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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마음 가운데 부처님 계시다는 얘기를 수시로 하고 또 듣는다. 그 같은 얘기를 하거나 듣는 사람들은 그 가르침에 따라 얼마나 삶을 충실하게 살고 있는가. 부처님께서 우리의 마음 가운데 계시다면 우리의 행동과 말과 생각들을 항상 지켜보고 계실 텐데.
포교사들의 삶은 나의 말과 생각과 행동을 부처님께서 항상 지켜보고 계시다는 생각을 놓쳐서는 안 된다. 포교의 길, 중생제도의 길은 험난하고 어려운 길이지만 항상 부처님께서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시고 계시기에 경건하게 살아야한다. 그럴 때 부처님께서 나를 지켜주실 것이다. 평생을 몸과 마음을 바쳐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고 연마하며 살아온 지난날의 체험을 통해 부처님께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부처님께서 지켜보고 계시니 항상 기도 속에 부처님을 열심히 모시고 살아가라. 정진하는 포교사의 앞날은 부처님께서 지켜주시리라.
부처님 말씀대로 우리들은 매일매일 매순간마다 눈과 귀, 코 등 모든 감각기관을 동원해 일체의 것을 찍어대며 산다. 항상 모든 것을 찍어대기에 화엄에서는 해인(海印)이라는 말을 쓴다. 하나의 거울을 생각해보라. 거울에 찍힌 대상들은 하나같이 잘못된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것을 고치려한다. 거울은 모든 것을 고치게 하는 위신력을 갖는다. 하나의 유리조각으로 만들어진 거울도 그러할진대 우주바다는 부처님 마음이요, 진리의 마음이요, 모든 것을 찍어대는 거울과 같은 마음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마음거울이라는 말을 쓴다. 심경이 그것이다.
무한의 바다 물방울 하나를 바다라 부르지는 않지만 바닷물 한 방울에도 바다의 성품이 들어있다. 우리들 모두가 부처님의 바다에 떠있는 물방울 하나에 해당한다면 우리들 마음 가운데에도 부처님의 성품자리가 들어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들 마음에 불성이 있다는 얘기가 바로 이를 의미한다. “물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얘기가 한때 회자된 적이 있다. 물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물이 신이요, 부처님 아니겠는가. 화엄에 ‘주수신’이라는 말씀이 계시 듯 물 한 방울에도 우주가 들어있고 부처님이 계시다면 나의 말 한마디, 생각 하나, 행동 하나에도 부처님이 계시고 부처님께서 찍고 계시다는 생각으로 살아야만 한다. 갖가지 업장으로 고통을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같은 마음으로 산다면 분명히 부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다.
부처님의 위신력을 모르는 자가 어리석게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그 결과는 괴로울 수밖에 없다. 우리들 마음 가운데 부처님 거울, 부처님이 계시기에 무엇하나 찍히지 않는 것이 없고 무엇 하나 씨앗이 되지 않는 것이 없다. 진정한 포교사는 항상 부처님께서 내 마음 가운데 계시고 모든 것을 찍고 계시다는 생각에 투철한 삶을 살아야한다.
‘시주화주상봉’이라는 말이 있다. 시주의 공덕이나 화주의 공덕이 만난다고 하고 부처님 말씀 한마디 전하는 공덕이 항하사의 칠보로 보시하는 것보다 낫다고 하신 부처님 말씀을 음미해보라. 많은 불자들에게 끝없이 정진하고 그들로 하여금 불보살님께 시주하는 마음을 이끌어내는 화주공덕이 어찌 작은 일이겠는가. 공양미 삼백석에 목숨을 던진 심청이의 공덕에 심봉사가 눈을 떴다하듯 화주승의 공덕은 눈을 뜨게 한다. 진실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심청이의 맑은 마음이 하늘을 움직인 것이겠지만 그를 권유한 화주승의 공덕이 아니었다면 어찌 심봉사가 눈을 열었겠는가. 항상 부처님께서 내 마음 가운데 계시고 우주 무량한 법계는 해인삼매(海印三昧)의 위신력 가운데 계셔서 모든 것을 찍어대고 계시기에 부처님 말씀을 전하고 시주하게 만드는 공덕은 제불보살님께서 증명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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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광 스님 서울 능인선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