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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재를 시작하며

옛 사람들의 삶과 염원 담긴 민족문화의 보고

민족 수난기에 기록된
역사와 희망의 서사시


나라 스승 일연 스님이
집념과 정진으로 완성

 

 

▲인생은 역사적이면서도 신화적이고, 종교적이면서도 세속적이다. 우리들 인생은 때때로 꿈꿀 필요가 있고, 현실과 세속을 초월할 필요가 있다. ‘삼국유사’는 우리를 꿈꾸게 하고 초월로 이끈다. 사진은 ‘삼국유사’가 집필된 경북 군위군 인각사.  법보신문 자료사진.

 

 

읽고 또 읽어도 여전히 재미있는 책이 있다. ‘삼국유사’가 그런 책이다. 재미있다고 그 내용을 다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삼국유사’는 쉬운 듯 하지만 사실은 어렵다. 전문 학자들이 오랜 세월 연구해 오지만, 그 비밀이 다 풀린 것도 아니고 역사적 사실을 다 밝힌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삼국유사’가 학자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일반인들이 모두 읽어야할 고전이다. 그러기에 ‘삼국유사’는 쉽게 풀어서 재미있게 읽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옛사람의 현실 삶이 있고, 아픔도 있다. 그리고 ‘삼국유사’에는 한민족의 집단무의식이 숨 쉬고 있고, 우리들의 오랜 이상과 꿈이 투사되어 있다. 역사란 대체로 과거에 일어난 사건과 그것에 대한 인식이나 기록을 의미한다. 그러나 과거는 과거로 끝나버리지 않고 오늘에 이어져 있고, 현재 속에 살아있기에 문제가 된다. 우리가 경험했던 수많은 과거사는 개인이나 집단의 무의식 속에 잠재하고 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장식(藏識), 혹은 종자식(種子識)이라고 한다. 역사란 무의식의 창고다. 집단무의식은 우리들의 감추어진 모습이자 미래의 씨알이다.


보각국사 일연(一然, 1206~1289)은 젊은 날을 수행으로 보내고 만년에는 온 나라의 사표인 국사가 되었고, 승속(僧俗)이 다투어 공경하고 사모했던 선승(禪僧)이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들의 인식에는 고승보다는 ‘삼국유사’를 저술한 사가(史家)의 모습이 부각되어 있다. 일연은 9세 어린 나이로 고향 경산을 떠나 불교에 귀의한 후 여러 곳을 다니며 수행하고 교화했다. 일연은 출가 수행자였지만 일찍부터 역사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것 같다. 그의 여행을 자료 수집을 위한 현지답사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자료 수집이나 유물·유적에 대한 관찰은 남달랐고, 역사가의 노력 그것이었다. ‘삼국유사’에는 일연이 직접 목격했던 유물·유적에 대한 관찰기와 현지에서 찾아낸 고문서 등의 사료, 그리고 각지에 전해지던 설화 등이 많다. 이에 유의하면, ‘삼국유사’가 일연 평생 정진의 소산이란 평은 과장이 아니다. 물론 이 책은 70대 만년에 운문사와 인각사 등지에서 집필된 것이다.


꿈속에서라도 세속에는 가지 않겠다던 승려 일연은 무엇 때문에 세속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고려사회의 위기의식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일연이 살았던 13세기 고려사회는 암울했다. 안으로는 백년 무신정권의 횡포로 찌들고, 밖으로는 야만 몽고의 침략과 간섭이 거듭된 시련의 시대였다. 고종 18년(1231)부터 시작된 몽고의 침략은 1258년까지 무려 6차에 걸쳐 약 30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온 나라가 야만의 침략에 모진 수난을 당했다. 개경으로 환도한 이후에도 80여년이나 원의 간섭으로 모진 시련을 겪어야 했다. 두 차례에 걸친 일본 정벌에 동원되어 목숨을 잃기도 했고, 모진 채찍 아래에서 전함을 만들었으며, 초근목피로 연명했고, 고이 키운 딸자식을 야만의 손아귀에 빼앗기고 통곡하기도 했다.

