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안 각원사 조실 경해 법인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 새해특집
  • 입력 2012.01.02 15:40
  • 수정 2012.01.04 12:05
  • 댓글 0

임진년 새해 선지식을 만나다

견성보다 지성 필요한 시대…실천없는 깨달음은 공허

 

1인1천원 모연 100만명 동참
34년 만에 500여만명 ‘훌쩍’

 

높이15m 청동대불·20톤 범종
3만여 평 대지에 본사급 ‘불사’

 

 

▲경해 법인 스님

 


1977년 4월 초파일. 법인 스님은 높이 15m 대불(아미타불 좌불상) 앞에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전각도 없고 요사채도 없었다. 인부들이 기거하는 판잣집만 서 있을 뿐이다. 가람을 어떻게 일궈갈 것인가. 막막했다. 한 생각이 스쳐갔다.


1958년 해인사 장경각에서 기도할 때 법인 스님은 묘안을 내 놓은 적이 있다. 해인사를 찾는 불자를 대상으로 1인 100환 동참인 8만 명을 모아보자는 아이디어. 만 1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하며 6만 명에게 동참을 권유했다. 장경각 보수 불사에 적지 않은 힘이 되었을 터였다.


‘그렇다. 일본 명월사 신도와 각원사 대불을 친견하러 오시는 불자가 있지 않은가. 불자들의 불심보다 더 큰 힘을 어디서 얻을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나에겐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가.’ 새로운 힘이 솟아났다.


그 다음 날부터 1인 1천원 동참 100만인 불사에 들어갔다. 100만을 넘고, 200만을 넘어 2011년 4월 8일을 기점으로 500만 명을 넘어섰다. 본사급 규모의 천안 각원사는 법인 스님의 원력과 불자들의 불심이 한데 뭉쳐 일궈 낸 쾌거다. 연간 40만 명이 각원사를 참배한다. 포교는 물론 복지와 수행도량으로도 거듭나고 있다. 충청불교 중흥의 원동력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한 가지 의구심이 든다. 정말, 기도만으로 이러한 대작불사가 가능한 것일까? 일본 명월사에 주석하면서도 20만 명에 육박하는 재일동포를 교화했다. 원은 누구든 세울 수 있지만 힘은 사람마다 다르다. 원력성취 여부는 여기서 결정 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힘의 원천이 궁금했다. 새해를 맞는 불자들이 귀감으로 삼을 수 있는 메시지가 분명 여기에 있을 듯해 각원사 조실 경해법인 스님을 친견했다. 처음으로 뵈었지만 고고함이 전해져 왔다. 단호함과 인자함이 깊게 배여 있는 듯 했다. 상좌 청화 스님이 찬한 것처럼 스님은 ‘높은 하늘 날아와 앉은 푸른 솔 위의 백학’이었다.


“새해입니다.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이니 새롭게 준비해야 합니다. 유서(儒書)의 삼계도(三計圖)에 의하면 일생의 계획은 어릴 때 있고, 일 년의 계획은 봄에 있고, 하루 계획은 새벽 인시에 세워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려서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아는 바가 없고, 봄에 밭 갈지 않으면 가을에 수확할 것이 없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지 않으면 그날의 새로운 계획을 세울 수 없다는 뜻이다. 잠시 숨을 고른 법인 스님. 그런데 눈빛이 달라졌다. 강경했다.


“경전 등의 내전은 물론 사회, 역사 등의 외전도 공부하세요. 한 사람의 공부가 만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셔야 합니다.”


법랍 66, 세수 82세의 법인 스님이 새해를 맞는 사부대중에게 전한 단호한 일구. ‘꼭 그래야만 한다’는 간절함이 묻어났다.


“마음이 안정되면 세상의 모든 이치를 알 수 있다는 ‘심재정칙 능지세간 능멸제상’(心在定則 能知世間 生滅諸相)이라는 말이 있지요.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제대로 알고 써야 합니다. 이 말을 앞세워 알음알이인 사료(思料)는 공부에 방해 된다고 하면 안 됩니다. 원효, 의상 스님은 공부 안하셨습니까?”


곡해된 ‘사교입선’을 정면 비판하고 있다. 이 시대엔 차라리 ‘사선입교’가 맞다고 할 정도다. 스님은 자신의 지난날을 회고했다.


