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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비구니 원로 묘엄 스님, 2일 입적

기자명 법보신문
  • 교계
  • 입력 2011.12.02 10:05
  • 수정 2011.12.14 16:18
  • 댓글 0

한국 최초 비구니 강사…일생 후학 양성 매진
12월6일 수원 봉녕사서 비구니회장으로 다비

 

▲한국불교 최초의 비구니 강사로 수많은 학인들을 제접해 온 비구니 원로 봉녕사 승가대학장 묘엄 스님이 12월2일 오전 9시5분 입적했다. 법납 67세, 세납 80세.

 

 

한국불교 최초의 비구니 강사로 후학양성에 매진해온 비구니계의 큰 스승 봉녕사 승가대학장 묘엄 스님이 12월2일 봉녕사 향하당에서 입적했다. 법납 67세, 세수 80세.

 

1931년 진주에서 태어난 묘엄 스님은 1945년 대승사에서 성철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61년 통도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묘엄 스님이 출가한 것은 15세 때의 일이다. 일제강점기 흉흉한 사회상황을 피해 아버지 청담 스님이 수행하고 있던 문경 대승사에 머물던 중 근대 한국불교 거목 성철 스님을 만나 발심했다.

 

당시 성철 스님은 묘엄 스님에게 불교와 역사, 교양을 직접 가르치며 불제자의 길로 인도했다. 그리고 “내가 아는 것을 다 가르쳐 줄 것이니 너는 비구니계를 일으킬 큰스님이 돼 달라”는 성철 스님의 당부에 출가를 결심, 비구니 선객으로 발심납자들의 귀감이시던 윤필암 입승 월혜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스님은 윤필암에서 스님으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행해율의를 배웠고, 대승사를 왕래하며 성철 스님께 부처님의 가르침을, 청담 스님으로부터는 출가수행자의 처신과 인욕하는 법을 배웠다. 특히 1947년 불교정화와 조계종단의 건립으로 이어진 봉암사 결사에 동참, 성철 스님으로부터 “만법은 하나로 돌아갔는데 하나는 어디로 돌아갔는가”라는 화두를 받아 용맹정진했다. 또 윤필암, 해인사 국일암, 동래 금화사, 월내 묘관음사, 창원 성주사 등지에서 수선안거하며 흔들림 없는 구도의 길을 걸어갔다.

 

1950년 통도사에서 자운 스님에게 ‘사미니율의’와 ‘비구니계본’, ‘범망경’ 등을 공부한 스님은 부처님의 교리나 조사어록을 체계적으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대강백 운허 스님을 찾아가 비구니로선 처음으로 경전 공부를 시작했다. 가난하던 시절 보리동냥, 고추동냥 등 탁발을 다니면서도 책 보기를 거르지 않았고, 운력이 많아 책을 제대로 보지 못한 날에는 촛농을 모아 불을 밝혀 밤새 책을 읽었다.

 

동학사 사교과를 수료하고 경봉 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은 묘엄 스님은 이후 범어사, 동학사, 봉선사, 부산 금수암, 진주 도솔암 등 여섯 차례에 걸쳐 장소를 옮겨가며 운허 스님 문하에서 공부를 이어갔다. ‘훌륭한 법사가 되겠다’던 스님의 원력은 1959년 한국 최초의 비구니 전문강원인 동학사에서 최초의 비구니 강사로 학인들을 가르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비구니에겐 법문도 허락하지 않았던 때, 강단에 서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당대 가장 뛰어난 고승인 청담, 성철, 운허, 자운 스님 밑에서 선(禪)과 교(敎), 율(律)을 모두 섭렵한 묘엄 스님에게는 문제가 될 수 없었다.

 

스님은 동학사에서 후학을 지도하던 중 1971년 인재불사의 원력를 세우고 수원 봉녕사로 자리를 옮긴다. 봉녕사에 도착한 후 가장 먼저 선원을 개설하고, 3년 뒤 강원을 설립해 강주로 취임했다. 40여년지 지난 지금 봉녕사는 8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비구니 승가교육의 요람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스님은 비구니교단의 미래를 밝힐 동량을 양성해야 한다는 사명으로 팔십 노구에도 ‘화엄경’ 강의와 율원 강의를 맡아왔다.

 

뿐만 아니라 1981년 자운 스님으로부터 전계를 받은 스님은 비구니 율사로서 비구니 구족계 수계산림 교수사, 갈마아사리 등을 역임하고 조계종 계단위원으로 중심적 역할을 수행해왔다. 또 1999년 세계 최초의 비구니 율원인 금강율원을 개원함으로써 지계정신이 점점 엷어져 가는 이 시대에 한국 승가 수행풍토의 진작을 위해 새로운 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중앙종회의원, 전국비구니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비구니 발전을 위해서도 헌신했다.

 

이에 조계종은 2007년 10월 묘엄 스님에게 비구니 법계의 최고 단계인 ‘명사’ 법계를 품서했으며, 2009년에는 조계종 계단위원회로부터 비구니 전계화상으로 위촉되는 등 출가수행자의 모범이자 표상으로 존경을 한 몸에 받아왔다.

 

일생 후학양성을 위해 아낌없이 원력을 다하며 지행합일(知行合一)을 몸서 실천해 온 묘엄 스님은 12월2일 오전 9시5분 “마음공부는 상대적인 부처님을 뵙고 절대적인 나 자신을 찾는 것이다. 자기를 단속해 인천의 사표가 되고 생사에 자재해 중생을 제도하라”는 유훈을 남기고 원적에 들었다.

 

한편 묘엄 스님의 영결식과 다비식은 12월6일 11시 봉녕사 우화궁에서 전국비구니회장으로 봉행된다. 031)256-4127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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