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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보신문 새해특집-가족] 형제 출가 정범·정경 스님

  • 새해특집
  • 입력 2012.01.04 16:55
  • 수정 2012.01.05 21:23
  • 댓글 0

9천겁 인연의 꽃, 포교원력으로 결실 맺을 것

“형! 왜 왔어?”
“시끄러. 잠이나 자라.”

2년여 만에 절에서 다시 만난 형제는 그렇게 무뚝뚝하게 절집에서의 첫 날 밤을 보냈다. 그날이 형님 아우가 사형 사제로, 한 핏줄의 속연이 일불제자의 불연으로 바뀌는 출발점인지는 꿈에도 몰랐다. 형제는 이제 삼배의 예로 서로를 맞이하고, 형님 동생 대신 서로를 ‘스님’이라 부르는 출가자가 되었지만 그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사제가 그날을 기억합니까. 꽤 어릴 때였는데.”


옥천암 주지 정범 스님은 수덕사 재무국장 정경 스님의 ‘증언’을 전해 듣고 제법 놀라는 눈치다. 정범 스님에게 정경 스님은 사제이기에 앞서 동생이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동생이란 늘 어리게만 느껴지는 존재 아닌가. 정범 스님의 놀라는 표정은 그런 형님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사형님은 기억 하실지 모르겠지만 난 아주 생생해요. 초저녁에 잠이 들었다가 소란스러워 깼는데 옆에 형님이 앉아 계신 거예요. 어린 마음에 놀랍고 반가웠는데, 형님이 퉁명스럽게 받아치는 바람에 별다른 이야기도 나누지 못하고 그냥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동생이자 사제인 정경 스님은 오히려 자신 만만이다. 두 형제 모두 수덕사에서 출가했지만 절집살이가 조금 앞서는 정경 스님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 뚜렷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범망경’에서는 ‘형제 자매로 만나려면 9천겁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설한다. 부모 자식으로 만나는 인연이 8천겁이라니 한 태 안에서 태어나는 인연이 부모자식의 인연보다 더욱 크고 어렵다는 뜻이다. 그토록 오랜 세월의 인연이니 비록 속연을 끊고 출가한 사문이라도 마음이 앞서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정범 스님과 정경 스님은 ‘수덕사 아이’였다. 그곳에서 자라며 학교를 다녔다. 수덕사에서 자란 아이들 중에 대학생 1호가 정범 스님, 2호가 정경 스님이다. 정범 스님은 대학 진학 후 출가했고, 정경 스님은 대학 졸업 후 출가했다.


머리도 깎지 않은 아이들을 사중에서 대학공부까지 시키는 것이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흔치 않은 일을 해낼 만큼 정범 스님은 공부를 잘 했다. 잘 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컸다.


“학교를 다니는 것, 더구나 대학을 가는 것은 처음이었으니 사중 어른 스님들도 경험이 없고 힘드셨습니다. 그런 만큼 잘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컸습니다. 굳이 공치사를 하자면 내가 먼저 경험하고 전례를 만든 덕분에 정경 스님은 공부하고 출가하는 과정이 조금 수월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하하.”


출가 후에도 그 생각은 여전하다. 정범 스님은 정경 스님에게 늘 조언을 해주고 방향을 제시해주고 싶다. 자신이 겪었던 실수, 고민을 정경 스님이 되풀이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이제는 한 사람의 출가자이자 어엿한 수행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동생이라는 생각을 완전히 접어둘 수는 없습니다. 특히 내가 했던 실수나 시행착오를 정경 스님이 똑같이 되풀이하려 할 때는 붙잡아주고 싶은 생각이 앞섭니다. 그것도 분명 아상일 테지만.”


시행착오가 늘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살다보면 꼭 겪어야 되는 시행착오도 있다. 경험과 지혜의 밑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겪지 않았으면’하는 바람이 앞서는 것은 천륜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경 스님에게는 때때로 간섭이고 짐이 되기도 한다.


