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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신창이가 된 우리말

기자명 법보신문

우리 청소년들은 75초에 한 번 꼴로 욕을 하는데 그들이 불량학생이거나 문제아여서가 아니라 평범하고 얌전한 아이들도 습관적으로 욕을 입에 달고 산다는 보도가 있었다. 실제로 지하철이나 학원 같은 곳에서 청소년들이 주고받는 대화의 절반이 욕설임을 알고 깜짝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 아이들은 ‘×나’(또는 ‘×라’)라는 단어로 시작해 ‘×발’, ‘×랄’, ‘×끼’ 등 욕과 비속어를 두어 마디에 한 단어씩 섞어 말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대화에는 진지한 내용이 담기지 않고 누가 보다 많은 욕과 비속어를 쓰느냐만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도 누구하나 그들의 잘못된 언어습관에 대해 지적하지 않다가 최근에야 큰 발견이나 한 듯이 호들갑을 떨고 있다.


청소년의 언어가 욕과 비속어로 오염된 것은 십 수년 전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국어학자나 선생들이 국어순화의 올바른 방향에 대해 자주 의견을 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어느 순간 국어선생들의 잔소리가 사라졌다. 그것은 한국의 대통령이 영국 국회에서 영어로 연설하던 무렵부터가 아닌가 싶은데, 영어공용화론이 대두된 이후 우리말에 대한 정부와 교육기관 및 언론의 관심은 거의 실종되고 말았다. 그러다보니 영화나 TV에서는 상말과 비속어가 난무하고, 문법에 맞지 않는 말들이 자막을 점령하게 되었다. 방송사에서도 국어 실력보다 영어 점수가 높은 사람을 뽑다 보니, 한글맞춤법도 모르는 이들이 엉터리 자막을 만든다. 특히 조폭이나 형사가 등장하는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욕으로 뒤발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가끔 우리 영화인들은 왜 저렇게 욕을 입에 달고 살까, 궁금한데 실생활에서는 그렇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우리는 흔히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라고 자랑한다. 그렇지만, 한글이 왜 우수한 글자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학생은 찾아보기 힘들다. 내가 고등학생 시절, 그리고 80년대 여고 선생이던 시절에는 국어시간에 ‘훈민정음’을 배우고 가르쳤다. 훈민정음 언해를 배우고 가르치는데 거의 한 달 이상 걸렸고, 학생들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훈민정음 언해를 외우고 한글의 창제원리를 이해하느라 끙끙거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과정이 고등학교 국어수업에서 사라졌고, 우리 아이들은 한글의 과학적, 철학적 우수성을 배우지 못한 채 외국어 교육을 위해 혀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언어체계라는 것은 서구 학자들에 의해 입증된 사실이다. 미국의 J. 다이아몬드 교수는 ‘올바른 글쓰기(Writing Right)’라는 글에서 한글이 과학적이고 초이성적(ultrarational)인 글자인 까닭을 자음과 모음을 한눈에 식별할 수 있고, 자음의 형태가 발음기관의 위치를 나타내며, 자음과 모음이 수평(수직)으로 결합하여 음절을 이루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시카고 대학의 언어학자 매콜리(J. D. McCawley)교수는 매년 10월 9일 학생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파티를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한글날을 법정공휴일에서 제외했고, 우리 일상 언어가 만신창이가 되어도 누구하나 신경 쓰지 않는다. 무엇보다 기막힌 일은 수천 명이 넘을 국어선생(대학의 교수까지 포함하여)들도 우리말의 심각한 오염과 타락에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은 어른들도 아이들의 엉터리 말을 따라 하는 게 대세가 된 듯하다. 그러다보니 서울에 사는 외국인도 앞뒤 문맥도 없이 ‘대박’이니 ‘완전 좋아요’라는 이상한 말을 사용하며, 공영방송에서조차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내용을 내보낸다.

 

▲장영우 교수

아이들이 욕을 입에 달고 사는 것도 문제지만, 그 아이들이 그게 욕인지 몰랐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존재한다. 그들을 욕쟁이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부모와 선생의 무관심이란 말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아름답고 올바른 우리말쓰기 운동을 벌여 우리 아이들을 욕구덩이에서 건져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말과 아이들의 정신은 정체불명의 욕으로 오염될 게 분명하다.

 

장영우 동국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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