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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참회와 참법-6

승가 사회서도 돈 선거가 관례로 정착
참회없으면 가사입어도 수행자 아니다

이제 예를 들어 올바른 참회와 참법에 대해 마무리하자. 얼마 전에 어떤 절의 주지에 출마한 스님이 투표권을 가진 스님 370명에게 돈을 뿌렸다.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고 비난이 가해지자 당사자들은 ‘관례’라고 항변하였다. 돈 선거도 문제지만 이 점이 더 충격이었다. 참담하였다. 죄를 짓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그를 범하고도 참회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출가 수행자들이 ‘삼의일발(三衣一鉢)’이나 ‘육물(六物)’만 소유하고 무소유의 삶을 살라 이른 계율을 어긴 것이니, 가르침대로 모든 소유물을 4인 이상의 도반들 앞에 내놓고 참회해야 한다.


이것으로 충족된 것은 아니다. 이참(理懺)에서 행한 대로, 먼저 죄업의 실상을 직시해야 한다. 관례란 관습화한 전례를 뜻한다. 돈 선거가 관례라는 것은 두 가지, 곧 관습이 될 정도로 내면화하였음과 전례가 될 정도로 일상화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내면화하고 일상화한 죄업을 산산이 부수고 말끔히 털어내지 않으면 참회는 시늉에 그치고 만다.


어찌 하여 돈 선거가 내면화하였는가.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교환가치가 사용가치를 대체한다. 쉽게 말해 어떤 물건이 가지는 고유의 가치를 시장에서 상품이 되어 화폐로 교환되는 가치로 바꾸어버린다. 이런 체제 속에서 개인은 화폐증식의 욕망을 추구하고 물신(物神)의 노예로 전락한다. 한 마디로 말해, 돈이 신이 되는 세상인 것이다. 오늘날 출가란 이 시장질서와 자본주의 체제에서 떠남을 의미하며, 절은 시장 질서로부터 벗어난 성스런 영역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돈 선거가 내면화할 정도로 절이 시장 질서에 편입되고 출가 수행자들이 물신의 노예로 전락하였다. 바로 이 점을 참회해야 한다. 부단한 참회를 통하여 뼛속까지 스며든 자본주의의 탐욕과 그를 보지 못한 어리석음과 그 때문에 성낸 것을 낱낱이 닦아내지 않으면 가사를 입었더라도 출가한 것이 아니다.


어찌 하여 일상화하였는가. 절의 거버넌스(governance) 시스템 때문이다. 대부분의 절에서 주지가 돈의 흐름에 대해 독점적 권력을 누리는데,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 일을 맡은 이가 물신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물신의 노예가 된 이는 부처님이 아니라 물신의 가르침대로 행동한다. 더 큰 돈을 쥐기 위하여 선거 때만 되면 돈을 써서라도 주지가 되려 하고, 그렇지 않은 이도 상대방이 그러니까 할 수 없다며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한다. 그리 너도 나도, 절의 체계상 선방의 수행자조차 이 판에 끼어들면서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는 계율을 어기는 것일 뿐만 아니라 세속의 법조차 위반하는 짓이다. 무엇보다도 도반의 마음을 돈으로 삼으로써 마음공부를 존재 이유로 삼는 수행자 자신을 부정한다. 곧 바로 이 점을 참회하지 않으면 이 사악한 관례는 반복된다. 끊임없는 참회를 하여 도반의 마음을 돈으로 사려는 싹을 온 몸과 마음에서 샅샅이 도려내지 않으면, 그런 싹을 자라게 하는 절의 각종 시스템을 파사현정하지 않으면 수행자가 아니다.


연기 바깥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죄업을 연기적으로 보지 않고 실체적으로 인식하며, 참회를 하더라도 이를 개인의 죄업에 국한하였다. 현대사회에서 모든 죄는 사회성을 띠며, 디지털 사회에서 죄에 얽힌 업보는 더욱 긴밀하고, 더욱 빠른 속도로 다른 개체에 조건이 되고 영향을 미친다.

 

▲이도흠 교수
그렇다면 우리는 죄업의 사회성, 상호관련성, 상호조건성에 대해 성찰하고 참회해야 한다. 원효의 말대로, “방일하여 뉘우침과 부끄러움도 없이 죄업의 실상을 능히 사유하지 않는다면, 비록 죄업의 성품이 없다 하여도 장차 지옥에 들어가리니, 마치 환술로 만들어진 호랑이가 도리어 환술사를 삼켜버리는 것과 같다.” 


이도흠 한양대 국문학과 교수 ahur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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