가야산 해인사 가는 길에 적송으로 우거진 숲 홍류동 계곡에 다다랐다. ‘누더기 수좌’로 알려진 영천 스님이 고운 최치원의 시 한수를 들려줬다.


‘스님, 청산이 좋다 말하지 마오(승호막도청산호 僧乎莫道靑山好)/ 산이 좋다면서 어찌 산을 나오시오(산호여하복출산 山好如何腹出山)/ 뒷날 내 종적 한 번 두고 보겠나(시간타일오정종적 試看他日吾踪跡)/ 청산에 한 번 들면 다신 안 돌아가리(일입청산갱불환 一入靑山更不還)’


‘어릴 때부터 산에 들어가 사는 게 꿈’이었던 고운은 898년 그의 나이 42세 때 가야산으로 들어갔다. 산에 오르는 던 중 마침 산문 밖으로 길을 나서는 스님과 마주쳤다. 이 시는 당시 심경을 노래한 고운의 ‘입산시’. 이후로 최치원은 종적을 감췄다. 순간, 법인 스님도 결심했다. ‘불도와 학문을 이루기 전에는 세상에 나가지 않겠다.’ 1946년 열 여섯의 행자 ‘법인’이 세운 원력이다. 하지만 문중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불립문자’ 일변도의 교학 풍시가 휘감고 있었다.


“모두들 시대적 한계 안에서 머물고 있음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천년, 이천년 전의 고전만 배우는 것으로는 시대성과 대중 사회를 폭넓게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저는 재 발심, 재 출가를 결심했습니다. 내전(불교경전)과 외전(사회학문)을 겸비한 교육이 이 시대 승가에 필요하다고 절감한 겁니다.”


홍류동 결심 후 또 한 번의 결심이 있었다. 아니, 원력이 있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 한반도가 총성으로 가득 찼을 때도 법인 스님은 해인사 백련암에서 3년 동안 기도 정진했다. 해인사도 폭격한다는 소문이 돌아 모두 떠나갔지만, 스무 살의 법인 스님은 자리를 지켰다. 가람수호비와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 탁발을 해야 했다. 합천은 물론 대구를 거쳐 경주까지 내려갔다. 경주 석굴암 부처님 앞에 섰다. 벅차면서도 깊은 환희심이 밀려왔다. ‘부처님!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큰 도량 건립불사를 이룩할 수 있는 힘과 길을 인도해 주세요. 제가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도록 배움의 기회를 주십시오. 법에 의지해 끝까지 해 내겠습니다.’ 법인 스님의 대 원력은 이 때 세워졌다.
1951년 탁발을 해서 매월 쌀 세 말 씩 내놓는 자비량(自費糧) 학승으로서 해인강원에 입학했다. 이렇게 시작한 공부는 동국대학교 사학과,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를 거쳐 동국대학교 대학원을 마치고 1987년 일본 대동문화대학에서 ‘서산대사의 선가귀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학교 3학년 학사 편입 당시, 불교학과에서 사학과로 편입한 이유가 있다. “사학과, 불교학은 내가 일생동안 해야 할 것이라 생각했지요. 역사란 인간이 살다간 구체적인 발자취이기 때문에 인간과 그 문화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과거를 아는 것은 현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미래를 가늠하는 데도 필요합니다.”


동국대 대학원을 마치고 일본 유학길에 오르려 할 당시, 만류하는 사람이 많았다. 일본에 가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고 해도 ‘문자와 명예’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생사를 초월할 수 있는 선승, 즉 도인이 되어야지 부질없는 앵무새 짓을 해 무엇 하겠냐는 것이었지요.”

 

 

▲각원사 청동 남북통일기원 청동대불. 법인 스님과 재일동포 각연 김영조거사의 인연으로 나툰 부처님이다. 높이 15m, 무게 60톤. 태조산 중봉에 봉안되어 있다.

 


그렇다고 석굴암에서 세운 원력을 포기할 법인 스님이 아니었다. 도일 후 17년 만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기간 중에도 명월사와 각원사를 창건함은 물론 청동 대불과 범종 불사까지 해 냈다.