 

 

▲보각국사 일연 스님(1206~1289)

 


이처럼 13세기 고려사회는 폭압과 침략으로 강산이 유린되고 슬픈 사람들의 가슴은 멍들었으니, 그것은 위기의 시대였다. 야만 몽고의 말발굽에 짓밟힌 민족의 자존심과 난파의 현실은 오랜 문화 전통을 자랑하던 민족의 수치였고 시련이었다. 일연은 민족의 현실적 시련을 견디면서, 민족 과거의 역사와 미래의 희망을 ‘삼국유사’ 속에 담고자 했던 것이다.


‘삼국유사’는 전체 5권 2책으로 되어 있고, 권과는 별도로 왕력(王歷)·기이(紀異)·흥법(興法)·탑상(塔像)·의해(義解)·신주(神呪)·감통(感通)·피은(避隱)·효선(孝善) 등 9편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왕력은 삼국·가락국·후고구려·후백제 등의 간략한 연표이다. 기이편은 고조선으로부터 후삼국까지의 단편적인 역사를 서술하였는데, 1~2권에 계속된다. 흥법편에는 삼국의 불교수용과 그 융성에 관한 내용을, 탑상편에는 탑과 불상에 관한 기록을, 의해편에는 신라의 고승들에 대한 전기를 중심으로 하는 기록을, 신주편에는 신라의 밀교적 신이승(神異僧)들에 대한 기록을, 감통편에는 신앙의 영이감응(靈異感應)에 관한 내용을, 피은편에는 초탈고일(超脫高逸)한 인물의 행적을, 효선편에는 부모에 대한 효도와 불교적 선행에 대한 미담을 각각 수록하였다. 이처럼 5권 9편목으로 구성된 ‘삼국유사’의 체재는 ‘삼국사기’나 ‘해동고승전’과는 다른 특징이 있고, 중국 세 고승전(高僧傳)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것과도 다른 체재이다.

 

역사·문학·신화 등
고대문화 정보 총망라


삼국유사 속 얘기들은
변치 않을 한민족의 꿈


‘삼국유사’는 저자의 관심을 끈 자료들을 선택적으로 수집, 분류한 자유로운 형식의 역사서이다. 이 책의 내용에는 불교사 기록이 많지만 그렇다고 전체를 불교사서로 보기는 어렵고, 많은 설화를 수록하고 있다고 설화집으로 보기도 어렵다. 이 책은 저자가 서명에서 밝히고 있듯이, 사가의 기록에서 빠졌거나 자세히 드러나지 않은 것을 드러내 표현한 삼국의 유사(遺事)인 것이다.


일연의 오랜 집념과 정진으로 이루어진 ‘삼국유사’가 있음으로 해서 우리 고대 문화에 대한 중요한 정보에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삼국유사’는 우리 민족의 고대 역사, 지리, 문학, 종교, 언어, 민속, 미술, 신화 등에 대한 원천적인 자료를 전해주는 보고로 평가되고 있다. ‘삼국유사’는 신화와 전설의 보고며, 고대어 연구의 귀한 자료를 전해주고 있으며, 또한 14수의 향가는 우리나라 고대문학 연구의 값진 자료다. 이 책에는 한국 고대미술의 주류인 불교미술에 관한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는데 특히 탑상편의 기사는 탑과 불상, 건축 등에 관한 정보를 많이 전해주고 있다. 이 책에 전하는 화랑에 관한 자료는 종교적이고 풍류적인 성격의 것이 많아 ‘삼국사기’와 다른 특징이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 고대 문화에 관한 다양한 자료를 수록해서 전해주고 있는 ‘삼국유사’는 민족문화의 연원을 탐구하는 이들에게 무궁한 길잡이가 된다. 암울한 13세기를 살면서도 절망하지 않고 기록을 남겨 오늘에 전해준 일연의 노력은 세월이 흐를수록 빛나고 있는 것이다.


