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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불교로 가는 길

수행자 발자취 퇴적층처럼 쌓인 천년의 고도

 

▲ 일본 교토 서북서에 위치한 킨카쿠지(金閣寺). 미시마 유키오 소설의 배경으로 유명한 이곳은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세계문화유산이다.

 

기억이 개인의 정체성이라면 역사는 한 나라의 정체성이다. 삼국시대 일본이 한민족의 역사에 등장한 이래 그들은 늘 침략자로 인식돼 왔다. 그 옛날 고도의 문화를 전수해줬음에도 분탕과 노략질을 일삼았으며,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라는 민족적 수난의 구렁텅이로 내몬 것도 그들이었다.

일본을 혐오하는 감정. 어쩌면 그것은 켜켜이 쌓인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돼 어느덧 우리 민족의 유전자처럼 자리 잡게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는 오늘날 일본불교를 바라보는 한국불교계의 인식과 그리 다르지 않다. 제국주의 선봉에 서서 한국불교의 오랜 전통을 무너뜨리려 했던 불교, 스님이 결혼하고 고기 먹는 것을 꺼리지 않는 불교, 사찰을 자식에게 물려주며 납골장사로 재정을 충당하는 불교 등등이 일본불교에 대한 대체적인 이미지이다.

실제 오늘날 일본 스님들은 대부분 결혼을 하고 대를 이어 사찰을 관리하는 성직자의 성격이 짙은 것이 사실이다. 일본불교는 1868년 메이지유신을 겪으면서 불교의 사회적 역할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심지어 일본인의 70%가 스스로 무종교인을 표방하고 있다는 조사도 있다.

일본문화의 자존심 교토

허나 특정 사실에 근거한 견해라도 그것이 고정되면 때때로 진실을 가리는 더께가 되곤 한다. 일본불교가 꼭 그렇다. 파계불교, 장례불교라는 고정관념을 내려놓지 않는 한 1500년을 지속해온 일본불교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도 지닐 수 없다. 온갖 역경을 딛고 바다를 건넜던 구법승들의 열정도, 신라 원효대사나 조선의 진묵대사 못지않게 저자거리에서 민중을 교화하며 철저히 무소유의 삶을 살았던 스님들의 자취도 무의미하다. 또 지극한 신심으로 매일 백만 번씩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했다던 수많은 불자들의 존재도 빛을 잃고 만다.

지난 2600년간 불교는 각 국가와 민족을 배경으로 성장해왔다. 그런 까닭에 불교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독특한 사상과 문화를 형성해왔다. 그러나 동시에 민족과 국가의 테두리를 넘어서는 것이 바로 불교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종과 계층과 시대를 넘어서는 보편적 진리를 담고 있는 까닭이다. 불교에서 세계를 하나의 꽃(世界一花)으로 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그런 점에서 일본불교에 대한 관심은 내 안의 편견을 깨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일본불교에 날카로운 시선을 잠시 접으면 의외의 긍정적인 사실들이 눈에 들어온다. 눈부신 일본 불교학의 성과도 그 중의 하나다. 현재 일본에는 3000명이 넘는 학자들이 활동을 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불교학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다. 이중에는 세계적인 석학들도 적지 않다. 이들 학자들에 의해 방대한 분량의 불교문헌이 정리되고 있으며, 새로운 역사적 사실들도 속속 규명되고 있다. 또 한국의 수행자 못지않게 치열하게 정진하는 수행자들도 적지 않다. 비록 인원에 있어 한국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당송시대의 선수행법이 지금껏 수행현장에서 이어지고 있음도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종단들의 활동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들 종단은 메이지유신 이후 전통강원을 제도권 안의 교육기관인 대학교로 전환해 발전시켜오고 있다. ‘일본선의 역사’를 저술한 동국대 선학과 교수 보광 스님에 따르면 일본에는 불교종립대학만 54개, 전문대학까지 합치면 78개 정도의 대학이 있으며, 대부분 사찰에서 오래전부터 유치원을 설립해 국민교육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 오늘날 사찰은 약 10만 곳이고 스님도 약 20만 명이나 된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그곳 불교를 바라보는 국내 시각에 전혀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중 한국불교학계가 근래 일본불교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6세기 이후 지금까지 한일 양국이 불교를 매개로 수많은 교류를 해왔음에도 1990년대 말까지 국내에 일본불교를 소개한 한 책은 번역서 2권이 전부였다. 그나마 난해한데다가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반일이라는 민족적인 정서가 불교학 연구에도 그대로 반영됐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몇 년간 일본불교 관련 서적이 꾸준히 늘어 지금은 20여종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다 지난 2009년 5월 창립한 일본불교사연구소가 학술활동이나 한일문화교류아카데미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불교계의 대표적인 학술단체 중 하나인 불교학연구회는 지난해 11월 일본불교를 주제로 대규모 학술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렇듯 느리지만 뜻 깊은 변화들이 이미 시작된 것이다.

