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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발이 아파 못갑니다

기자명 법보신문

과거 편지는 은사와 유대관계 잇는 수단
편지 쓰는 법조차 모르는 현실 안타까워

수행자가 수행에 어려움이 있을 때 은사 스님과 편지 왕래로 이야기해야 할 때가 있다. 은사스님이 아니면 가까운 어른 스님, 아니면 도반을 상대로 이야기해야 할 때는 편지를 나누는 것만큼 좋은 일이 없다. 그러나 요즘 수행자들을 보면 예상외로 편지 쓰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은사 스님께 편지를 쓰는 것은 우선 첫머리에 그때의 시기를 적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계절 이야기로 시작하거나 천재지변과 같은 모든 이들의 어려운 상황을 적어도 된다. 이렇게 쓴 다음 어른 스님이면 “그간 법체 청안 하십니까?”라는 안부와 주변 사람들의 안부를 물은 다음 편지를 올리게 된 용건을 말씀드리면 된다. 그리고 내내 법체청안 하시라는 안부도 빠트리지 말아야 한다.


편지 봉투를 쓸 때에는 우표를 붙이는 쪽, 봉투 한가운데를 접은 다음 접어진 곳을 따라 은사 스님의 경우 ‘부주(傅主)’라는 말을 쓰고, 그 밑에 은사 스님의 법명을 쓰고, 다음 밑에 법랍에 맞는 대선사, 또는 대화상, 화상 등으로 쓰고, 그리고 예하(猊下)라고 쓰면 된다. 글씨의 크기를 고르게 써야 한다.


자기의 주소와 이름을 쓸 때에는 은사 스님에게 올리는 경우에는 이름 앞에 미좌(迷佐)라고 쓰고, 이름을 쓰고, 세속인들처럼 ‘아무개 올림’ 이라고 쓰지 말고, 구배(九拜)라고 쓰는 것이 좋다. 절을 올리는 수(數)에는 일배(一拜), 재배(再拜), 삼배(三拜), 백팔배(百八拜)가 있는데, 그 숫자가 많을 수록 공경의 수도 따라 간다. 그래서 공경의 절로는 구배를 으뜸으로 꼽는다.


자신의 은사나 스승에 대해 다른 이들은 평범한 수행승으로 보지만 지켜보는 상좌나 제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공경하는 분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또 다른 평범한 이에게는 ‘아무개 스님 법하, 좌하’라고 쓰면 된다. 그리고 상좌, 제자는 앞에서와 같이 은사나 스승에게 격에 맞게 선덕이면 대선사, 율사이면 대율사, 강원의 강사면 대강백이라고 써도 갸륵한 제자로 보인다는 것이다. 대충 이정도만 예를 갖추면 편지 쓰는 격식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만큼이라도 알게 된 것은 13살 어린 나이에 항상 대필을 해왔기 때문이다. 어쩌다 묵은 편지 보따리를 볼 때면 볼품없는 내 글씨를 어여삐 봐주신 낙선재에 윤대지월 마마님이 생각이 난다. 은사 스님은 또 이런 말씀도 나에게 하셨다.


은사 스님은 송광사 선원에서 어느 나이 어린 수좌와 약속을 했다고 하셨다. “오는 산철에는 금강산 마하연에 데리고 가서 참배를 시켜주겠다”고 말이다. 서울에서 만나 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이 젊은 수좌는 괴팍스런 우리 스님의 성품을 아는지라 서울에 늦게 도착하게 되면 몹시 결례가 될 것으로 여기고 편지를 썼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한글로 예쁘게 쓰고 못가는 뜻을 1자의 한문으로 글을 썼다. 무엇이라 썼을까?


늦게 도착하는 것에 역정을 낼 이 스님을 어떻게 한 바탕 웃음으로 웃어넘기게 할까? 고민 끝에 한문으로 족(足)이라는 글자를 적었다. “발이 아파 못갑니다, 족이 아파 못갑니다.”라는 뜻이다.

 

▲철우 스님

편지는 이런 곤란한 경우를 슬기롭게 웃음으로 넘길 수도 있고, 얼굴을 마주보고 말하기 곤란한 일도 몇 자의 글로 진실을 전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이제는 편지를 쓸 곳이 없다. 또한 ‘부주 철우 대율사 예하’ 라고 적어 보내 줄 사람도 없다. 

 

철우 스님 율장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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