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용성 스님 [하]

사상의 요체 담아 ‘각해일륜’ 저술

 

▲용성 스님 유훈 실현 중심도량 장수 죽림정사.

 

 

역경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용성 스님은 당대 뛰어난 선승이기도 했다. 열아홉에 첫 번째 깨달음을 경험하고 1884년 21세에 금강산에서 무(無)자 화두를 통해 2차 깨달음을 얻었다. 이어 각처에서 수행하며 ‘육조단경’ 등 경전을 보며 수행을 점검한 후 순천 송광사 삼일암에서 ‘전등록’을 열람하던 중 ‘달은 굽은 활과 같고 비는 적은데 바람만 많구나’라는 대목에서 홀연 세 번째 깨달음을 겪었다. 그리고 제방선원에서 참선하는 한편으로 ‘기신론’, ‘법화경’, ‘선요’, ‘서장’, ‘화엄경’, ‘선문염송’ 등을 배우고 선사들의 어록을 살펴본 스님은 마침내 1886년 23세에 확철대오의 경지에 이르렀다.


스님은 이때 낙동강을 건너는 뱃전에서 “금오산에 천년의 달이요/ 낙동강에 만리의 파도로다/ 고기잡이 배는 어느 곳으로 갔는고/ 예와 같이 갈대꽃에서 잠을 자도다”라고 읊었고, 이는 훗날 대각교 운동을 추진할 때 대각교 종지의 천명으로 내보이던 오도송이었다.


확철대오 이후 17년여 동안 보림의 시기를 갖던 스님은 1903년 2월 지리산 상비로암에서 처음으로 선회를 개설하는 등 선법을 펼치기도 했다. 스님의 뛰어난 선지는 이능화가 지은 ‘조선불교통사’의 ‘범어일방임제종지’에서 “당시 선계(禪界)를 돌아보면 모두 용성을 거벽으로 추대한다”는 대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한국불교의 계율파괴와 선의 몰락을 우려한 스님이 1925년 6월 62세의 노구를 이끌고 도봉산 망월사에서 ‘만일참선결사회’를 결성했던 데서도 선을 중요시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조선불교’ 18호에서는 이를 “조선에 임제 전문도량 생기다”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해인 1926년엔 대처식육을 행하는 부류들을 불가의 큰 적으로 전제하며 조선총독부에 이를 금하는 건백서를 제출하고, 후엔 유처승려와 무처승려를 구분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미 일본불교의 영향을 받아 계율파괴 현상이 곳곳에서 발생하던 당시로선 파격적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스님은 이에 1927년 대각교를 공식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스님은 해인사와 범어사에 승적탈퇴서를 보내며 승적까지도 과감히 던져 버렸다. 그리고 경봉 스님에게는 편지를 보내 “선원의 종주 문제는 본 대각교의 일이 번다하여 부탁하신 청을 들어드리지 못하오니 양해하시옵소서. 교생은 승적을 제거하였는데 그 까닭은 조선 승려는 축처를 하고 고기를 먹으며 사찰 재산을 없앰에 대하여 승수(僧數: 불교계)에 처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대각사상은 ‘인간의 근본 심성을 자기 스스로 깨치고,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들도 깨치게 하는 자각각타가 둘이 아니기에 원만하므로 구경각하다’는 데서 나왔다. 이러한 스님의 대각사상은 그의 사상의 요체를 분명하게 밝힌 ‘각해일륜’의 ‘대각의 본원심’ 부분에 잘 요약돼 있다. 스님은 대각교를 선언하고 사상과 의식을 정비하면서 조직체계도 확대 개편했다. 이후에도 스님은 대각교당, 대각교 중앙본부 이름으로 저술 및 역경 사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갔다. 특히 1930년 초간본을 낸 ‘각해일륜’은 스님 사상의 요체를 알려주는 것으로 종교, 도덕, 진리, 철학, 과학, 인과 등을 모두 담고 있었다.


그렇게 말년까지도 모든 대중에게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고구정녕하게 일러주던 스님은 1940년 2월24일 “모든 행이 떳떳함이 없고 만법이 다 고요하다. 박꽃이 울타리를 뚫고 나가니 삼밭 위에 한가로이 누웠도다”라는 임종게를 남기고 세수 77세, 법랍 61세로 입적했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