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교의 인간관과 세계관-연기②

기자명 법보신문

연기는 우리 자신과 세상이 존재하는 방식
번뇌가 곧 보리임을 자각하면 삶은 복될 것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것을 우리도 똑같이 깨달아서 삶의 괴로움으로부터 해방하고자 하는 열망은 모든 불자들의 로망이다. 다만 어떻게 깨달을 수 있는지, 얼마나 효과적이고 실용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지 그것이 문제다.
불교의 모든 가르침들은 어떻게 하면 우리도 부처님처럼 깨달을 수 있는지 그 방법들을 개인의 수준과 조건에 맞추어 팔만사천가지(셀수 없이 많다는 의미로)로 설명하고 있다. 그 뿐이 아니다. 천백억화신불, 온 우주에 가득한 불보살님들이 다양한 인연으로 우리들의 근기에 맞추어 깨달음을 돕는다고 한다. 또 평생을 공부해도 다 공부하지 못할 정도로 무수히 많은 경전들과 논서들이 있다. 그런데 그와 같은 다양한 방편들이 애초에는 우리들의 수준에 맞추어 깨달음을 보다 효과적으로 돕고자 시작된 친절함이고 연민이었을 텐데 세월이 흐르면서 더러는 불교를 이해하는데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만큼 처음 불교공부를 하고자 마음을 낸 사람들에게는 지나치게 넘치는 방편들이 어디서 어떻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복잡함과 혼동을 주기 때문이다. 무작정 인연이 닿는 데로 그 모두를 공부하기에는 이 한생이 너무 짧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혼신을 다해서 오직 치열하게 수행하셨던 부처님께서도 깨달음을 이루는데 9년의 세월이 필요했는데 이것저것 다 챙기면서 살고 있는 지금 우리들이 단번에 끝장을 보겠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날마다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믿음과 확신을 갖고 싶어 한다는 사실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어떻게 수행해야 우리가 어제보다 더 성장한 오늘, 오늘보다 더 지혜로워진 내일을 확신할 수 있을까. 어떻게 공부해야 우리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연기를 통찰하고, 연기적 삶의 태도와 가치를 내재화하고 일상의 삶과 인간관계를 통해서 그것이 드러나게 할 수 있을까.


사실 연기는 말이고 꼬리표다. 우리들 자신과 세상이 존재하는 방식,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과 세상 자체를 보지 않고 연기라는 개념에 메이면 연기는 더 이상 손가락 역할조차 포기된 개념이고 관념이고 망상이 된다. 그렇다면 연기라는 이 특별한 손가락은 우리 자신과 세상의 그 무엇을 가리키고자 하는 것인가? 나는 그것을 사성제의 고성제와 집성제의 단계에서 보면 아집(我執)과 집착·고착(執着·固着)을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또 멸성제와 도성제의 단계에서 보면 무아(無我)와 무상(無常)를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연기는 아집과 고착, 무아와 무상이 우리의 내면과 세상 속에서 각각 고통과 열반, 어둠과 빛, 무지와 지혜로 작동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손가락인 것이다. 우리들이 전자의 단계에 휩쓸리고 있는 순간은 중생의 무지가 치성한 순간이고, 후자의 단계에 휩쓸리고 있을 때는 우리의 불성, 본각이 작동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연기는 우리들로 하여금 괴로움의 순간에는 우리의 내면에 아집과 고착·집착이 출현하고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라는 메시지다. 나아가서 무상과 무아가 작용하는 순간의 만남, 경험이 진실한 성장과 행복을 낳는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서광 스님
결론적으로 부처님이 깨달으신 연기를 우리도 깨닫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과 세상을 통해 무상과 무아를 보아야만 한다. 그런데 집착과 아집을 통하지 않고 진실로 무상과 무아를 깨닫는 길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번뇌가 곧 보리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살면서 아주 많이 힘들어지는 순간에, 그 순간이야말로 깨달음의 문이 열려 있음을 자각할 수 있다면 더 없이 복된 삶이 되지 않을까 쉽다.
 

서광 스님 동국대 겸임교수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