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처님의 다비식이 끝난 후 꾸시나라의 말라족 사람들은 부처님의 유골, 즉 사리(舍利)를 7일 동안 회당에 모셨다. 그리고 춤과 노래, 꽃과 향 등으로 부처님을 공양했다.
마가다 국왕 아잣타삿투는 부처님께서 꾸시나라에서 반열반에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꾸시나라의 말라족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전갈을 보냈다. “부처님도 왕족이고 나도 왕족이다. 그러니 나에게는 부처님의 사리를 분배받을 자격이 있다. 나 역시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큰 탑을 만들 것이다.”
웨살리의 릿차위족, 까삘라왓투의 사까족, 알라깝빠의 불리족, 라마가마의 꼴리야족, 웨타디빠의 바라문들, 빠와의 말라족도 같은 주장을 했다.
그러자 꾸시나라의 말라족은 “부처님께서는 우리들의 땅에서 반열반에 드셨다. 그럼에도 우리는 부처님의 유골을 분배받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도나라는 바라문이 그들을 향해 말했다.
“그대들은 내 말을 들으시오. 가장 수승하신 분의 유골을 분배하면서 싸움이 있다면 실로 좋지 않은 일이오. 그대들은 모두 합치되고 화합해 환희하면서 부처님의 유골을 여덟 부분으로 나누시오.”
도나 바라문의 말에 말라족 사람들이 말했다. “그렇다면 바라문이여, 당신이 부처님의 유해를 똑같이 여덟 부분으로 나누어 주시오.” 그러자 도나 바라문은 부처님의 유골을 정확히 여덟 부분으로 나누었다.
도나 존자가 부처님의 사리를 공평하게 8등분한 사건은 불전문학(佛傳文學)과 불전미술(佛傳美術)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사리 분쟁에 대한 에피소드는 중인도 산치대탑의 탑문에 조각으로 새겨질만큼 중요시되고 있다. 중앙에 수염이 풍성하고 머리칼을 올려 묶은 이가 바라문 도나이다. 그의 손에는 사리를 나누어 담을 그릇이 들려있고, 대(臺) 위에는 부처님의 유골을 만두처럼 뭉쳐놓은 사리가 놓여 있다.
|
유근자 한국미술사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