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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봉 스님 [하]

기자명 법보신문

‘선문촬요’, 구도열에 불을 당기다

▲스님은 선문촬요를 보고 수행의지를 더욱 다졌다.

경봉 스님은 졸음과 망상을 쫓기 위해 겨울 내내 입에 얼음을 물고 수행했고, 통도사 안양암에서는 자결할 각오로 6개월 동안 누에고치처럼 들어앉아 정진하는 등 상상을 초월한 수행 끝에 36세 때 야반삼경에 촛불이 춤추는 것을 보고 홀연히 대도를 성취했다.


경봉 스님이 이처럼 치열하게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화엄경’의 한 대목에서 재발심한 연후 찾은 양산 내원사에서 본 한 권의 책이 이미 불붙은 구도열에 열기를 더했기 때문이다.


내원사에서 경허 선사의 제자 혜월 스님에게 참선 공부를 청했을 때 혜월은 경허선사가 직접 엮은 ‘선문촬요’를 꺼내들고 첫 장에 나오는 달마 ‘혈맥론’을 펼친 뒤 손가락으로 한자 한자 짚어 가면서 읊조리고는 뜻을 새겨보라 일렀다. 처음 머뭇거리던 경봉이 만족할 만큼 뜻을 밝혀내자 혜월은 그 자리에서 책을 내주며 마저 읽을 것을 권했다.


혜월은 경봉을 내원사 강백으로 삼을 마음에 누구에게도 빌려주지 않던 책을 내준 것이다. 그러나 역효과(?)였다. 밤새 책을 본 경봉은 ‘선문촬요’의 골수와 같은 달마 ‘혈맥론’에서 ‘참선 공부를 하지 않으면 부처가 될 수 없다’는 가르침에 이르러 “깨달음을 이뤄 부처가 되겠다”는 다짐을 확고히 하고, 새벽녘 조용히 내원사를 떠나 해인사 선방으로 향했다.


경봉 스님의 구도열에 기름을 부은 겪이 된 ‘선문촬요’는 조선 말기 대표적 선승 경허 선사가 편찬한 우리나라 불교 선학의 지침서로 불리는 책이다. 2권으로 구성된 책 가운데 1907년 운문사에서 처음 펴낸 상권에는 달마대사의 ‘혈맥론’, ‘관심론’, ‘사행론’을 비롯해 홍인대사의 ‘최상승론’ 등 중국 고승 찬술 13편이 수록되어 있다. 또 1908년 범어사에서 개간한 하권은 보조국사 지눌의 ‘수심결’, ‘진심직설’, ‘권수정혜결사문’, ‘간화결의론’과 천책의 ‘선문보장록’ 등 한국 고승들의 저술로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오늘날에도 선가에서 필독서로 전해지고 있다.
그렇게 해인사 선방을 시작으로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던 경봉 스님은 어느 순간부터 선방에서 정진하면서도 선어록을 가까이하기 시작했다. 화두에 억지로 매달리지 않고 병난 사람이 의사 처방전을 받아 약을 먹듯, 조사 스님들의 선어록을 먼저 보기로 한 것이다. 이때 ‘선요’, ‘서장’, ‘보우선사 어록’, 중국 운문문언 선사 어록을 담은 ‘운문록’ 등에서 정진을 이어갈 큰 용기를 얻기도 했다.


때문에 스님은 훗날 ‘깨달은 후 보임을 잘 하라’는 용성 스님의 편지를 갖고 온 수좌에게 “이 우주 자연에서 근본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소상히 밝혀주고 나아가 어떻게 하면 이 참마음을 밝혀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는가를 가르쳐주는 내용이니, 하룻밤 잠을 못자는 한이 있더라도 이 글은 반드시 보라”며 ‘선문촬요’에 담긴 내용 중 ‘진심직설’ 읽기를 권했고,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1946년 대중의 간청으로 선학원을 찾았을 때도 ‘선문촬요’와 ‘수심결’, ‘반야심경’을 설법했다.


후학들에게 “깨닫겠다는 집착을 버리고 무심히 구름이듯 바람이듯 어디에도 걸리지 말고 중답게 수행할 것”을 당부했던 스님은 1982년 7월17일 “야반삼경에 대문 빗장을 만져보라”는 임종게를 남기고 입적했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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