일연의 시야는 역사 기록은 물론 설화와 시가 등으로도 열려 있었고, 귀족과 백성들의 삶을 차별하지 않았으며, 거지와 노비도 따뜻한 눈으로 보았다. 불교와 원시종교도, 선종과 교종도 구별하지 않았다. 그의 시야는 열려 있는 안목은 역사적인 삶도, 문학적인 상상력도,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인생의 해석도 함께 녹였다. 그리하여 ‘삼국유사’에는 문학과 역사와 철학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의미 있는 삶이었을 뿐이다. 오늘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이며, 무엇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인가?


‘삼국유사’에는 많은 설화를 수록했다. 설화는 역사적 사실 그 자체보다도 그 사실의 가치를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사화(史話)들 중에는 인간의 삶이나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의미 있는 함축을 담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하여 무엇이 우리들의 삶에서 더 소중한 것이고 의미 있는 것인지를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하늘의 소리[天唱]도 있고, 짐승의 주장도 있다. 무심한 풀도, 그리고 돌 한 덩이도 의미를 갖고 있다. 자연 위에 빛이 비치면 삼라만상이 모두 잠에서 깨어나듯 되살아난다. 이것은 고대인의 종교와 무관하지 않지만, 동시에 화엄(華嚴)의 세계이기도 하다. 일상의 범상한 것들의 특별한 의미를 발견하는 기쁨, 그것은 햇빛이 연꽃을 깨어나게 하듯이, 돌도 나무도 풀도 모두 빛에 되살아나 자기의 주장을 펼치는 것이다.


지극한 수행은 도력이나 법력(法力)이 되고, 그 도력은 보통 사람은 상상도 못하는 마치 신화처럼 윤색된다. 그것은 사람들의 보편적인 희망이었고, 꿈이었다. 양지 스님은 주장자를 날려 신도집의 시주를 운반했고, 고승 낭지는 구름을 타고 중국을 왕래했으며, 고승 연회는 사철 시들지 않는 연꽃을 피울 수 있었다고도 한다. 조셉 캠벨의 말처럼, “신화는 사회가 꾸는 공적인 꿈”이고, 또 “인간의 무의식적 열망은 역사적 인물조차도 신화적 인물로 변모시킨다”면, 그리고 “인간의 이상과 영웅성이 그 인물에 투사되어 나올 때 그 인물은 역사 속에 한계 지어진 메마른 인물임을 멈추고 모든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 인간의 이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면, ‘삼국유사’ 속의 많은 이야기들은 분명 한민족의 꿈이며 희망의 속삭임일 것이다.


‘삼국유사’의 세계, 그 세계로의 탐험은 신나는 일이면서도 모험적인 도전이다. ‘삼국유사’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한국고대로의 먼 여행을 떠나고자 하지만, 갑자기 천수백 년 전으로 돌아가기란 쉽지 않다. 많은 세월이 흘렀고, 세상은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이미 오늘의 현실을 초월하고 있는 것이고, 초월하면 오늘의 근심도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은 역사적이면서도 신화적이고, 종교적이면서도 세속적이다. 우리들 인생은 때때로 꿈꿀 필요가 있고, 현실과 세속을 초월할 필요가 있다. ‘삼국유사’는 우리를 꿈꾸게 하고 초월하게 하며, 약간은 환상적이게 해준다.
 

김상현 sanghyun@dongguk.edu


▲김상현 교수

김상현 교수
경상대를 졸업하고 동국대에서 한국불교사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단국대 및 한국교원대 교수와 동국대 신라문화연구소장을 역임했고, 현재 동국대 사학과 교수 및 문과대 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원효연구’, ‘신라의 사상과 문화’, ‘신라화엄사상연구’, ‘역사로 읽는 원효’, ‘한국불교사 산책’, ‘한국의 차시’ 등이 있고, 10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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