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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마조대사의 할 1

기자명 이원섭

깨달음의 흔적 마저 날려버린 엄청난 할!

야압자(오리)의 문답으로 깨달은 백장이 얼마 동안 스승 곁을 떠나 있다가 다시 마조대사를 찾아뵘으로써 양자간에는 극적인 상견이 이루어지니, 이르는 바 백장재참(百丈再參)이라 일컬어져 오는 화두가 이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어떤 내용이었던가.

오래간만에 나타난 애제자가 눈에 띄자, 마조대사는 선상(禪床) 한 귀퉁이에 걸려 있던 불자(拂子)를 집어 세워 보이는 것이 아닌가. 보통 사람 같으면 어찌 할 바를 몰라 머뭇댔어야 할 장면이건만, 백장은 전광석화처럼 바로 맞받아 쳤다.

“즉차용(卽此用)가? 이차용(離此用)가?”

최근에 중국에서 간행된 방대한 분량의 「한어대사전」에 의하면 즉차(卽此)는 취차(就此)·지차(只此)의 뜻이므로, 이 물음은 ‘이것(불자) 그대로를 쓰느냐, 이것을 떠난 데에 쓰임새가 있다는 것이냐’는 말이 된다. 곧 당신은 이제 자기의 도를 나타내 보이기 위해 불자를 세우셨는데, 불자 자체가 도냐, 아니면 불자는 도의 비유나 상징 같은 것이어서 도 자체와는 거리가 있는 것이냐고 따지고 든 것이라 볼 수 있다. 불자 그것이라 할 수도 없고 불자 아닌 것이 도라고도 하기 어려운 점에서 난감한 추궁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 쩔쩔맬 사람도 아니다. 마조대사는 불자를 도로 선상에 걸어놓더니, 잠시 침묵하고 있다가 되물었다.

“너는 이후에 입을 놀려 어떻게 남들을 교화하겠느냐?”

불자를 도로 선상에 거는 것에 의해 자기를 골탕먹이려고 상대가 일으키는 분별의 물결을 간단히 소멸시키고, 다시 잠시의 침묵으로 도의 체(體)를 나타내 보인 것은 그렇다 친대도, 입을 놀려 어떻게 남들을 교화할 작정이냐는 물음에는 호의에서 나온 것이라고 만은 할 수 없는 일면이 있다. 도를 펴려면 언어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다면 언어를 쓰는 바에는 도가 손상을 입을 것이 불가피한 까닭이니, 이번에는 백장 쪽이 위기에 몰렸다.

그러나 백장은 스승의 선상에서 불자를 집어내어 세워 보였고, 그러나 마조대사 입에서는 다시 추궁하는 말이 떨어졌다.

“즉차용가? 이차용가?”

이에 백장은 불자를 가져다 스승의 선상 귀퉁이에 걸어 놓으니 여기까지는 장군·멍군이다. 그러나 이 순간 마조대사의 할(喝)이 터지니, 얼마나 엄청난 할이었던지 백장은 사흘이나 귀가 멍멍하여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이것이 아직 남아 있던 깨달음의 흔적마저 날아가 버림으로써, 백장이 대자재를 얻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러면 이 할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마조대사의 사세(四世) 후손인 임제는 할을 주로 활용한 것으로 이름이 높고, 그밖에도 많은 선사들이 이를 교화 수단으로 써왔다. 그러나 마조대사의 이것처럼 크고 깊고 강한 에너지를 쏟아 부은 할은 일찍이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할이 이리나 특출한 것일 수 있은 데에는, 그것이 백장의 정신적 증상에 더없이 들어맞게 적절히 베풀어진 때문임도 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아무리 마조대사라 해도 때를 가리지 않고 아무에게나 할을 해댔다 해서 될 일이 아님은 물론, 백장을 상대해서도 야압자의 장면에서 할을 터뜨렸다 한들 죽은 할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바로 이 순간에 여기에서 백장을 상대로 하는 할이어야 했던 것이니, 때와 장소와 사람의 세 조건이 맞아떨어졌던 것이어서 시절인연(時節因緣)이란 이를 이르는 듯 싶다.

그러면 백장이 안고 있던 정신적 증상이란 무엇인가. 깨달음에 따르는 후유증이 그것이다. 혹은 이룰 것은 모두 이루어 마친 것이 깨달음인 데에 무슨 증상이 남느냐고 말할 지도 모른다. 인생관이 백 육십도 전환되는 체험에 수반되는 환희심이 후유증이요, 이 환희심을 가라앉힌다면 거기에도 따라붙을 만족감이 후유증이어서, 경지가 높아짐에 따라 후유증은 더욱 원자처럼 극미(極微)의 모습이 되어 그에게 엉겨붙을 것이다. 이리하여 지금은 백장의 마음에 그림자를 던지고 있던 이런 증후군을 마조대사의 한 마디 할이 박살냈던 것이므로, 이를 어찌 심상한 일이라 하랴.



〈시인·불교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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