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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전 스님 [상]

기자명 법보신문

평생 책 4만권 읽은 근대 선각승

▲석전은 추사가 백파 스님에게 미리 지어주었던 이름이다.

불교계의 유신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외세에 대응한 ‘근대 선각승’으로 존경받는 석전 박한영 스님은 1870년 9월14일 전북 완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친을 여읜 스님은 유년시절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활했음에도 타고난 총명함과 남다른 학문적 관심은 감출 수 없어, 서당을 가까이 하면서 그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아홉 살 되던 해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한 스님은 ‘통사’와 ‘사서삼경’을 통달하고 열여섯에 서당에서 학인들을 교육시킬 정도로 학문적 성숙도가 깊었다. 1886년 17세에 출가해 승려로서 배워야 할 바를 익히기 시작한 스님은 1890년 장성 백양사 운문암 김환응 스님 문하에서, 그리고 1892년 당대 최고 강백으로 손꼽히던 선암사 김경운 스님에게 경학을 배우고 건봉사와 명주사에서 여러 경전을 연찬했다. 이처럼 당대 최고 강백들로부터 교학을 연찬한 스님은 1892년부터 1906년까지 선 수행을 위한 안거에 들어 15하안거를 성만하는 동안에도 산철이면 어김없이 전국 유명 강사들을 찾아 수학하기에 게으름이 없었다.


구암사에서 설유처명 스님의 법을 이은 스님은 당호를 영호로 정했다. 이때 석전 또는 석전산인이라는 시호를 갖게 됐으며, 이 시호는 추사 김정희가 일찍이 정해둔 것이었다. 추사는 백파 스님에게 석전, 만암, 설두, 다륜, 환응이라는 글씨를 적어 주면서 훗날 도리를 깨친 자가 있으면 이로써 호를 삼으라는 부탁을 했고, 이것이 설유처명에게 전해졌다가 마침내 석전 박한영 스님에게 전해지면서 이름의 주인이 정해진 것이다.


불교청년의 교육을 중시했던 스님은 1912년 ‘조선불교월보’ 9호에 ‘불교 강사와 정문금침’을 발표해 강사들의 병폐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때 스님이 지적한 다섯 가지는 혼자만 고고한 체 하는 것, 약간의 경전을 본 외에 별로 아는 것도 없이 산만한 것, 독선에 빠져 겸허함이 없는 것, 인색함에 빠진 것, 자기 단점을 감추기에 급급함 등이다. 스님은 ‘이런 강사에게는 이마에 금침을 놓아 그 병폐를 고치면 효능이 널리 이익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석전 스님의 이러한 기개와 법문의 바탕은 책이었다. 평생 4만권에 가까운 도서를 구해 읽은 스님의 장서에는 우리나라 고서, 중국 및 일본에서 출간된 서적 등을 아우르고 있어 독서의 깊이를 짐작케 한다. 특히 중국 청나라 말기 사상가 담사동이 1896년에 짓고 1899년 일본과 중국에서 처음 출간한 ‘인학(仁學)’을 1913년 번역해서 연재한 일은 스님의 독서량이 얼마나 많았는가를 알게 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불교 유신에 뜻을 두고 동서양의 다양한 지식에 관심을 보이며 힘닿는 대로 서적을 구해 읽었던 스님이 당시 해외에서 출간된지 15년밖에 되지 않은 ‘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 내용 때문이었다. 담사동은 서양에서 들어온 물리학의 에테르 개념을 빌어 인을 해석했다. 담사동은 이때 인은 천지만물의 근원이며 그것은 유심과 유식에 다름 아니라고 보고, 인(仁)과 통(通)의 기본 관점에서 불인(不仁)과 불통(不通)한 것은 제거해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석전 스님이 서세동점의 당대적 상황에서도 담사동이 중국의 미래를 건설할 대안사상으로 불교를 지목하고 거기에서 희망을 본 점에 공감하며 이 책을 깊이 있게 읽고 번역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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