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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스님 [중]

기자명 법보신문

불교논리학 ‘인명론’ 천 번 읽어

▲만해 스님은 화술을 배우지 않았음에도 달변가였다.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그날 금강산 표훈사에 있던 만해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저녁 공양에 열중하는 스님들을 보면서 울분을 참지 못했고, 결국 발우를 내던지며 “이 산중 중놈들아, 나라를 빼앗겼는데 밥숟가락이 주둥이로 들어가느냐”고 일갈하고는 석왕사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박한영을 만났다. 이후 박한영을 때론 도반처럼, 때론 스승처럼 여기며 많은 대화를 나눴고 훗날 그를 대상으로 10여 편의 시를 지을 만큼 남다른 관계를 유지했다.


금강산에서 백담사로 돌아온 만해는 불교개혁 이론의 완성이자 자신의 일생을 통해 지향했던 사상의 정수를 담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조선불교유신론’의 초고를 마무리 했다. 그리고 이때 시봉이 되어 함께 있던 춘성에게 원고를 맡기며 “이것을 네가 잘 간수하되 그냥 두지 말고 밤마다 조금씩 읽어 보라. 앞으로 새 시대의 불법은 이 글 가운데에서 찾도록 하라. 그렇다고 노스님이나 큰스님들이 가르치는 바를 업수이 여겨서는 지옥에 떨어진다”고 당부했다. 그리곤 다음날 새벽, 보따리 하나만 들고 백담사를 떠났다.


이후 원종의 수장 이회광이 일본 조동종과의 밀약으로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흐리려 하자, 임제종 운동을 시작해 이를 타파하는데 앞장서는 한편 경전공부와 민족운동에 전념했다. 그리고 다시 강원도로 향한 그는 1917년 12월 초 오세암에서 참선 중 바람에 무엇인가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수행자로서 지녔던 의심을 풀 수 있었다. 이때 그 마음을 “사나이 가는 곳마다 바로 고향인 것을/ 몇 사람이나 나그네 시름 속에 오래 젖어 있었나/ 한 소리 크게 질러 삼천세계 깨뜨리니/ 눈 속에도 복사꽃이 펄펄 날린다”고 읊기도 했다.


견성 후 더욱 단단한 신심과 확고한 의지로 민족운동에 뛰어든 그는 1919년 3월1일, 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을 지으며 불교계 대표로 3·1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이 일로 서대문형무소에 갇힌 그는 여기서 또 한 번 그의 대쪽 같은 결기를 드러낸다. 독립만세운동 참여자들을 극형에 처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우는 사람들이 생겨나자 그들을 향해 “이 비겁한 인간들아 왜 우는가. 나라 잃고 죽는 것이 그렇게 슬프더냐. 이것이 독립선언에 서명했다는 민족대표의 모습이냐”며 똥물을 집어던졌던 것이다.


이처럼 민족운동에 대한 굳은 신념을 갖고 있는 만해는 또 한편으로 달변가이기도 했다. 감옥에서 풀려난 후 수많은 강연회에 연사로 참여했고, 한 번은 일본 형사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우리의 원수는 소련도 아니요, 미국도 아닙니다. 물론 일본도 아닙니다. 우리의 원수는 바로 우리들 자신입니다. 우리들 자신의 게으름, 이것이 바로 우리의 가장 큰 원수라는 말입니다”라며 일본을 포함한 주변 열강을 비판하고 국민들의 어리석음을 꾸짖기도 했다.
특별히 화술을 배우지 않았던 만해의 이같은 달변은 불교논리학으로 불리는 ‘인명론(因明論)’을 수 없이 읽은 데서 나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과 비슷한 인명론은 인식대상의 부재를 나타내며 형이상학적 실체관을 부정하는 것으로, 인도에서 5∼6세기에 형성됐다. 불교 논리학자 진나(陳那, Dignaga)가 등장하기 이전의 인도 논리학을 ‘고인명(古因明)’, 진나 이후에 완성된 논리학을 ‘신인명(新因明)’이라 부르고 있다. 사학자 김광식은 ‘우리가 만난 한용운’에서 “만해가 이 ‘인명론’을 천 번이나 읽었다”고 쓰고 있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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