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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스님[상]

‘영환지략’ 읽고 세계일주 떠나

▲만해 스님은 18세에 서당 훈장을 하기도 했다.

‘혁명가와 선승과 시인의 일체화’로 평가되는 만해 스님. 조선왕조의 국운이 다한 1879년 태어난 스님은 어린 시절 충남 홍성의 서당에서 ‘천자문’을 시작으로 ‘대학’, ‘통감’을 비롯해 동양의 고전을 체계적으로 공부했다. 그리고 그때의 공부는 훗날 자신의 학문과 사상을 형성하는데 주춧돌이 되었다.


스님은 어린시절 기억력과 이해력이 서당 훈장까지도 놀랄 만큼 동년배들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어서 신동으로 불렸다. ‘대학’을 읽으면서 책 중간에 먹칠을 해 놓고는 연유를 묻는 훈장에게 “여기에 나오는 정자의 주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랬다”고 했을 정도다. 중국 유학 부흥의 주역 중 한 사람인 정자의 풀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지워버렸다고 했던 것이니, 신동으로 불린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만해의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앉혀놓고 아침저녁으로 국가와 사회를 위해 일신을 바친 위인과 열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덕분에 만해는 어린 시절부터 역사에 빛났던 위인들의 기개와 사상을 흠모하게 됐고, 스스로도 그처럼 훌륭한 인물이 되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18세에 서당 훈장이 되었을 무렵, 일본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우리 땅에 발을 디디기 시작했고 중국과 일본이 전쟁을 하는가 하면,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는 등 나라의 모습은 마치 바람 앞 등불 같았다. 만해는 마침내 더 이상 이곳에 머무를 수 없다는 생각에 무작정 서울로 떠났다.


하지만 서울로 가던 도중 어느 주막에서 밤을 보내다가 문득 중국 고전에서 읽었던 ‘인간의 삶이란 덧없는 것’이라는 내용이 떠올랐고,. 이때 ‘먼저 인생이란 것이 무엇인가부터 알아야겠다’고 결심하고는 그길로 발길을 돌려 속리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속리산에서 설악산에 도인이 있다는 말을 듣고는 백담사로 옮겼다. 이때가 1905년. 드디어 만해는 삭발염의한 출가자가 됐다.


백담사에서 출가해 불교공부를 하던 만해는 당시 많은 책을 보유하고 있던 고성 건봉사로 한 번 더 자리를 옮겼다. 건봉사는 사세가 커서 재산도 많았고, 소장 도서도 많았다. 또 그곳에는 일본유학생들도 적지 않아서 나라 밖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만해는 건봉사에서 수없이 많은 책을 탐독하며 세계는 무한히 넓고, 이제껏 알지 못했던 미지의 나라도 많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중국 청나라의 서계여가 1848년 지어 1850년에 간행한 10권 분량의 세계 지리 책 ‘영환지략(瀛環志略)’을 보고는 세계 문명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졌다. 이에 넓은 천지를 둘러본 후 뜻을 펼쳐보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세계 일주에 나섰다. 그렇게 걸망에 달랑 목탁 하나, ‘금강경’ 한 권만을 담고서 처음 찾은 곳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이었다.


하지만 어수선한 민심은 조선 땅 뿐만 아니라 러시아도 마찬가지여서 우여곡절 끝에 다시 돌아온 만해는 건봉사 이학암에게 ‘화엄경’과 ‘반야경’을 배우고, 1908년 5월 근대문명이 발달한 중심부를 직접 보려는 마음에서 일본유학을 감행했다. 조동종대학에서 공부하는 한편 각처의 사찰, 공장, 은행 등을 견학하며 견문을 넓히고 그해 10월 귀국한 만해는 일본에서 보고 들은 문명을 민족운동에 활용하기로 결심하고, 명진측량강습소를 개설해 3개월 과정으로 측량기술과 초급 수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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