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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김광식 박사, 조성택 교수 재반박

기자명 법보신문
  • 교학
  • 입력 2011.12.05 16:12
  • 수정 2011.12.16 14:05
  • 댓글 0

“획일화된 친일불교론 넘어선 것이 민족불교론”

딜레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택과 결과
세계불교사적 인식 강조한 것도 모호해

 

▲김광식 박사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는 최근 불교평론 ‘올해의 논문상’에 선정된 ‘근대한국불교사 기술의 문제’라는 논문에서 “그동안의 연구 방식은 단순한 ‘항일·친일’의 이분법적 구도로서 근대한국불교의 다양성을 모색하는 기회를 제거했을 뿐 아니라 불교 개혁프로그램들에 대한 역사적 의미도 못 살렸다”고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근현대불교사연구의 권위자인 김광식(동국대 연구교수·사진) 박사가 본지 기고문을 통해 “민족불교론 비판이 조계종 정체성 흔든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조성택 교수는 “김광식 교수의 민족불교론 문제점은 협소한 시야”라고 반박했다. 이에 김광식 박사가 다시 조성택 교수의 비판을 반박하는 기고문을 보내와 이를 전문 게재한다.  편집자


조성택 교수는 필자의 글에 이의를 제기하는 글을 법보신문에 기고했다. 필자 글을 꼼꼼하게 읽고, 자신의 견해를 개진한 것에 감사를 표한다. 논쟁 문화가 척박한 불교현실에서 조 교수의 기고문은 의미 있는 글이다. 그러나 조 교수의 기고문을 본 필자는 아직도 조 교수의 견해에 동의할 수 없어, 조 교수의 입장을 비평한다.


구체적인 입장을 개진하기 전에 근현대 불교의 역사 해석에서 유의할 내용이 있다. 첫째 역사 해석은 자유이지만 학문의 이름으로 전개될 경우에는 막연한 해석, 감상보다는 구체적인 사료 및 연구 성과의 섭렵에 의거해 진행되어야 한다. 둘째 조계종단사와 한국 근현대 불교사는 구분되어야 한다. 조계종단사는 조계종의 입장, 가치 판단이 투영된 산물이다. 때문에 근현대 한국불교사는 특정 종단사와는 차별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필자는 이를 평소에 생각하였지만, 이번 논쟁을 하면서 심각하게 음미했다. 그러면 이런 전제하에서 조 교수의 입론을 비판적 관점에서 살펴보자.


▷민족불교론에 대해=조 교수는 이번 반박문에서 필자가 제기한 민족불교론의 문제점을 재삼 비판했다. 조 교수는 민족불교론이 ‘시야의 협소함’으로 인해 자신이 강조한 근대와 전통사이에서 조선불교 정체성을 고민하고 새로운 불교를 모색하였던 근대 한국불교인들의 모습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고 보았다.


이번 기회에 필자가 왜 민족불교론을 제안했고, 그 입론에 의거해 근대불교를 해석·서술했는가를 먼저 밝히고자 한다. 필자가 근대불교를 연구를 시작한 20년 전에는 근대불교 연구는 황무지와 같았다. 연구자, 연구 성과물, 관련 자료집은 미약했다. 당시까지 구현된 관점은 ‘식민지불교’이거나 ‘친일불교’이었다. 이는 한국이 일제에게 나라를 강탈당하고, 근대불교인의 ‘친일’행적으로 그 관점이 투영되었다. 그러나 필자는 일제하의 불교사를 식민지불교 및 친일불교라는 수식어, 잣대로만 보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료를 찾고, 분석한 결과 민족운동, 근대화의 고민, 전통불교의 수호, 불교자주화 추구, 노선의 갈등, 세속화 등 다양한 현상을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필자는 이 같은 전체의 흐름을 묶어낼 수 있는 관점, 개념이 무엇인가를 찾으려 했다. 그 결과 ‘민족불교론’이라는 관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를 토대로 그간 배척된 대처승들의 고뇌와 지향점을 불교대중화론이라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동시에 친일파라고 비하된 대처승의 항일불교와 전통불교 수호자들이 일제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대항한 저항불교도 민족불교론의 구도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근대불교에 대한 자학적, 비하적인 인식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물론 필자가 제시한 민족불교론이 절대적인 가치, 유일한 사관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당연히 어떤 측면에서는 문제점과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필자가 제시한 ‘민족불교론’은 지난 기고문에서도 간략하게 밝혔지만 불교대중화론(생존, 불교근대화)과 불교사회화론(전통수호, 민족독립)의 결합으로 말했다. 조 교수는 이 논리에 대해 불교대중화론과 불교사회화론이 합집합인가, 교집합인가를 물었다. 조 교수의 질문에 답을 하면 교집합의 성격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조 교수는 교집합이라면 근대화와 전통수호를 동시에 추구했던 사례를 내놓으라고 지적했다. 굳이 그에 응답한다면 필자가 개별 논문에서 이미 사례 연구를 했듯이 홍월초와 백용성을 대표적인 인물로 꼽을 수 있다.

