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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인간관과 세계관-무상(無常)②

기자명 법보신문

지난 과거 붙잡으려는 욕망은 고통 잉태
지금 여기 머물고 있는 순간에 감사해야

올 가을, 운문사의 단풍은 유난히 아름다웠다. 수목원 감들이 익어갈 무렵 한 도반이 방문했다. 그 친구는 자주 ‘대승기신론’에 나오는 불보살의 화신에 대한 의미를 상기시키는 영혼이 아름다운 친구다.


우리는 학인스님들의 풍요롭고 여유로운 정신세계를 돕고자 수목원을 만드신 명성 스님의 자상함과 안목에 감탄하고 또 그 속에 담겨있는 수많은 졸업생, 운문사 대중 스님들의 노고에 감사하면서 맑고 투명하게 흐르는 도랑과 흰구름, 바람, 온갖 생명들의 지저귐과 더불어 감을 따먹으면서 잠시 세상을 잊었다.


친구는 떠나고 가을도 막바지에 다다른 어느 날 오후, 혼자 수목원을 산책하던 중에 참으로 아름다운 감나무 가지에 나의 시선이 멈추었다. 그리고 그 잎들 속에서 친구와 보냈던 느낌과 기억을 보았다. 나는 그 가지를 꺾어서 내 방에 갔다놓고 오가며 마주칠 때마다 즐거웠던 한때를 추억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예쁜 잎들이 시들기 시작했다. 마치 그 속에 담겨진 내 기억이 시들어 사라지기라도 하는 듯 아쉽고 안타까워하다가 코팅을 해서 보관을 해야겠다는 기발한 발상에 이르렀다. 그리고는 기왕 보관할거면 뭔가 기념이 될 만한 글씨를 써 그 친구에게 선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즐겁고 신나는 기분으로 코팅해 가위로 나뭇잎 모양을 따라 자르려는 순간, 문득 공기 한 점 없이 플라스틱에 갇혀버린 감나무 잎이 몹시도 답답하고 숨 막혀 보였다. 더는 자연의 순리를 따라 생주이멸을 할 수 없는 나뭇잎은 박제된 동물처럼 더 이상 살아있는 생명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르면서 가슴에서 묘한 슬픔이 감지되었다.


채 열기가 식지도 않은 코팅을 당장 벗겨내 나뭇잎을 자유롭게 해 주고 싶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행복했던 순간을 붙잡고 싶어 하는 내 무의식이 알아차려졌다. 그러나 잡을 수 없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내 의식의 또 다른 영역은 슬픔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지극히 일상적인 삶속에서 무상(無常)을 경험하고 맛보는 순간이었다. 비록 찰나적인 경험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 여운은 무척이나 강하게 남았다. 코팅된 나뭇잎 속에 더 이상 추억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감나무 잎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때마침 동국대에서 불교심리학원론 시간에 연기에 대해서 강의하고 있던 중이라 나의 경험을 학생들과 함께 나누는 좋은 소재가 되었다. 무상과 무아를 품고 있는 연기를 설명하기에 더할 수 없이 좋은 자료였다. 그리고 그 감나무 잎은 영혼이 아름다운 벗에서 따뜻한 가슴으로 나의 경험을 경청해준 학생들의 몫이 되었다.


살면서 행복했던 순간들이 과거로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왠지 서럽고 슬프다. 또한 그 행복했던 과거를 현재 속에서 다시금 체험하려는 애씀은 곧바로 고통을 잉태한다. 애쓰면 애쓸수록 고통은 더 크게 자라고 치성해져서 그 속에 휩쓸리게 되면, 우리는 마침내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의지를 발동시킨다. 그래서 고통의 시작과 그 근원을 찾아가게 되고 거기에서 무상에 대한 무지(無知)를 만나게 된다. 이미 지나간 과거를 붙잡으려는 욕망과 애씀을 발견하고 그런 자신을 향해서 안쓰러움과 연민심을 일으킨다.


▲서광 스님
지금은 내 손에서 떠나버린 코팅된 감나무 잎들에 대한 기억이 ‘금강경’의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이라는 구절로 이 순간 새롭게 다가온다. 그리해 무한의 공간과 영겁의 흐름이 만나는 한 찰나, 지금 여기에 머물고 있음을 한없는 감사함으로 맞이하라고 가르친다.
 

서광 스님 동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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