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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암 스님 [하]

편지글 등 엮은 ‘일발록’ 남겨

 

▲스님의 좌탈입망 모습.

 

 

한암 스님은 1929년 조선불교선교양종 승려대회에서 7인의 교정으로 추대된 이후 조계종 창종 때 초대 종정으로 추대되는 등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종정을 역임하면서 근대 한국불교를 이끌었다. 오늘날 조계종이 선종을 표방하며 선 제일주의에 빠져 있으나, 조계종 탄생에 크게 기여하며 종정까지 역임했던 한암은 결코 선에만 머물지 않았다. 한암은 이른바 승가오칙이라 하여 “참선, 간경, 염불, 봉사, 포교 등 다섯 가지를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가르침은 ‘선중방함록 서’에서 염불과 참선이 둘이 아님을 명쾌하게 적시하고, 선문납자로 하여금 선의 본지를 깨달아 선원을 개창한 의의를 저버리지 않도록 간절한 노파심으로 법문한데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언제나 ‘지인과명사리(知因果明事理)’, 즉 ‘중은 인과를 제대로 알아야 하고 사리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한암은 또 출가자들의 생활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그 도리를 일러주었다. “중노릇 잘하라”고 강조하면서 “절집을 떠나지 말아라. 대중처소에서 생활해라. 인과를 분명히 하는 생활을 해라. 중으로서 지켜야 할 다섯 가지를 참여하지 못하면 중이 아니다”는 점을 언제나 당부하고 또 당부했던 것이다. 오늘날 출가수행자들이 깊이 새기고 따라야 할 가르침이기도 하다.


또한 “산은 높은 대로 바다는 깊은 대로 평등한 것이다. 오리의 다리는 짧은 대로 평등한 것이고 황새의 다리는 긴 대로 평등한 것이다. 산을 깎아 바다를 메우면 산은 산대로 바다는 바다대로 불평을 하게 된다. 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해서 황새의 다리를 잘라 붙일 수 있겠는가”라며 대중들이 서로 반목하지 않고 화합할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한암은 1932년 ‘불교’지 제100호에 ‘화엄경’, ‘기신론’, ‘보장론’ 등을 근거로 ‘참선에 대하여’를 기고하면서 자신의 견지를 피력할 정도로 선지식의 면모를 잃지 않았다. 그런 한암의 선지는 한국전쟁 때 국군이 법당을 불태우려 할 때 잘 드러났다. 인민군들이 근거지로 쓸 수 있다는 이유로 절에 불을 지르려 하자, 한암은 가사·장삼을 수하고 법당에 들어가 정좌한 채로 “이제 됐으니 불을 놓으라”고 말해 군인들을 아연실색케 했다.


이때 한암은 “당신들은 상부의 명령을 따르면 되고 나는 중으로서 절을 지키면 되지 않느냐. 본래 중들은 죽으면 불에 태우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나이도 많고 죽을 날도 멀지 않았으니 잘 된 것 아니냐. 그러니 걱정 말고 불을 질러라”라고 했던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한 장교가 기지를 발휘해 법당 문짝만을 뜯어 태우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그 누구도 감히 흉내내지 못할 선지식의 기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선지식의 선지와 기개를 담은 저술은 전해지는 것이 없다. 평생 쓴 편지, 누군가에게 게송을 주거나 현판을 써준 것 등을 한지에 적어 묶어놓아 자서전과도 같았던 ‘일발록(一鉢錄)’이 있었으나, 1961년 상원사 소림초당이 불에 탔을 때 함께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다행이 탄허 스님이 대강의 내용을 외우고 있어서 후일 다시 만들어 전해지기는 한다.


한편 27년 동구불출하면서도 선지를 밝혀 세상에 빛을 보였던 한암은 1951년 3월22일 세수 75세 법랍 54세로 좌탈입망했다. 그리고 그가 입적하자 편지글로 서로를 탁마하며 도반으로 살았던 절친 경봉은 “눈빛을 거두는 곳에 오대산이 서늘해/ 꽃과 새들도 슬피 울고 달에까지 향연이 어리는 듯/ 격식 밖의 현담을 누가 아는가/ 만산엔 변함없이 물이 흐르네”라고 추도했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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