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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평화선언’ 유감

기자명 법보신문
  • 법보시론
  • 입력 2011.09.19 16:47
  • 수정 2011.09.19 17:25
  • 댓글 0

조계종이 ‘종교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을 발표했다. <법보신문>이 사설로 평가했듯이 ‘21세기 아쇼카 선언’은 의미가 깊다. 한국 사회에 만연된 갈등을 치유하며 분쟁을 해결해 보려는 고뇌 속에서 선언이 비롯됐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선언 초안 작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조성택 교수는 선언 발표 직후 <조선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종교 간 평화 실현이 주된 내용이지만, 선언문의 저변에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바라보는 종교인의 성찰과 고민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반목과 갈등을 치유하고 사회적 대통합을 이루기 위한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자임하는 선언’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주장처럼 선언이 그 “역할의 시작이며,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분쟁 해결의 모범적 선례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라면 의미가 더 커질 게 분명하다.
그런데 선언을 놓고 종단 안팎에서 곰비임비 논란이 일고 있다. 이를테면 선언이 종교 다원주의에 매몰되어 불교의 진리를 폄훼했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주장하는 쪽의 진정성을 이해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불교와 기독교 인구가 서로 비슷한 나라에서 종교 사이의 열린 자세를 공론화하는 것은 필요하고 또 바람직한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초기 불교의 삼법인을 들어 불교적 진리가 기독교적 진리와는 엄연히 다르다는 지적은 경청할 대목이다. 다만 불교와 기독교가 ‘같은 산’을 오르는 게 아닐 수 있다고 하더라도 두 종교가 인간의 삶에 궁극적으로 주는 뜻까지 다르다고 단언할 확신이 나에겐 없다.


지금 문제가 되는 쪽은 기독교인데 불교가 먼저 종교 평화를 강조하고 나설 이유가 없다는 비판에는 더 동의하기 어렵다. 내가 아닌 상대의 허물이 또렷하더라도 자신이 먼저 그 문제를 품는 성찰과 실천은 유약하거나 패배주의가 아니라 가장 힘 있는 종교적 행위다. 실제로 기독교 쪽에서도 말살에 쇠살을 늘어놓는 근본주의자들과 달리 불교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려는 열린 기독교인들이 오래전부터 목회 현장을 지켜오고 있다.


하지만 선언에 유감이 전혀 없지는 않다. 종교 사이의 평화로 무엇을 이룰 것인가에 대해 너무 원론만 밝혀두고 있어서다. 만일 선언이 우리 사회의 갈등을 풀어가려는 뜻까지 담으려면 지금과 같은 고답적인 이야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엄연히 존재하는 갈등을 부정하거나 손쉽게 통합만 강조할 때 갈등은 되레 증폭될 수밖에 없다. 갈등이 왜 일어났는가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필요한 까닭이다.


가령 선언이 발표될 시점에 사회적 쟁점이 된 ‘희망버스’를 짚어보자. 이미 화쟁위원회도 기자회견을 열어 생각을 밝혔지만, 문제의 핵심은 대화를 거부하고 일방적으로 정리해고를 자행한 경영진에 있다. 그 명확한 사실을 접어두고 대화가 없다며 양쪽 모두를 비판한다면 과연 갈등이 해소될 수 있을까?


더구나 ‘희망 버스’에 참여한 민주시민들에 대해 경찰의 대응이 “미온적이어서 시민들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고 부르대고 “주말마다 시위대가 불법점거하고 있지만 경찰 대응은 무기력하다”거나 “불법집회”를 문화행사로 포장해 정권을 조롱하고 있다며 경찰을 한껏 자극하는 보도를 한 신문이 <조선일보>다. 그 신문에서 ‘종교 평화선언’이 우리 사회의 갈등을 해소하려는 고민과 성찰의 소산이라는 글을 읽을 때 부자연스러운 것은 나만의 과민 반응일까.

 

▲손석춘 이사장

아쇼카 선언의 비판론자들도 선언 자체를 부정하기보다 선언을 더 의미 있게 다듬자는 뜻임을 밝히고 있다. 선언을 다듬을 때 갈등과 통합 대목에서도 ‘성찰과 고민’이 더 깊이 배어들기를 기대한다.

손석춘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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