세계적인 불교유산 다수

우리 일행이 일본 교토에서 사찰답사를 실시한 것은 11월16일부터 21일까지였다. 일본불교를 현장에서 직접 느껴보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답사 발의자는 지난 30년간 불교 출판의 외길을 걷고 있는 윤창화 민족사 대표다. 1980년대 초 서슬 퍼런 군부독재 시절 출판사를 차려 민중불교 관련 서적들을 잇따라 펴내 불교계의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당사자다. 또 ‘장사’가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오랜 세월 불교학술서를 도맡다시피 출판했으며, 근대불교 관련 자료와 책들을 지속적으로 발간함으로써 근대불교사에 대한 불교학계의 관심을 끌어올린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일제강점기 불교계의 항일운동은 물론 친일행적을 일일이 밝힌 문제의 서적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이런 윤 대표가 몇 년 전부터 선(禪)에 깊이 매료됐다. 한국 근대 선사들의 사상을 조명하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중국 당송시대의 선종사원의 실상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까지 선보였다. 그가 초기선종 사원의 형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판단한 곳이 바로 일본 사찰이다. 그 중 교토사찰에서 그 전형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게 윤 대표의 설명이었다.

 

▲일본의 사찰정원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사진은 교토 다이도쿠지(大德寺) 내에 있는 암자 다이센인(大仙院)의 정원.

 

교토는 794년 나라(奈良)에서 천도한 후 400여년 간의 헤이안시대(平安時代)에 국정의 중심지로 번영했던 지역이다. 그런 까닭에 지금까지도 교토는 일본의 ‘문화수도’로 일컬어진다. 특히 천년이 넘는 세월을 수도로 군림해온 만큼 17개의 세계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물론 다양한 불교문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지역으로도 유명하며,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渡來人)의 발자취가 많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번 답사에는 윤 대표를 비롯해 모두 6명이 참여했다. 자영업자, 불교활동가, 주부였으며, 참가동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일상화된 공간으로부터의 벗어나자는 속내도 있었겠지만 1500년 일본불교의 역사 속을 살다간 불교인들의 숨결과 발자취를 직접 느껴보자는 취지에서였다.

짧지 않은 시간. 그런 만큼 중요한 사찰들을 선정해 가급적 많은 곳을 다니기로 했다. 또 가이드의 뒤를 쫓아가는 여행이 아니라 가고 싶은 곳을 정해 직접 찾아가는 ‘불편한 답사’를 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답사 내내 택시 한번 타지 않고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일본불교에 가졌던 기존의 생각을 모두 내려놓고 원점에서 바라보고 느껴보기로 했다.

우리 일행은 답사기간 내내 부지런히 걸었다.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서면 밤늦게야 돌아왔다.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 아침에 싸가지고 나온 주먹밥 몇 개 혹은 고구마 하나로 점심을 대신하기도 했다. 그 덕에 교토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일본불교 희비의 교차점

단풍으로 유명한 토후쿠지(東福寺), 우연히 들른 젠린지(禪林寺) 에이칸토(永觀堂)에서 마주한 뒤돌아보는 아미타부처님, 임제종 천용사파의 총본산으로 일본 선종사원의 효시로 불리는 텐류지(天龍寺), 우다이(宇多) 일본 천황이 창건한 진언종 어실파(御室派) 총본산이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름다운 사찰 닌나지(仁和寺), 일본 정원 가운에서도 단연 걸작으로 꼽히는 료안지(龍安寺), 금빛 찬연한 세계문화유산 킨카쿠지(金閣寺), 임제종의 고승인 잇큐 스님의 흔적이 남아있는 다이도쿠지(大德寺), 고려 초조대장경 인쇄본이 1800여권이나 소장돼 있는 교토 선종의 총본산 난젠지(南禪寺),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거대한 일본 목조 건축의 정점 기요미츠테라(淸水寺), 임제종 사찰로 사찰 야경이 워낙 아름다워 하루 1만여명의 관람객이 찾는다는 고다이지(高台寺), 호넨 스님이 지은 정토종의 총본산으로 일본 불교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했던 거대 사원 치온인(知恩院), 중국 선종사원의 특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일본 속의 중국사원 만푸쿠지(萬福寺), 2000만명의 신도가 활동하고 있다는 정토진종 본원사파 본산 서본원사(西本願寺) 등등.

그곳에서 일본불교의 전통과 오늘날 일본사찰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더불어 교토에서 맞이했던 사람들도 때론 깊은 인상으로 남아있다. 유명 관광지로 전락해 삼배조차 올릴 수 없는 많은 사찰들, 수행자의 모습이 아닌 사찰 관리자로서 비춰지는 스님들…. 하지만 그곳에도 어김없이 간절히 기도하는 신심 깊은 불자들이 있었으며 지성으로 염불하는 스님들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일본불교의 절망과 희망이 모두 사람들에게 있었던 것이다.

천년 세월 동안 모래알처럼 많은 수행자들의 발자취가 퇴적층처럼 쌓인 고도(古都), 낯선 속에 익숙함이 머물고 오래된 속에 새로운 것이 살아 숨 쉰다는 교토. 이제 일본 전통문화의 자부심이라는 그곳 교토로 떠나보자.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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