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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지능과 본능

기자명 법보신문

지성의 지능적 작용은 점차 알게된 점수
본성의 본능적 작용은 단박에 아는 돈오

영가대사가 말씀하신 오력(五力)과 오안(五眼)은 존재론적인 깨달음의 경지에서 홀연히 총체적으로 나타나는 새로운 경지이지, 한단계씩 차욱차욱 습득해서 생기는 점진적 상승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점진적 상승은 소유적인 절차를 통하여 일어나는 지식의 축적을 말하지, 별안간 뚫려지는 지혜의 솟음이 아니다. 지식의 축적은 소유론적인 해오(解悟)의 차원이지만, 해오는 별안간 진여의 여래장인 마니주에서 솟아나는 존재론적 증오(證悟)의 차원과 다르다. 해오는 인간 지성의 이해력에 의존해서 개념적 소화력과 함께 생기는 현상이지만, 증오는 지성의 소화력(소유력)과 아주 무관하게 존재와 공을 존재와 공으로써 직관적으로 증득하는 것이다. 이것을 좀 더 쉽게 설명해 보기로 한다.


‘나무’, ‘구름’ 등의 개념들은 ‘나무’와 ‘구름’ 등의 것들을 내가 눈으로 본 다음에 그것들을 하나의 명사적 개념으로 지능적으로 소화해야 나는 나무와 구름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개념들을 이해하는 인간의 능력을 우리는 지성의 지능이라 부른다. 지성의 지능은 엄밀한 의미에서 인간에게만 적용되는 일이다. 동물들도 나무와 구름들을 보지만, 그것들이 무엇인지 모르고, 더구나 그것들을 지시하는 언어적 개념이 없다. 그러나 ‘있다’나 ‘없다’ 등을 우리가 말로 설명할 때에, 물론 눈으로 경험하면서 ‘있다’ 또는 ‘없다’라는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있다’, ‘없다’ 등의 말은 여러 나무들이나 구름들을 보고서 그것들을 개념적으로 정리해서 공통분모를 내려 ‘나무’, ‘구름’이라고 하듯이, 그렇게 우리는 존재와 공(또는 무)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존재와 공(또는 무)은 나무나 구름 등과 같은 일반명사로서의 개념들과 다르다.


‘있다’, ‘없다’ 등과 같은 의미들은 개념지(槪念知)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봐서 직접 바로 알아차리는 직관지 觀知)에 속한다. 동물들에게 개념지가 없다. 그러면 이들에게 이 직관지가 있는지? 이들에게 유무를 지시하는 언어가 없지만, 유무를 즉각 알아차리는 직관지가 있다. 이 직관지가 아주 기민하기에 동물에게 지성과 다른 이 본성의 본능적 직관지는 심지어 예비적 통찰력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탁월하다.


동물들의 본능적 직관지는 자기들의 생사와 직결되는 어떤 위기를 미리 알아차리는 예지력을 지닌다고 말할 수 있겠다. 바다의 쓰나미나 산사태의 도래를 동물들은 각자가 미리 알아차리고 피신한다. 지성의 지능적 작용은 점진적이고 추상적이고 추리적이어서 점수적이지만, 본성의 본능적 작용은 구체적으로 단박에 알아차리고 심지어 미리 예견도하는 돈오적 기능을 향유하고 있다 하겠다.


동물이 일반적으로 나타내는 이 본성의 본능적 기능과 인간의 본성이 안고 있는 본능의 기능은 같을까, 다를까? 그 둘은 서로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우리는 조주(趙州)스님이 제자들에게 개에게 불성이 있는가, 없는가 하고 물은 질문의 깊은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조주스님의 가르침은 개에게 불성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이중적 답변이다. 개(동물)에게 불성이 있다는 것은 개에게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마음이 있다는 것이고, 개에게 불성이 없다는 것은 개에게 인간의 마음과 같이 무한히 열린 공(空)의 세계와 만물을 다 이해하는 것과 같이 그렇게 열린 자유의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김형효 교수

동물에게는 오로지 자기의 생사에만 사로잡힌 그런 좁은 영역의 본능만이 전부다. 인간의 본성은 무한히 열려 있고 무한히 자유스럽고. 그러면서 그 본성의 본능적 능력은 찰나적으로 다 알아버린다. 돈오돈수적인 세계다. 
 
김형효 서강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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