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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기복성과 주술성-6

기자명 법보신문

불교는 깨달음에 이르는 과학적 믿음
주술 효험 얻기보다 발심 동력삼아야

유럽의 중세는 한마디로 ‘주술의 정원’이었다. 그 어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라 할지라도 면죄부를 사면 천국에 갈 수 있었고, 연금술이 행해지고, 선량한 여성들이 마녀로 지목되어 화형을 당하였다. 무엇보다도 페스트로 유럽 인구 중 거의 절반에 달하는 2400만 명이 죽어 가는데, 성직자들은 신의 징벌이라며 기도를 하라 외쳤다. 마을을 순례하며 채찍질로 자학하는 채찍질 고행단이 등장하였고 곳곳에서 유태인을 비롯한 소수자들을 발병자로 매도하여 학살하였다.


이런 주술의 정원에서 인간을 해방시킨 것은 이성과 과학이었다. 시체를 불태우고 알코올로 소독한 곳에서는 더 이상 페스트가 번지지 않았다. 이어서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의 지동설과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하였다. 지동설과 진화론이 옳다면 하나님은 우주와 인간을 창조하지 않은 것이다. 치열한 논쟁이 있었지만, 기독교는 과학을 수용하였다. 지금도 평면과학회는 지구가 구형이 아니라 평면이라 억지 부리고, 창조과학회는 창조론을 주장하지만, 이는 기독교 근본주의자의 광신으로 폄하될 뿐이다. 거의 모든 기독교도들은 지동설과 진화론을 진리로 받아들인다. 더 나아가 교리와 과학의 결합을 시도하여, 하나님이 빅뱅과 진화 자체를 창조하셨다고 해석한다. 중세 기독교가 거짓으로 혹세무민하고 학살과 마녀사냥과 같은 야만적인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현대 기독교로 탈바꿈하여 번창할 수 있었던 것은 현대를 구성한 양대 기둥인 과학과 자본주의를 수용하였기 때문이다.


불교 교리는 지동설과 진화론은 물론 상대성이론과 빅뱅이론, 카오스이론, 초끈이론 등 최첨단의 과학과 맞서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도 주술이 행해지고 있다. 거의 모든 불교 의례에 주문, 주법, 진언이 빠지지 않는다. 심지어 일부 스님들은 점을 치고 부적을 써주면서 상당한 돈을 챙긴다.


21세기 오늘의 시점에서 현대과학을 믿는 젊은이들을 부처님 앞으로 인도하려면, 불심이 지극한 이들이 현대과학을 접하며 갈등하지 않게 하려면, 종단은 정법의 칼을 단호하게 휘둘러야 한다. 우선 불교에 스며든 무속의 자취를 한 점도 남김이 없이 잘라내야 한다. 점을 치고 부적을 써주면서 이익을 챙기는 자가 있다면 벌을 내려야 한다. 밀교 관련 경전도 경(經, Sutra)의 지위에서 끌어내려 논(論, sastra) 정도의 위상에서 다루어야 한다. 종단은 가칭 ‘불교와 과학위원회’를 두어 경전 중 현대과학과 부합하지 않는 부분에 대한 연구와 논의, 교리와 현대과학의 결합, 교리의 현대과학에 입각한 해석, 현대 과학기술에 대한 정법에 따른 해석과 대응, 전파 등을 주도해야 한다.


그렇다고 모든 주문과 주법, 진언을 없애라는 것은 아니다. 주문을 거듭 암송하다 보면, 신령스러운 기운에 휩싸이고 내 몸과 마음이 전혀 다른 차원으로 전이하고, 이어서 신비체험을 하게 된다. 내재(內在)와 초월은 인간을 형성하는 두 영역이다. 초월을 향한 의지, 영성, 신비주의 없이 종교는 성립할 수 없다. 이성과 과학의 이름으로 감성과 신비의 영역까지 통제한 것이 현대성이 야기한 모순이다. 감성과 영성은 이성과 과학으로 도달할 수 없는 진리와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 신비체험 없이 우리 인간이 부처로 거듭날 수 없다.


▲이도흠 교수
불교는 깨달음에 이르는 아주 과학적인 믿음이다. 주술의 효험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지극한 깨달음에 이르려는 마음을 일으키는 발심의 동력으로서, 현세에 이익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해탈하여 왕생하기 위한 염원으로서, 초월적 신격에 의지하여 복을 빌려는 행위가 아니라 복을 지으려는 나에게 강한 믿음을 주기 위한 방편으로서 주문과 진언은 정당하다.


이도흠 한양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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