“형님은 공부 때문에 늘 사중 밖에 나가 살았습니다. 그런 형님에게 김치며 쌀을 매주 들어 나르는 것은 내 몫이었죠. 사중에 함께 있지 못하니 어쩌다 형님이 또래 아이들을 야단이라 쳤다가는 형님이 없는 동안 그 뒷감당하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커서도 사사건건 간여하고 잔소리 하는 것 같아 싫었던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잔소리쟁이’ 형님의 속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는 것 역시 정경 스님이다. 특히 출가 후 형님은 든든한 사형이자 길라잡이가 되어주었다.


“출가자로서, 승단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정범 스님은 자주 말씀하십니다. 일신의 안위를 위해 출가하는 것이 아님을 특히 강조합니다. 부처님께서 그리하셨듯 출가는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특히 포교에 대해서는 ‘할 수 있으면 하고, 할 수 없으면 안 해도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라며 ‘포교는 의무’라고 강조하십니다. 그 말씀은 지금도 제게 큰 지침이 되고 있습니다. 정범 스님은 포교에 대한 확고한 신념, 그리고 포교를 위해 출가자로서 해야 할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정표가 되어주셨습니다.”

 

 

▲정범 스님과 정경 스님은 15일간 함께 인도성지를 순례하며 형제의 인연이 수행의 길을 함께 가는  일불제자의 인연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더욱 절실히 느꼈다.

 


정범 스님과 정경 스님의 은사는 수덕사 주지 지운 스님이다. 형제가 한 은사 아래로 출가하는 것을 꺼리는 불교계에서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혈연간의 애착을 경계하는 이유도 있지만 한 은사에게 출가했다 혹 문제라도 생기면 사형사제 관계까지 모두 불편해진다는 생각에 은사를 따로 두는 것을 관례처럼 여겨왔다.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불편한 점도 있지요. 하지만 형제이기 때문에 서로의 속마음을 속속들이 털어놓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은사에게서 출가했더라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간혹 둘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기필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두 사람이 평생 불편한 관계가 될 테니까요. 그런 점에서는 다른 사형사제 관계보다 오히려 더 노력하고 인내해야 하는 것이 형제 출가의 숙명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담금질의 시간을 거치며 형제는 진정한 사형사제, 출가의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걸어가는 도반이 되어갔다. 특히 ‘포교’라는 하나의 공통관심사가 생기며 형제는 서로에게 둘도 없는 조력자이자 의지가지가 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정범 스님과 정경 스님은 최근 함께 인도성지를 순례했다. 함께 ‘여행’을 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냥 여행이 아니라 성지순례여서 더욱 특별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여러 신도님들과 함께였기 때문에 개인적인 시간을 많이 가질 수는 없었지만 성지를 순례하며 기뻐하는 정경 스님을 보면서 이제는 형제라는 생각보다 온전한 출가자로서 여법하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모습이 든든한 동시에 부끄럽지 않은 사형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성지에서 함께 기도하고 정진하는 동안 정범 스님이 독경하면 제가 목탁을 들곤 했습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주는 관계, 형제의 인연 이상의 무엇이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취재를 마칠 때까지 두 스님은 한 번도 자리를 함께 하지 못했다. 서울 옥천암과 예산 수덕사에서 각자 소임을 맡고 있어 평소에도 자주 만나지 못한다. 하지만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이 나온다.
“정경 스님에게 고마운 점이요? 항상 믿고 따라 주는 거죠. 힘든 일이 있을 때 누구보다 먼저 의논할 수 있고 또 귀를 기울여주는 점입니다. 부족한 점 많은 사형 때문에 많은 부분을 양보하면서도 항상 옆에서 힘이 되어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정범 스님은 제가 방황하고 힘들어 할 때마다 중심이 되어 주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던 다 들어주고 자신의 일인 듯 고민하며 내게 꼭 필요한 조언을 해줍니다. 격의 없이 털어 놓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모습은 역시 형님이구나 싶습니다.”


서로에게 전하는 당부의 말도 똑같다. “제발 건강 좀 챙겨라”이다. 하긴, 9천겁의 인연이 이생에 만나 한 나무에서 형제로 꽃피웠으니 조금 떨어져 있다고 해서 그 마음이 서로에게 닿지 못할 리 없다.
형제의 인연으로 꽃을 피우고 불연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제 포교의 원력으로 함께 정진하니 앞으로 어떤 결실이 열릴 지 기대가 더욱 커진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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