계에서 태동하고 있던 보수적인 독신승과 신진 대처승과의 불화가 일시에 폭발하게 됐다는 것.

그러나 종교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돼 있음에도 대통령이 유시로써 종교문제에 직접 관여하여 종교인의 사생활에 관여하는 것은, 어떤 특별한 정책적 고려가 없지 않고는 안되는 일이라며 순수한 동기보다는 이승만 정권의 정치적인 의도가 짙게 깔려 있었음을 시사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불교분쟁으로 인해 불교의 근본진리인 법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게 만들었으며, 불교가 우리 국민의 고유종교로서 국민의 정신적인 귀의처가 되지 못하도록 했다”고 비판했다.

한편 근현대불교사학자인 김광식 박사도 최근 『새불교운동의 전개』(도피안사)란 책을 통해 불교정화의 배경 및 전개와 그 유산 등을 중심으로 고찰했다. 정화운동이 근대불교의 부산물이자 현대불교의 진원지라고 강조한 그는 정화가 한국불교의 전통의식 환기, 교단·승단·승려의 청정의식에 대한 자각 등 긍정적인 면을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김 박사는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면에도 불구하고 정화방법에서 불교적인 방법보다는 공권력 의존과 폭력 수반함으로써 지금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으며, 정화운동 이념의 상징성을 강조하면서 구체화된 ‘대처승 배제’가 한국불교 이념의 정체성 수립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것도 함께 지적했다.

특히 그는 1954년 수좌가 200명 내외였지만 10년 뒤인 1964년 1만1899명으로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승려의 질적인 저하는 물론 은처승, 문중·문도의 이익추구 등 고질적 병폐가 생겨났다고 비판했다.



이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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