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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새해특집- 용과 불교] 최고권위의 동물…불법 수호하는 호법신장

기자명 법보신문
  • 새해특집
  • 입력 2012.01.03 14:25
  • 수정 2012.01.06 17:21
  • 댓글 0

 

▲십이지상 중 용. 만봉 스님 작품.

 

 

2012년은 임진년(壬辰年), 용의 해다. 용은 12지 중 다섯 번째로 동남동 방향과 오전 7시에서 오전 9시, 음력 3월을 지키는 방위신이며 시간신이다.


용은 예로부터 기린, 봉황, 거북과 함께 신성한 동물인 사령(四靈)으로 여겨져 왔으며 12지 중 유일하게 상상의 동물로 일컬어지고 있다. 하지만 실존하는 어떤 동물보다 최고의 권위를 지니고 있으며 많은 설화 속에서 최상의 무기를 가지고 다양한 능력을 보유한 수호신으로 묘사된다.


용이 가진 능력 중 특히 변화무쌍한 조화능력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왔다. 중국 고대의 책 ‘관자(管子)’에는 “용은 물에서 나며 오색(五色)으로 몸의 색깔을 마음대로 변화시키는 조화능력이 있다. 작아지고자 하면 번데기처럼 작게, 커지고자 하면 천지를 덮을 만큼 커질 수 있다”고 전하고 있다. 또 중국 한나라 허신이 편찬한 ‘설문(說文)’에서는 “능히 어둡거나 밝을 수 있고 가늘거나 커질 수 있으며 짧거나 길어질 수 있다. 춘분에 하늘에 오르고 추분에 연못에 잠긴다”고 묘사되고 있다.


과거 나라를 통치했던 왕들은 권위의 상징인 용을 왕권강화를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


조선시대 왕의 집무복인 곤룡포의 장식판 보개에는 다섯 발가락을 가진 오조룡(五爪龍)이 새겨져있다. 또 임금의 군대사열과 행차시 각각 청룡기(靑龍旗)와 황룡기(靑龍旗)를 썼으며 임금이 앉는 자리를 용좌(龍座) 혹은 용상(龍床)이라고 불렀다. 왕은 용을 상징했기에 왕과 왕의 침전 지붕에는 용마루를 얹지 않았다.


불교에서 용은 사람과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장(護法神將)으로 여겨왔다. 이런까닭에 많은 사찰의 창건설화에는 용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서기 553년 신라 진흥왕이 궁궐을 짓기 위해 땅을 파는 과정에서 황룡이 나타났다. 진흥왕은 이를 예사롭지 않게 여겨 그 자리에 궁궐 대신 사찰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황룡사(黃龍寺)다.


훗날 신라의 자장법사(慈蔣法師)가 당나라로 들어갔다 오는 길에 용신을 만나게 된다. 이때 자장법사는 용신으로부터 신라의 안전과 번영을 이끄는 방법에 대해 듣게 된다. 용신은 “황룡사의 호법룡이 나의 큰아들인데 범천왕의 명을 받아 절을 지키고 있으니 신라로 돌아가 9층탑을 세우고 경기 남쪽지방에 절을 세운다면 국가가 태평할 것이다”고 말했다. 신라로 돌아온 자장법사는 용신의 말에 따라 황룡사에 9층탑과 태화사(太和寺)를 세웠다.
영주 부석사(浮石寺)는 용이 된 여신, 선묘(善妙)의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어느 날 의상대사가 당나라로 가던 중 한 마을에 머무르게 됐다. 이때 의상대사를 흠모한 선묘라는 소녀는 “의상대사가 무사히 신라로 돌아와 불법을 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원을 세우고 바다에 몸을 던져 용이 됐다. 용으로 변한 선묘는 의상대사가 절을 지으려 할 때 나쁜 무리들이 방해를 하자 큰 바위를 들어올렸다. 그러자 나쁜 무리가 모두 도망가고 무사히 절을 지을 수 있었다. 이에 절 이름을 뜨는 돌, 부석(浮石)이라고 이름 붙였다.


양산 통도사(通度寺) 대웅전 옆에는 구룡지(九龍池)라는 연못이 있다. 통도사 자리는 원래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는 큰 연못이었다. 자장법사는 절을 짓기 위해 연못을 떠나달라는 부탁을 했지만 용들은 듣지 않았고 법력으로 연못을 끓게 했다. 견디지 못한 여덟 마리의 용이 도망가 버렸지만 한 마리가 남아 절을 지키겠다고 맹세했다. 자장법사는 자그마한 연못을 만들어 용을 그곳에 살도록 했다. 이곳이 현재 ‘구룡지’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삼국유사’에는 서해용왕(西海龍王)과 금강삼매경(金剛三昧經)의 전래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어느 신라왕비가 종기를 앓았는데 모든 약을 다 동원해도 효험이 없었다. 왕은 신하를 구하기 위해 사람을 당나라로 보냈고, 가는 와중에 용왕을 만난다. 용왕은 “이곳에 있는 금강삼매경을 가지고 가라”며 “원효법사가 왕비 앞에서 이 경을 강설한다면 병은 말끔히 나을 것이다”고 말했다. 용왕이 시키는 대로 원효법사가 금강삼매경을 강설하자 왕비의 종양이 모두 사라졌다.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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