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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을 밟고 서는 사람

기자명 청화 스님

만해 스님이 쓴 ‘고난의 칼날에 서라’는 산문에는 스님의 삶과 정신세계를 추상할 수 있는 글을 만날 수 있다. “세상 사람이 쉽고 성공할 일이면 하려하고 어렵고 성공할 가망이 적은 일이면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옳지 못한 일이다. 어떤 일을 볼 때에 쉽고 어려운 것이나, 성공하고 실패할 것을 먼저 보지 말고 그 일이 옳은 일인가 그른 일인가를 먼저 보아야 한다.” 백 번 옳은 말이다. 94년 종단개혁 때의 일이 생각난다. 당시 ‘범종단개혁추진위원회’ 구성을 위해 각 단체의 대표자가 모여 논의하는 가운데 한 대표자 스님이 말했다. “권력과 금력을 가진 서의현 총무원장과의 싸움은 계란을 들고 바위에 달려드는 격이다.” 곧 승산이 없다는 것을 비유로 말한 것이다. 나는 실망했다. 다른 스님도 아닌 대중적인 신망을 받는 그 스님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그래서 단호하게 말했다. “이 거사는 옳은 일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서는 지고 이기는 것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라고.


쉬운 일인가 어려운 일인가를 먼저 따지고 성공할 것인가 실패할 것인가를 사전에 생각하게 되면 이 세상엔 옳은 일이란 하나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옳은 일은 그것을 하는 자체가 벌써 승리 이상의 대의와 가치가 있는 법이다. 그러기에 만해스님은 이어서 이렇게 썼다. “하늘과 땅을 둘러보아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일이라면 용감하게 그 일을 하여라. 그 길이 가시밭길이라도 참고 가거라. 그 일이 칼날에 올라서는 일이라도 피하지 말라.” 옳은 일은 항상 거대한 그릇된 힘과의 대결이기 때문에 그를 좇아가는 곳은 당연히 험한 가시밭길이고, 그를 따르는 행동은 칼날에 올라서는 위험한 일이다. 그러므로 옳은 일에는 몸을 돌아보지 않아야 하고, 목숨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곧 몸과 목숨을 다 던져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옳은 일의 힘이 되기 때문이다. 실지로 만해스님은 옳은 일에 자신을 내던지는 것을 사양하지 않았다. 일본군에 맞서면서 성공과 실패를 논하지 않고 또 할 만한 것이냐 아니면 개죽음 당하는 것이냐도 예상치 않았다. 오직 옳은 일이기에 독립운동의 최일선에 섰었다. 그리고 갖은 회유에도 초지일관 했으며, 긴 감옥 생활과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일로 일로 조선독립의 길을 걸었다. 이를 보면 만해 스님은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말한 분이라는 것을 여실히 알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이 글 앞에서는 절로 숙연해진다.


산문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나는 지금 다난한 조선에 있어서 ‘정의의 칼날을 밝고 서거라’하고 말하고 싶다. 무슨 일이든지 성공이나 실패보다 옳고 그른 것을 먼저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누구나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할 줄은 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성공과 이익과 편안함은 좋아하지만 실패와 손해와 고난은 싫어한다. 바로 이것이 옳고 그른 것에 대한 분별보다도 좋은 것이냐 싫은 것이냐에 대한 선택을 먼저 하게 만든다. 이 때문에 옳고 그른 분별은 항상 후순위로 밀리는 것이다.


하지만 한용운 스님은 모든 일에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았다. 지옥의 길이냐 극락의 길이냐도 미리 내다보지 않았다. 언제나 옳은 일인가, 그른 일인가. 그것이 판단의 기준이었다. 그러기에 그 암울한 시대에 뜻을 꺾은 이들이 많았지만 만해 스님은 끝내 변절하지 않았으며, 어느 스님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가시밭길을 혼자 걷고 칼날에도 혼자 섰던 것이다. 이것이 한용운 스님의 진면모라고 생각된다. 3월이라서 문득문득 그 모습이 떠올라 나를 한없이 부끄럽고 부끄럽게 한다.


▲청화 스님
어디 있는가
칼날을 밟고 서는 사람.
古木나무의 그늘 아래 모인
썩은 송장 냄새의 무리들,
그들의 굿판의 술이 달다고
귀 있는 이들 우루루 몰려가는데,
그 곳을 등지고, 둑을 무너뜨린
저 洪水를 향해 두 눈 부릅뜨고
칼날을 밟고 서는 사람
그 어디 있는가.

 

청화 스님 전 조계종 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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