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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인간관과 세계관-무상(無常)①

기자명 법보신문

무상에 대한 사유는 연기의 깨달음으로
관념적·개념적인 무아와는 근본적 차이

우리는 지난 호에서 연기를 깨닫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과 세상만물을 통해 무아(無我)와 무상을 보아야만 한다고 했다. 그런데 무아를 보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다시 말해 무아를 통해 연기를 보는 일이 현실적으로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는 의미다.


사실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에게는 마음이 있고 육신이 있다는 느낌과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설사 때가 되면 사라지고 없어진다고 해도 현재 살아있는 이 순간만큼은 육신과 마음을 통해 우리의 존재를 끊임없이 체험하고 확인하기 때문에 그것을 우리 자신과 동일시하는 업식(業識) 또한 지울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무아를 사유하는 일은 자칫 잘못하면 우리의 마음과 육신을 부정하고 현실의 삶과 존재를 부정하는 끊임없는 피드백을 알게 모르게 우리 스스로에게 심어주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그 결과 수행과 영육의 학대를 혼동하고, 더러는 그 반작용으로 과도하게 자신의 건강에 집착하는 현상을 초래하기도 한다.


개인적 의견이지만 연기를 이해하고 깨닫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우리 자신과 세상을 통해 무상을 사유하고 알아차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부처님께서는 조건 지어진 것은 모두 변화한다고 했다.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변화하지 않는 것을 발견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우리들의 남편, 아내, 자식, 부모, 친구 등이 세월이 흘러도 결코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면 그는 필시 깊은 실망감과 배신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 배신감과 실망감의 일차적 원인이 인식의 주체인지 인식의 대상인지, 아니면 상호작용인지는 이차적 문제다.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는 누구도 변화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환경과 조건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이다.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정신적 신체적 변화, 무상을 사유하고 알아차리는 일은 무아나 공(空)을 사유하고 알아차리는 일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왜냐하면 무아나 공은 솔직히 관념이고 개념의 성격이 더 강하다. 이름이고 꼬리표다. 그래서 이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개념적 정의가 필요하고, 그러한 과정에서 아주 난해하고 복잡한 단어들이 어지럽게 나열된다.


그러나 무상은 다르다. 무상은 그야말로 우리들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변화 그 자체다,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가리키는 손가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들뜬 마음을 잠시만 가라앉히고 바라보면 쉽게 보여진다. 무상은 정신적 수준의 차이와 크게 상관없이 누구나 쉽게 사유하고 알아차릴 수 있는 아주 좋은 명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자신을 포함해 우리의 감각과 의식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들이 모두 무상 그 자체다.


우리의 의식이 뭔가에 붙잡혀 있고, 집착되어 있으면 변화를 감지하는 일 또한 쉽지는 않다. 그러나 무상을 보지 못하는 삶은 반드시 때가 되면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오해와 착각이 그 뒤를 따르게 되어 있다. 그리고 오해와 착각은 다시 고통이라는 열매를 통해 우리들로 하여금 무상을 보도록 종용한다. 그런데 모든 수행이 그러하듯이 무상을 보는 일 또한 중도(中道)를 벗어나면 안 된다. 무상에 대한 지나친 둔감함은 고통과 무지를 낳고 반대로 지나친 민감함은 불안과 무지를 낳는다. 왜냐하면 무상에는 변화의 속도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서광 스님
무상을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 무상한 특정한 대상 속에 내포된 변화의 속도를 보는 것이고 그 속도와 함께 흐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게 더불어 변화하고 춤추는 것이 연기적 존재, 머무름의 모양일 것이다.
 

서광 스님 동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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