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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불교 꽃 피운 禪의 달인들을 만나다

기자명 법보신문
  • 불서
  • 입력 2011.10.24 15:34
  • 댓글 0

‘선’ / 고은 지음 / 김영사

▲‘선’

선(禪)의 생명은 생동감에 있다. 박제처럼 죽어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시간이 만들어낸 짧은 찰나, 순간에 번뇌를 쳐내는 번득이는 지혜의 칼날이다. 이런 까닭에 선을 전파했던 선사들의 삶 또한 순간에 안주하거나 머물지 않는 활활 타오르는 용광로 그 자체였다. 입을 빌어 가르치고 권위에 기대 역설하지 않았다. 온몸으로 에너지를 쏟아 진리를 설했으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순일한 진리 그 자체로 적멸(寂滅)에 들었다. 그러나 오늘날 선은 시간과 공간을 떠나 종이 위에 누워버림으로써 생명을 잃어버렸다. 마치 무덤 속의 유골을 보고 살아있는 사람을 짐작하듯, 현실과 유리된 선은 그저 어려운 암호로만 존재할 뿐이다. 벼락같은 깨달음의 에너지가 언어의 유희가 되거나, 또는 지적인 과시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동아시아를 깨달음으로 물들였던 선과 선사들의 삶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을 묘약은 없을까.


불자 시인 고은(78)이 불교구도 소설 ‘선(禪)’을 재 발간했다. 1995년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냈던 2권의 소설이 16년 만에 1권의 소설로 단장을 하고 새롭게 모습을 드러냈다. 책은 중국 선의 초조 달마 스님에서 육조 혜능 스님까지 중국 선종 6대조 선사들의 치열한 수행과 삶의 순간을 생생하게 포착해 깊은 울림으로 전하고 있다. 한때 효봉 스님에게 출가해 구도의 길을 걷기도 했던 시인 고은이 방대한 선어록과 유구한 중국 역사를 종횡으로 파헤치고, 여기에 소설적 재미를 더해 동아시아 선의 달인들을 차례로 불러내, 그들의 치열했던 삶과 활화산 같은 화두, 촌철살인의 문답들을 당시의 모습 그대로 생동감 있게 살려냈다. 한 권의 소설 속에 경전, 선어록, 불교인문사, 사상사를 녹여 낸 동시에 나무도 되고, 칼도 되고 진흙소가 되기도 하는 선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소설로 오롯하게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은 평생 동안 구도의 열병을 앓았던 고은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1950년대 후반 어느 날 오대산 월정사 경력의 조지훈 사백과 몇 번의 회포 있게 될 때 그이가 중국 선을, 내가 고려 선을 더듬어내자 한 적이 있다. 그런 다음 생사가 달라졌다. 남아있는 나 또한 여기저기 기웃대느라 그럴 겨를이 없었다. 마침 운허 화상이 간절히 권한 화엄경 입법계품 서사시를 소설 노릇으로 마치고 나서 아예 중국 선 백년에 발 디디고 말았다”며 집필 배경을 설명했다.


책은 소설적 상상력을 동원해 선사들의 행적과 치열한 수행과정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고승들의 게송과 선문답을 일화에 따라 적절히 배치하고 각 장에 삽화를 넣어 몰입도를 높이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선사들의 일상은 삶의 모습 그대로 선이었다. 깨달음을 위해 팔을 잘라 바치고, 시대와 불협하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았다. 치열하고 열정적이며 또한 단순하고 고요했던 화두 그 자체이며 진리의 당체였다.


문학적인 질료를 통해 관념과 상징으로 화석화된 불교와 선의 세계를 맛깔 나는 대하소설로, 치열한 구도 소설로 엮어낸 노시인의 열정에 절로 탄성이 인다. 2만5000원. 
 

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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