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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섭리론

모든 게 신 섭리라면 인간은 꼭두각시
기독교 자유의지도 모호함 연장일 뿐

만물을 창조했다는 기독교의 신 야훼는 그의 전지전능한 힘으로 우주에 있는 모든 것들을 보존하고 다스린다. 기독교 교리서에 직접적으로 ‘섭리(providens)’라는 단어는 없지만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요약하는 의미로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섭리라는 말을 자주 사용해왔다.


기독교의 섭리란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만물을 지어 놓고 유지 관리하며, 자신의 창조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인도하며 창조된 모든 것들과 지속적으로 관계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독교에서는 이와 같은 신의 섭리를 보존, 협력, 통치라는 말로 표현한다.


먼저, 보존이란 신이 스스로 창조한 세상의 만물에 대해 그 특성을 그대로 보호하고 유지시키시는 것을 의미한다. 신은 바위는 바위로, 불은 불로, 나무는 나무로 그 특징을 그대로 이어가도록 하지 나무가 갑자기 바위나 불로 바뀌거나 불이 갑자기 나무나 바위로 바뀌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협력이란 신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 하나도 빠짐없이 관여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신은 세상 만물의 생성 소멸은 물론 국가적인 일, 심지어 제비뽑기와 같은 사소한 일까지 예외 없이 개입한다고 한다.


통치란 신이 행하는 모든 일에는 그만의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위해 모든 것을 주관하고 다스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은 자신이 목적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에 대해 빠짐없이 알고 있고 이들을 다스리면서 도덕적인 피조물, 즉 인간들에게는 자신의 뜻을 따르도록 명령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야훼의 섭리에 대해 불교는 어떤 자세를 취할까? 한마디로 진리에 부합되지 않는 삿된 견해로 보고 받아들이지 말 것을 요구한다. 특히 기독교의 견해는 인과응보의 법칙에 연결시켜 볼 때에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교경전 중에 ‘외도의 주장경(外道主張經)’이 있다. 여기에는 기독교의 이와 같은 신의 섭리를 존우론(尊祐論)이라고 표현하고 그 부당성을 지적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괴로움과 즐거움 따위가 모두 신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그대들의 주장대로 세상의 모든 것이 신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다면 그대들이 생명을 파괴하고, 남의 재물을 빼앗고,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을 행하고, 악의를 일으키고, 삿된 견해를 갖는 것도 신의 뜻인가? 만약 그와 같다면 세상에는 선행도 필요 없고, 노력도 필요 없으며, 진실에 대한 확고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


부처님의 이 말씀은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신의 섭리에 의해 움직인다면 중생들이 일으키는 선악의 행위도 그 책임이 결국에는 신에게 있으므로 중생들에게 그 책임을 묻지 말아야 하다는 의미를 안고 있다. 그리고 저와 같은 신의 섭리가 존재한다면 중생들이 일으키는 행위는 중생들이 자발적으로 일으킨 것이 아닌 신의 행위가 되므로 중생들은 자유의지가 없는 꼭두각시 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다.


불교의 이와 같은 지적에 대해 기독교에서는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에 자유의지를 함께 주어 인간 스스로 선악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일에 대해 판단하고 선택할 능력과 기회를 주었다고 항변하겠지만 불교의 관점에 볼 때에는 이 또한 모호한 주장이다. 대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과 중생들이 일으키는 모든 행위에 있어 어디까지가 섭리이고 어디까지가 자유의지인가에 대한 기준 때문이다.


▲이제열 법사
예를 들어 얼마 전 한 목회자가 자신의 자녀들이 마귀가 들었다고 구타해서 죽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여기에서 신의 섭리와 목회자의 자유의지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 이 사건은 전적으로 신에 의해 저질러진 사건인지 아니면 잘못된 목회자에 의해 저질러진 사건인지가 명확히 설명될 수 없다면 진리라고 확정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불교의 입장인 것이다.


유마선원 원장 yooma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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