스님은 수행자들의 이상인 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위해서는 ‘오늘’이라는 시간과 ‘이곳’이라는 공간을 함께 하는 수많은 대중들의 정서와 애환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시에 그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으며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 문호 푸쉬킨은 ‘양식있는 인간이란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가를 신속하게 판단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 했는데 일리 있습니다. 불교를 공부한 사람도 사리분별이 뚜렷해야 합니다. 스님은 이 시대,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그 해결책은 무엇인지를 나름대로 통찰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대중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스님은 ‘견성’만 강조하는 풍토 역시 개선되어야 한다고 짚었다. “견성만 하면 끝인가요? 깨달아서 부처님이 되었다면 부처님다운 행을 보여야지요. 실천 없는 깨달음은 공허합니다. 관념 속 깨달음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봅니다.”

 

실천 없는 ‘견성’은 관념일 뿐
교학 중요 인식해야 한계 극복

 

사회에서 최선 다한 60대 불자
‘출가’해 불법홍포 매진해 주길


‘견성보다 지성이 필요한 시대’라고 갈파한 스님의 뜻이 읽혀졌다. 법인 스님은 견성이나, 활기 넘치는 선구가 가득한 선어록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선을 제대로 하려면 교학을 탄탄히 다져 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은 것이다. 선교를 둘로 보는 것 자체를 문제 삼고 있음이다.


“선가귀감의 선교문에 잘 나와 있습니다. 선교의 근원은 세존이십니다. 선과 교를 나누어 전한 이는 가섭과 아난존자입니다. 무언(無言)으로 무언에 이르는 것이 ‘선’이고, 유언(有言)으로 무언에 이르는 것이 ‘교’라 했습니다. 세존의 마음과 말씀을 공부하고 헤아려야 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더 중요한 건 실천입니다. 그래야 불제자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법인 스님은 법석에서 내려치는 주장자 소리보다 국회에서 두드리는 망치 소리의 울림이 더 큰 시대임을 직시해 보라 한다.


“할 한마디에 단박에 깨우쳐 보라 하는데, 몇 명이나 그런 수승한 근기를 갖고 있습니까? 관념은 관념일 뿐입니다. 교학과 사회적 지성이 겸비되지 않은 주장자 소리, 알고 있어도 실천 않는 주장자 소리엔 감동도 파급력도 없습니다. 소통이 안 되는데 공감할 수 있습니까? 공감이 안 가면 감동도 기대할 수 없지요. 국회 망치 소리보다 주장자 소리가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시대를 우리는 맞이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 모두가 선교를 제대로 겸비해야 합니다.”


그러한 공부엔 승속이 따로 없다고 한다. 재가불자도 60세까지 열심히 사회에서 일하고, 이후엔 이 공부에 매진하며 법사, 포교사의 길을 걸으며 불법홍포에 힘써 달라고 당부한다.


“출가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입니다. 조계종이 아니더라도 태고종이나 다른 종단에 들어가 스님의 길을 걷는 것도 좋습니다. 어느 종단 소속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갖고 있는 법이 무엇이고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겁니다.”


법인 스님은 거침이 없었다. 원력 앞에 장애가 나타나면 기도하고, 그에 따른 방도를 찾아 헤쳐 갔다. 단순한 기도정진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선기와 지성이 조화된 힘이 있었기에 가람과 인재를 포함한 대작불사를 회향할 수 있었다. 원을 성취시킨 힘은 여기서 나왔다. 21세기 선지식의 표상이다.


임진년 새해 1월1일 각원사 남북통일기원 대종 소리가 천안을 울렸다. 갈등을 넘은 상생의 길을 걷자는 메시지가 전해졌다. 국회가, 시민이 귀담아 들어야 할 불법의 울림이다. 법인 스님의 뜻도 지극하게 전해졌다.
“비우지 마세요. 희망으로 채우세요. 그리고 함께 실천합시다.”
 

채한기 상임 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법인 스님은 1931년 경남 충무 生. 1946년 해인사에서 포산 스님을 은사로 득도 마산 해인대학, 동국대, 성균관대 졸업 1987년 일본 대동문화대학 문학박사학위 취득 천안 각원사, 동경 명월사 창건 ‘서산대사의 선가귀감 연구’, ‘불교입문’ 등 논·저서 20여권.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