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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암 스님 [중]

기자명 법보신문

일본 유학중 서구 과학·철학 섭렵

▲서암 스님

불법의 바다에 빠져 가르침을 마음껏 흡수한 서암 스님은 4년에 걸쳐 사미, 사집, 사교과 공부를 했다. 그리고 훗날 “가까이 있는 도반이나 스승 중에 사표가 될 만한 분이 있으면 그를 푯대 삼아 분발하고 정진하게 되는데 내게는 금오 스님이 그런 푯대였다”고 회상한 금오 스님을 이때 만났다. 또한 스님은 여기서 “우리 불교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 일본 승려들이 거들먹거리는 꼴을 보기 싫으면, 옛날에 우리가 불교를 가르쳤던 저들에게 거꾸로 수그리는 수모를 면하려면 저들에게 우선 배워야 한다”는 금오 스님의 말에 유학을 결심, 종비유학생 신분으로 일본대학 종교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일본은 출판업이 세계적 수준이었고 각종 불서 간행이나 연구 업적이 조선, 중국, 인도에서 흉내도 내지 못할 위치에 있었다. 한국불교 입장에서는 놀랍고 부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메이지 이후 일본 근대화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출판문화는 세계적 수준이었고, 세계의 어떠한 사상과 조류도 편견 없이 책으로 발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유학생이었던 스님은 당장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문배달, 사이비 치과의사의 조수, 폐품수집까지 해가면서 학교를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조금이라도 돈이 생기면 먼저 책방으로 달려가 그 책들을 섭렵했고, 덕분에 주머니는 늘 텅 비어 있었다. 후일 법문 때 인용하던 서구 과학자들의 이론이나 철학자들의 주장 등도 이때 본 책들에서 얻은 지식이었다. 또한 이때 19세기 독일사람 움베르트가 쓴 ‘조선기행’과 20세기 초 미국인 헐버트가 쓴 ‘대한제국멸망사’를 보면서 당시 서양인들이 한국을, 또 한국불교를 얼마나 우습고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알게 됐다.


하지만 일본에서 온갖 고생을 하면서 당시로서는 불치병이었던 폐결핵 3기 진단을 받고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스스로 생명에 대한 끈, 집착을 놓아버리게 되자 오히려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때문에 유익한 일을 해 볼 생각에 어릴 적 도움을 받았던 대창학원을 찾아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스님은 여기서 출격장부로 나아가는 새로운 길을 찾았다. 아이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 한 평생이 짧은데 그 평생을 통해 남자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장부 일대사가 무엇인지 열변을 토하다, 문득 자신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자신이 너무 무책임하게 생명을 포기하고 안일하게 죽음의 그늘 속에 숨어 살았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선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이뭣고’ 화두를 들고 하루 12시간 좌선을 하면서 석 달을 지냈다. 그 후로는 기침도 각혈도 나오지 않았다. 곧바로 길을 떠난 스님은 금강산으로 향하던 중 철원 심원사에서 강원 사교과를 가르치면서 자신은 대교과를 공부했다. 이 시절 자신을 보면서 ‘남을 가르친다는 것은 결국 나를 가르치는 일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 금강산, 계룡산을 거쳐 칠불암에서 금오 스님과 함께 사생결단의 수행을 마친 스님은 전쟁 통에 문경 원적사로 들어가 폐허가 된 절을 여법한 수행도량으로 변모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1954년 이승만의 유시로 불교계가 몸살을 앓고 정화 과정에서 무자격 승려를 양산한 폐해가 나타날 무렵, 깡패 승려들이 모여들어 양산박으로 불릴 정도로 난장판이 된 봉암사 정화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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