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암 스님 [상]

기자명 법보신문

톨스토이 작품 읽으며 생명에 의문

 

▲스님은 출가를 하기 위해 절에서 3년간 머슴살이를 했다.

 

 

특별히 거창한 수식어가 필요 없이 말 그대로 ‘부처님 법대로’ 살다 간 서암(1914∼2003) 스님은 1914년 경북 풍기에서 부친 송동식, 모친 신동경의 5남 1녀 중 세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부친이 독립운동 혐의로 붙잡혔다가 안동경찰서 유치장을 부수고 탈옥하면서 유랑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식 중 하나라도 공부를 시키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에, 충북 단양과 경북 예천 경계선인 소백산 중턱 올산 마을이란 곳에서 화전을 가꾸며 겨우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음에도 스님을 산 아랫마을 서당에 보냈다. 또 대강면 소재지에 보통학교가 생기자 그 학교에 보내 배움의 길이 끊이지 않도록 했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와서 살 게 되자 대창학원에서 공부하도록 했다. 지역 유지들이 세운 사설학교다. 이 학교 3학년에 편입한 어느 날 한밤중에 그림자처럼 나타난 아버지는 얼굴을 쓰다듬으며 “많이 배우라”는 말 한마디를 남겨놓고 올 때처럼 그렇게 그림자처럼 사라지기도 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일본 사람들 눈을 피해 틈나는 대로 한글과 우리의 역사를 가르쳤고, 그때 우리 문화의 바탕에 숨 쉬고 있는 불교에 대해서도 처음 들을 수 있었다. 총명함에도 불구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지속적으로 다니기가 힘들었던 스님은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학교 소사로 일하면서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직업(?)이 준 가장 큰 선물은 학교에 살면서 선생님들과 가까이 지낸 덕분에 책을 빌려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스님은 훗날 이때의 일을 “나는 닥치는 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게걸스럽게 책을 읽었다. 요즘처럼 출판문화가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의 종류는 무척 한정된 것이었으나 그래도 마음속의 갈증을 푸는 데는 책만한 것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이때 러시아 시인이자 극작가 겸 소설가인 톨스토이의 작품을 많이 접하게 됐다.
스님은 “주로 톨스토이의 책이 많았는데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속에 많은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고, 마침내 책을 읽어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책이 준 선물이었다”고 당시의 느낌을 전하기도 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전쟁과 평화’ ‘회심’ ‘부활’ ‘참회록’ ‘모든 것의 근원’, 그리고 톨스토이의 자서전이라 할 ‘소년시대’ ‘청년시대’ 등의 책을 접하면서 사유의 폭과 깊이가 넓고 깊어졌던 것이다.


그렇게 책 속에 묻혀 살던 어느 날 부터인가 ‘마른 땅에 뿌리를 내리려고 아득바득하는 대신에 이 생명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것을 알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났다. 그리고 결국 열여섯에 그 욕망을 해결하고자 스스로 절집을 찾아 출가를 조건으로 ‘머슴살이’를 시작했다. ‘책이나 선생들로부터 들은 것 말고 단 한마디라도 좋으니 너 자신의 이야기를 해보라’는 예천 서악사 화산 스님의 말에 말문이 막혔던 스님은 절에서 머슴살이를 하면서도 ‘초발심자경문’ ‘치문’과 불교의식 등을 배우며 수행자의 꿈을 키웠다.


그리고 마침내 3년 머슴살이 끝에 문경 김용사에서 정식 행자생활을 시작해 열아홉에 사미계를 받고 강원에 들어가면서, ‘불경을 배우기만 하면 그 속에 온갖 지혜와 진리가 다 들어 있을 것’이란 믿음으로 배고픈 거지처럼 게걸스럽게 불법의 바다에 푹 빠져들었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