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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수행은 때묻은 옷을 훌렁 벗을 뿐

기자명 법보신문

이분법적 사고방식 버려야 진정 불교도
존재론적으로 보면 모두가 부처님 가피

“상근기는 한번 결단하여 일체를 깨칠뿐, 중하근기는 많이 들을수록 더욱 믿지 않도다. 스스로 마음의 때묻은 옷 벗을 뿐, 뉘라서 밖으로 정진을 자랑할건가.” 불교는 기독교처럼 열열한 신앙을 자랑하는 그런 신앙교가 아니다. 불교는 다 아시다 시피 수행의 철학이고 종교이다. 불교는 우선 수행의 철학에서 유치한 신앙을 절대로 자랑하듯이 남들 앞에서 외치지 않는다. 불교도 중에서 출가 스님이든, 재가 신도이든, 남들 앞에서 보란 듯이 유창하게 설변을 시정의 약장수가 약팔듯이 하는 사람이 있든가? 불교의 품격은 고요한 명상과 깊은 사색에서 나오지 떠들석한 기도의 소음과 쉬지 않고 뇌까리는 열변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그렇다. 불교의 수행은 때묻은 옷을 우리가 벗듯이 그렇게 조용히 일어나는 일이지, 세상일체가 여여하게 보이는 그대로 부처님의 법계이므로 또 달리 애써 진리를 구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 우리가 전에 살펴 본 바와 같이 승찬대사의 ‘신심명’의 한 구절처럼 수행에서 우리가 망상을 일으켜서 진리를 구하려고 노력하기를 그만둘 뿐이지, 별도로 진리를 구하려고 헛수고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동안 중생들은 사바세계에서 부처의 실상을 구하려고 애써 노력하기를 애쓴만큼 구원을 받는다고 헛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자들과 도덕론자들은 애써 진리의 세계를 찾는다고 마음의 노력을 경주하여 마지 않았다. 철학과 진리의 구도행위는 다 어리석은 생각의 노름에 불과하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노자의 가르침처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일체가 쓸모 없이 생긴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흔해 빠진 자갈도 다 저 쓸모가 있는데 다만 인간의 눈이 어리석어서 그 쓸데를 찾지 못하는 것일 뿐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부처님은 이 세상에 무엇이 진리인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진리를 이용할 것인가를 알려주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진리를 사용하는 방도를 모르면 그것은 아무리 고귀해도 진리가 안된다. 이것은 마치 약의 처방과 같다. 약의 처방방도를 모르면 그 약은 약이 안되고 독이 된다. 약은 이 세상 곳곳에 놓여 있다. 약과 독이 항상 같이 공존한다. 같이 있는 약을 독으로 쓰지 않고 약으로 쓰도록 생각을 바꾸는 일이 곧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불교는 방편의 사상이고 방편의 철학이다. 불교에서 원리원칙만 고집하면 그것은 원리주의(fundamentalism)의 함정에 빠져 자유자재한 방편의 교설을 놓치고 만다. 십(十)바라밀에서 방편바라밀이 엄연히 존재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불교도가 되려면 세상을 진위로 분명히 가리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 자갈밭, 모래밭, 그리고 풀밭이 있는 그대로 여여하게 진리의 자기 현시인데, 자갈밭과 모래밭을 버리고 풀밭만 찾으려고 애쓰는 일이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기독교는 너무 쉽게 신과 우상의 차이를 강조한다. 강조하는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을 경직화시키는 그 사고방식에서 그 신이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우상으로 전락한다. 신을 경직된 원리원칙으로 숭배하는 그 마음에서 그들은 이미 우상숭배의 길로 들어 서 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자가당착이다. 향긋한 꽃향기에 매료되어 다른 생각을 일체 하지 못하는 그 마음이 부처님의 마음이며, 목욕하여 몸을 깨끗이 씻는 마음이다.

 

불교는 무식한 할머니가 자식들을 위하여 고목나무에 정성스럽게 기도하는 그 마음도 존중하며,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을 명상하면서 시상을 읊조리는 독일시인 헤르만 헷쎄의 마음도 사랑한다.

 

▲김형효 교수
이 세상을 소유론적으로 보면 일체가 다 독이 되지만, 존재론적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다 부처님의 가피가 된다. 그렇다. 개똥도 약이 된다. 이 세상에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가리지 말고 다 긍정하자. 
 

김형효 서강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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