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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불교는 부르짖지 않고 묻는다

기자명 법보신문

불교는 내면적 마음에만 칩거하지 않아
중생 인식 부처님 지혜로의 전환을 요구

“삼신(三身)사지(四智)는 본체 가운데 원만하고, 팔해탈(八解脫) 육신통(六神通)은 심지(心地)의 인(印)이로다.”
이 구절을 이해하기 위하여 약간 불교의 교리에 대한 사전적 이해가 필요하다. 삼신은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을 말하고, 사지는 대원경지(大圓鏡智), 평등성지(平等性智), 묘관찰지(妙觀察智), 성소작지(成所作智)를 말하고, 팔해탈은 진여의 해탈에 이르는 8가지 해탈을 말하는데, 예컨대 우리의 마음이 어떤 색깔을 분별하고 심한 색욕을 느끼는 구속의 단계를 벗어난 해탈의 경지로부터 깨끗한 색을 관하는 단계를 지나 무색계의 네가지 영역(空無邊處/識無邊處/無所有處/非想非非想處)에 알맞는 해탈의 의미를 가리킨다.


그리고 육신통은 천안통(天眼通), 천이통(天耳通), 신족통(神足通), 숙명통(宿命通), 타심통(他心通), 누진통(漏盡通)을 말한다. 다시 위의 설명을 부연해서 설명한다면, 법신불은 만유제법의 본질이 존재론적으로 부처님의 현시에 다름 아님을 말하고, 보신불은 일체가 공덕의 힘으로 이루어져 있고, 또 무한 공덕을 나누어줄 수도 있으며, 화신불은 역사적으로 실존하는 부처님의 도래를 말한다.


인간의 세가지 의식의 형태인 무의식인 제8식인 아뢰야식, 전의식인 제7식인 말나식, 표피의식인 제6식인 의식이 부처의 경지로 탈바꿈하면, 이른바 전식성지(轉識成智=식을 전환시켜 지혜를 이룸)를 이루어 각각 대원경지, 평등성지, 묘관찰지가 되고, 마지막으로 요별경식(了別境識=외부경계에 따라 달라지는 식)인 전오식(前5識=眼耳鼻舌身)은 성소작지가 된다.


영가(永嘉)대사의 ‘증도가’의 저 구절을 다시 쉽게 옮기면, 삼신과 사지는 부처님의 마음 가운데 솟아오른 원만구족한 결정이고, 팔해탈과 육신통은 부처님의 몸이 얻은 진리의 각인(刻印)을 의미한다. 불교가 추구하는 것은 중생의 인식(識)이 모든 것을 해맑은 거울처럼 여여하게 비추는 부처의 지혜로 바꾸어지기를 요구하는 것이지, 중생인 각자의 인식작용을 근거로 하여 삿대질을 하면서 무엇을 바깥에로 향하여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불교를 향하여 그동안 세상은 불교가 관념적이고 현실성이 없다고 주장해 왔었다.


의리와 윤리도덕을 말하는 유교가 더 현실적이고, 세상을 향하여 정의를 외치던 기독교의 신학이 더 의인의 기상이 넘쳐 흐른다고 착각하였다. 불교는 세상을 잊고 헛되이 마음만을 말한다고 미덥지 않게 보았다. 그러나 불교는 세상을 잊은 적도 없고, 안이하게 내면적 마음에만 칩거한 것도 결코 아니다.


동양의 유교와 서양의 기독교가 그동안 세상의 주류로서 일을 하면서 세상을 뜯어 고친다고 일으킨 모든 역사(役事)들이 과연 얼마만큼 세상을 복되게 하였던가? 저 사상들이 세상에 많은 좋은 일들을 일으켰지만, 그 이면에 반드시 역설적으로 재앙과 해로움을 끼쳤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노자가 한 암시처럼, 복(福)과 화(禍)는 동전의 양면처럼 늘 같이 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여러번 강조한 바이지만, 정의를 열렬히 그리고 미친듯이 부르짖은 사람들이 정의를 현실적으로 실현시켜 놓았던가?


현실적으로 일어난 것은 정의의 명분 아래에 무서운 단죄의 칼날이었다. 중생이 생각한 모든 인식작용은 겉으론 객관적이라고 명분은 말하나, 정의를 갈망하는 깊은 마음의 저변에 복수의 심리가 늘 작용하고 있다. 서양의 기독교 문화가 외쳐오던 정의의 뒤안길에(마르크시즘을 포함하여) 늘 원한(怨恨=ressentiment=르쌍띠망)이 숨어 있다고 지적한 니이체의 혜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김형효 교수
한국인은 정의의 요구가 남다르게 강하다고 한다. 거기에 한국인 특유의 한풀이가 깃들어 있어 니이체가 말한 르쌍띠망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김형효 서강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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