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한 나라

이명박 정부가 어처구니없는 정부라는 생각을 한 지는 꽤 되었지만, 특히 요즘은 인터넷이나 신문을 볼 때마다 얼마 안 남은 어처구니들마저 자꾸자꾸 사라진다. 청와대와 여당 국회의원 비서관들이 모여 돈을 주고받으며 선거관리위원회를 디도스로 공격하는 모의를 하고, 누가 봐도 뻔한 그 사실을 경찰이 앞서 감추고 은폐한 것에 비하면, 그걸 엄정수사하겠다던 검찰이 “누가 시킨 건 아니었다더라”는 수사결과를 내놓은 것은 차라리 누구나 예상하던 모범답안이었다. 그러나 트윗에다 쓴 ‘농담’ 혹은 ‘패러디’를 문제 삼아 1월11일 사진작가 박정근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한 것은 다시 한 번 ‘정말 깨네’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 정도의 놀라운 일에 이미 익숙해져 있는데도 다시 또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을 보았다. 그 시끄럽던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으로 소 값은 폭락하고 사료 값은 올라서 사료를 먹일 수 없어 키우던 소를 몇 마리 굶겨 죽인 ‘축산농 문씨’ 얘기를 얼마 전에 본 기억이 있다. 소란 동물이 키우는 사람과 교감한다는 얘기를 고려하지 않아도, 자신이 키우던 동물을 제대로 먹이지 못해 굶겨 죽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빚을 내고 없는 돈을 털어, 사료 값에 턱도 없이 모자라는 소를 계속 먹일 것인지 많은 시간을 망설이고 고심했을 것이다. 손해보고 처분하여 소농사를 포기할까 고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뒤에 뭘 하고 먹고 사나 막연했을 것이다. 그나마 소농사마저 이 꼴로 만들어버린 당국에 대해 화도 났을 것이며, 한미FTA로 더욱더 악화될 미래에 대해 절망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아마 자살하는 이의 심정으로, “봐, 너희들이 우리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절망적 항의를 위해 자신의 자식 같은 소들의 용서를 빌며 아사하도록 방치했을 것이다. 이것이 어찌 문씨만의 처지일 것인가!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소를 굶겨 죽인 농민에게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과태료를 부과하라는 명령을 농수산식품부에서 내렸다는 것이다! 정말 충격적인,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정부 아닌가! 물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라며 소들을 아사하게 둔 문씨를 비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1억5천만원의 빚을 지며 소를 먹이던 끝이고, 앞으로는 더욱더 희망이 없는 상황임을 안다면, 문씨를 비난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동물보호주의자들은 직접 찾아내려가서 사료를 주고 소들이 죽지 않도록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아, 정부에서도 사료를 주겠다는 말을 하긴 했단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의 처참한 상황을 얼른 덮어 은폐하려는, ‘소나기 피하고 보자’는 이명박 식 대처 아닌가! 그럴 것 같았으면, 그렇게 자살적인 상황으로까지 스스로를 몰고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문씨는 동물보호협회에서 준 사료는 먹이지만, 정부당국자가 주는 것은 거부했다고 한다.


거기서 결정적인 한마디가 농수산 당국자에게서 튀어나온 것이다. 동물학대 혐의로 과태료를 물려라! 동물을 보호하려는 그들의 마음에 정말 눈물이 난다. 그런 그들이 지난 구제역 사태 땐 감염동물 한 마리 발견하면 반경 3킬로미터 범위에 있는 가축들을 전부 죽였던 분들이다. 며칠 전 송아지값 폭락 대책으로 송아지 요리의 개발을 제안했던 분들이고, 소의 ‘수급 조절’을 위해 부실한 송아지를 낳은 암소들을 쉽게 ‘처분’하도록 보조금을 주자고 했던 분들이다. 정말 환상적인 대책들이다!!


아니, 사실이 아닐 것이다. 소가 아닌 내가 들어도, 농민 아닌 내가 들어도 정말 믿기 어려운 말들이니까. 하나 같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개그 프로에서도 써먹기 힘들 대사들 아닌가? 꿈이라도 꾸는 게 아닐까? 꿈이 아니라면, 내가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진경 교수
그러나 앨리스의 그 이상한 나라에서도 이토록 참혹하고 모진 말들, 철없고 황당한 말들은 상상할 수 없었다. 정말 우리는 루이스 캐럴도 상상하지 못한 황당하고 턱없는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진경 교수 solaris0@daum.net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