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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암 스님 [하]

기자명 법보신문

마지막 남긴 경전은 ‘금강경’

 

▲혜암 스님

 

 

출가 전 일본에서 수많은 동서양 철학서와 사상서를 탐독했던 혜암 스님은 ‘경전을 여의지 말고 외도의 서적은 마음에 두지 말라’며 수행자들의 경전 이외 서적 읽기를 경계했고, 스스로도 출가 후에는 경전과 선어록 이외의 서적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수많은 경전 중에서도 혜암 스님에게 있어서 특별한 경전이 ‘금강경’이다. 일본 교토에 머물고 있던 당시 그곳 임제종 계열의 절에서 유나 소임을 맡고 있던 서옹 스님을 만났을 때, 서옹 스님은 발심하고 출가를 결심한 혜암 스님에게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하니,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본성·진실)를 보리라)의 뜻을 새겨 보라’며 ‘금강경’ 한 권을 내 주었다.


혜암 스님은 이 ‘금강경’을 소중히 간직했고, 부모님에게도 “결혼한 일본 스님들도 참선 공부는 우리나라 절에서 해야 한다고 했고, 해방 전 귀국한 서옹 스님도 저에게 ‘금강경’ 한 권을 주시면서 참선하라고 권했다”며 출가 의지를 밝혔었다. 그리고 ‘금강경’ 사구게의 뜻을 잘 새겨 보라며 참선을 권했던 서옹 스님과의 인연은 해인사로의 출가에서도 이어졌다.


혜암 스님이 백양사를 떠나 해인사를 찾아 출가의 뜻을 밝히고도 행자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몇 날이고 머물러 있을 때, 마침 해인사를 찾았던 서옹 스님이 알아보고는 인곡 스님에게 소개해 출가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것이다.


혜암 스님은 그렇게 서옹 스님과 맺은 ‘금강경’ 인연으로 출가한 이후 오로지 장좌불와와 일종식의 방편으로 수행에 전념했다. 심지어 은사인 인곡 스님이 재발심의 불씨를 살려내는 데는 부처님 말씀(경전)을 방편으로 삼는 것도 요긴하다며 강원에서 공부하기를 권할 때도 “제가 죽은 뒤 환생하여 스님의 원력으로 경을 공부할 수 있게 해 주신다면 그때 하겠습니다”라며 요지부동, 참선만을 고집했을 정도였다.


그런 혜암 스님도 ‘육조단경’을 강설할 때가 있었으나, 역시 학인들에겐 “‘육조단경’을 버릴 때 견성하는 것이요, 육조 스님의 종노릇만 한다면 언제 견성성불 할 수 있겠는가”라며 경전에 매이지 말고 뜻을 살펴 참선에 전념할 것을 권했다.


그러면서 강의를 들어야 하는 이유를 “구경각의 노정기를 다 알았으면 필요 없는 것이지만, 노정기를 모르니까 알아야 하고 또 병통에 걸릴 수 있으니 병을 고치려고 부처님의 말씀을 배우고 조사의 말씀을 배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아무리 귀중한 부처님이나 조사의 말씀이라도 거기에 가서 속지 말아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결코 문자에 끄달리지 말라는 경책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스님은 그렇게 평생을 올곧은 수좌의 모습으로 정진하다가 2001년 12월31일 세납 82세, 법랍 56세로 원당암 미소굴에서 후학들에게 “인과가 역연하니 참선 잘하라”고 당부한 후 “나의 몸은 본래 없는 것이요/ 마음 또한 머물 바 없도다/ 무쇠소는 달을 물고 달아나고/ 돌사자는 소리 높여 부르짖도다”라는 임종게를 남기고 입적했다.
혜암 스님이 입적한 후 미소굴에는 스님의 유물로 주장자, 안경, 회중시계, 돋보기, 그리고 ‘금강경’ 한 권이 있을 뿐이었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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