 

 

▲종로 대각사를 방문한 김구 일행. 그들은 용성 스님이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보냈기 때문에 감사의 뜻으로 대각사를 방문했다.

 


조 교수는 민족불교의 사례로 한용운을 대표적 인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한용운이 불교 생존의 추구, 근대화, 민족독립에 매진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다만 조 교수는 만해가 승려의 결혼을 주장하여, 만해를 민족불교 대표자로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만해도 불교 생존차원에서 대처를 주장했고, 실제로 그의 여러 글을 보면 불교가 갖고 있는 민족문화의 성격을 강조했다. 이렇듯 민족불교론은 이원적인 성격을 지니면서도 동시에 중첩된 경우도 있다고 본다.


필자는 민족불교론의 근거를 1919년 ‘승려독립선언서’에서 찾고 있는데, 그 선언서에 연관된 구성원(학승, 선승, 근대화 추구자, 독립운동가)이 다양한 것을 근거로 보편성을 띠고 있다고 파악했다.


한편 조 교수는 딜레마적 관계로 본 ‘근대화’와 ‘정체성’에서 ‘정체성’을 “일본불교와 구분되는 한국불교의 정체성”으로 말한다. 그러나 필자는 조 교수가 말한 위의 두 개념을 딜레마적으로 보지 않는다. 필자가 보건대 전통수호론자(수좌 등)는 한국의 전통불교를 고수하면서 근대화를 지향하는 것이 한국 불교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으로 보았다. 그에 반해 근대화주의자들은 승려의 결혼을 가능하다고 보고 대중(민중) 중심의 불교를 만들려고 했다. 이들이 만들려 한 불교는 기존 전통불교와는 크게 이질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딜레마라는 시대상황을 이해한다고 해도 정작 중요한 것은 ‘선택’이었다. 이런 이질성을 동일하게 묶을 수는 없다. 조 교수는 필자 논리가 협소하다고 하지만, 필자는 오히려 조 교수 논리가 협소하고 혼란스럽다고 본다.


