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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참회와 참법-5

선인도 현대사회선 죄 지을 수밖에 없어
참회 일상화하는 현대적 시스템 갖춰야

이제 참회와 참법도 디지털 시대에 맞게 혁신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참회와 참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제도화한다. 죄를 지은 마음, 곧 죄책감을 지니고 있을 때 현세에서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내세에서는 구제받을 수 없다. 현세와 내세 모두 업보의 사슬에 얽매여 헤어날 수 없다. 그런데,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면 어찌 행복할 것인가. 불교는 ‘지금 여기에서’ 행복한 신앙이 되어야 한다. 양자의 괴리를 메우는 방법은 진심으로 죄업을 참회하는 것이다. 인간은 성찰과 참회를 통하여 더 나은 인간으로 진보할 수 있는 가능성의 존재다. 죄가 아니라 죄를 짓고도 참회하지 않는 것이 나쁜 것이며, 진정으로 참회하지 않는 죄는 반복되기 십상이다. 그러니, 수행과 법회에 죄업의 실상을 직시하여 참회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참회의 과정이 생략된 불교 의례에는 간략하게라도 이를 삽입한다.


참회의 전제는 죄업의 실상을 직시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살인처럼 법이 죄로 규정하는 것, 거짓말처럼 도덕에 어긋나는 것, 무명과 망상에 휘둘려 진실을 보지 못한 것, 방일한 것, 보살행을 미루는 것만이 죄가 아니다. 개인은 사회 구조 속의 한 개체이기에 구조적 요인에 의한 죄 또한 범한다. 우리는 9시 뉴스에서 수억 원의 뇌물을 받은 공무원을 비난하지만, 행정고시에 합격한 날 이제 고급 공무원이 되었으니 악착같이 뇌물을 받아 1년 만에 치부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공무원은 없다. 문제는 청백리가 되겠다는 개인의 포부와 신념을 시나브로 갉아먹는 관료사회의 모순과 이권을 매개로 그물처럼 엮어진 부패 카르텔에 있다. 지극한 선인이라도 잘못된 시스템 속에서는 죄를 범할 수밖에 없다. 죄가 구조적이라면, 중세시대에서 숙세의 업보에 대하여 참회한 것처럼 죄를 짓게 만드는 구조가 무엇인가 직시하고 참회해야 죄업을 멸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을 물신(物神)의 노예로 만드는 자본제, 1%가 99%를 마음껏 착취하는 신자유주의 체제, 소수 특권층만이 부와 권력을 독점하는 사회제도에서 절집의 지배구조에 이르기까지 그 구조를 존속시킨 잘못에 대해 참회한다.


‘자비도량참법’과 같은 참법 서적을 현대화하는 것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1부는 연기와 업의 원리, 2부는 과보의 실상, 3부는 참법을 행하는 이가 갖추어야 할 몸과 마음의 준비와 자세, 4부는 자비참과 이참을 종합하여 죄업의 실상을 직시하는 참법과 입으로, 몸으로 마음으로, 또 구조적으로 빚은 죄업을 참회하는 예참의식, 5부는 참회의 기쁨과 복락, 6부는 중생 회향으로 구성한다. 기복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은 과감하게 버리며, 당위적인 주장을 지양하고 논증과 설득을 통하여 자발적인 동의와 참여를 유도한다. 과보의 실상에서도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현대적 사례로 설명하되, 결과론적인 업보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업에 얽힌 상호작용과 인과관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시민을 죽이고 대통령이 된 자의 말로가 비참하였고 그 자식이 정신병에 걸렸다는 식으로 업보를 말하면, 지금 갖은 악행을 일삼는 독재자나 재벌이 벌을 받지 않고 떵떵거리며 잘 사는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 겉으로는 잘사는 것 같지만 마음 속으로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함을, 사람들이 굽실거리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경멸함을, 그 자손들이 비록 권력과 풍요를 누린다 할지라도 그런 악행을 보고 자라며 비정상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언제인가 그 악행을 비판하는 글을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접하고서 상처를 받고, 또 그로 인해 잘못될 수 있음을 말해주어야 한다.

 

▲이도흠 교수
곧, 사회관계망을 매개로 과학적으로 작용하는 인과관계의 실상, 선업에 의해서만 악업이 풀리는 업보의 냉혹한 원리를 밝혀준다.
 

이도흠 한양대 국문학과 교수 ahur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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