▷조계종 정체성에 대해=필자는 조 교수의 민족불교론 비판이 조계종의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하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조 교수는 의미 전달이 불분명하다고 반박했다. 그래서 필자의 입장을 다시 설명하면 조 교수가 “조계종단의 민족불교적 자기 정체성은 20세기 한국불교의 딜레마적 상황에서 근대화라는 중요한 과제를 희생함으로써 얻게 된 부산물”이라고 한 것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필자가 연구한 결과, 선승을 중심으로 전통수호론자들도 근대화를 온건하게 추구했다. 선학원계열 수좌들은 별도 종단, 종헌 및 종법, 종무원 조직, 잡지 등을 만들었다. 학인들도 불교교육 제도를 개혁해 근대적인 교육을 지향하는 학인대회를 1928년에 개최했다. 또한 1941년에 설립된 조계종단의 종정, 종무고문에 선승이 참여했다. 요컨대 대처승계열만 근대화를 추구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필자는 조 교수의 민족불교론 비판은 조계종의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이는 조교수 비판에 대한 우려에서 나왔다. 현재 조계종 정체성에는 선불교론과 민족불교론이 우선적인 개념이다. 절반의 정체성을 부산물로 단정한다면 조계종의 정체성은 취약하다. 조계종은 근대기 전통불교 수호와 해방이후 정화운동을 민족불교의 구도에서 보고 있다. 나아가 조계종에는 불교(조계종)가 민족문화의 수호자, 계승자라는 자의식이 강렬하다. 조계종이 민족문화의 수호를 민족불교로 보고 있는 것도 조 교수 논리로 보면 허구적 역사의식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조 교수의 논문에 나오는 ‘악의 관점’, ‘실증적 역사적 근거가 없는 편견’, ‘왜색불교 추방이라는 미명하에 다수파를 종단에서 몰아내었다’는 등 표현은 자칫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와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근대기 불교와 근대불교의 구분에 대해=조 교수는 수년전부터 근대기 불교와 근대불교를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도 이런 입장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조 교수는 반론에서 “근대 한국불교가 한국사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불교사의 일부라는 점을 고려하는 ‘세계불교사’적인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런 입장이라면 필자도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세계불교사’적인 인식이 무엇인지 다소 애매하고, 그 인식은 오리엔탈리즘과 유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필자가 조 교수 인식의 근원을 질문했던 것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동시에 필자는 조 교수가 조계종단을 ‘반근대적’이라고 지칭한 것의 구체적인 성격과 근거를 알고 싶다. 근대기에 조계종단을 재정립한 승려들이 근대화에 적극성을 띠지 못한 것은 필자도 동의한다. 그렇다고 해서, 반근대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가? 물론 전통수호론자들은 승려결혼, 세속화, 환속, 공동체 파괴, 권력의 기생 등을 비판했다. 근대화론자의 다수가 일제에 예속, 세속화된 것은 상식이다. 그렇다면 조 교수의 주장은 ‘근대적=전통의 단절’이라는 인식을 전제한 것인데, 이는 조 교수가 불교근대화를 광의적으로 취급한 것과는 모순이다.


▷딜레마론에 대해=필자는 조 교수의 ‘딜레마론’을 비판했다. 그것은 사관이라기보다는 기묘한 감상이며, 특정 상황을 이해하는 수식어에 가깝다고 보았다. 이에 대해서 조 교수는 이전 ‘민족문화연구’ 게재 논문의 결론을 제시하는 것으로 자신의 주장을 피력했다. 그러나 필자는 그 논리를 이해할 수 없다. 조 교수는 그 글에서 “식민시기 동안 다양했던 불교계의 모색과 시행착오를 ‘딜레마’라는 하나의 관점으로 환원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딜레마’는 근대 한국불교사 전체를 조망하는 하나의 틀이며 상황을 이해하는 구도일 뿐, 근대기 동안의 불교와 관련된 개인의 삶이나 개별적 사건 하나하나를 ‘딜레마’의 관점으로 이해하거나 또 그 산물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고 했다. 이는 ‘딜레마론’을 근대불교사 전체를 보는 틀과 구도로 보면서도, 딜레마를 갖고 구체적인 사실을 보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딜레마론은 무엇인가? 전체를 보는 것에만 유효하고, 구체적인 것에는 적용하지 말라는 것 자체가 딜레마는 아닌가?


여기에서 필자는 거듭 ‘딜레마론’을 수긍키 어렵다. 단지 근대불교를 딜레마적인 상황으로 보려는 조 교수의 생각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 말이 갖는 함의는 알쏭달쏭하다. 역사에서 관점은 곧 사관이고 이론인데, 딜레마라는 관점은 여태껏 듣도 보도 못했다. 전체적인 관점과 구체적 사실 이해의 관점이 동일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딜레마는 사전에 “선택해야 할 길은 두 가지 중 하나로 정해져 있는데, 그 어느 쪽을 선택해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되는 곤란한 상황”으로 나온다. 이는 심리적인 설명이 아닌가 한다. 조 교수는 필자를 도식적인 이분법에 빠졌다고 비판하면서, 자신도 이분법으로 역사를 보고 있지는 않는가? 필자도 이분법적인 해석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겠지만, 조 교수도 근대불교에는 다양한 노선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끝으로 지난번 필자 반박문의 일부 표현에 대해 조 교수는 필자가 논쟁의 원칙에 미흡했고 부적절하다고 했다. 필자의 표현이 지나쳤다면 유감을 표명한다. 그러나 필자가 조 교수의 논문을 ‘도발적’이라고 한 것은 이전 논지를 요약하여 조계종 정체성을 비판하는 논고를 잇따라 발표함에 대한 표현이었다. 또한 비판의 ‘칼날’이라는 것은 조 교수의 비판이 그만큼 예리함을 수식한 것이었음을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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