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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 정체성을 찾는 길

조계종 총무원의 현응 교육원장과 도법 화쟁위원장이 불교 개혁에 공감을 표한 뒤 어느새 석 달을 맞고 있다. 나는 종단 내부에서 그 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추진되고 있는지 상세히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다만 통합종단 50년을 맞아 한국 불교의 정체성을 세운다면 마땅히 ‘제법무아’를 비롯한 삼법인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옳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불교의 가장 근본적 가르침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실체로서 ‘진정한 나’ 또는 ‘참나’를 찾는 게 불교라는 주장이 종단 안팎에서 지배적 담론으로 소통 되어 온 게 사실이기에 그 뜻을 정확하게 짚는 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각묵 스님을 비롯해 초기 불전 연구에 나선 스님들은 그동안 종단 안팎에서 적잖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참나’의 담론에 깊은 성찰을 주었다. 불교가 중국으로 전파되면서 “대승 중의 대승이라고 자처하게 된 여래장 계열의 경론에서는 연기와 무아를 설하기는 하였지만 아울러 마치 불변하는 실체가 존재의 배후에 있는 양 일심을 천명하였고, 여래장이나 불성이 상주하는 듯한 언어표현을 즐겨 구사하였다”는 분석은 왜 초기불전 연구가 중요한가를 단숨에 깨닫게 했다.


기실 다른 종교나 사상과 다른 불교의 고갱이가 바로 실체로서 자아 관념을 넘어서는 제법무아다. 자아를 고정 불변하는 실체로서 고집하기에 온갖 갈등과 고통이 일어난다는 붓다의 가르침은 얼마나 상쾌한가.


하지만 우리는 그 말에 머물 수 없다. 2600년 전의 가르침이 지금 우리에게 생생하게 다가오는 까닭, 또 그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문명을 전망하는 까닭을 깊숙이 파고들어야 한다.


나는 그 이유 또한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의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딱히 2600년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난 300년 동안 지구촌에서 벌어진 인류 역사의 조건들이 지금 제법무아의 사고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켜보고 있듯이 서양에서 성장해온 자본주의 문명이 지구촌을 지배하고 있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은 극심한 경쟁체제에 갇혀있다. 그 경쟁체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걷잡을 수 없는 욕망과 소비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물론, 서양문명이 일궈 온 개인주의를 단순히 악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유럽인들의 줄기찬 투쟁의 역사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거니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민주주의 사회를 여는 사상적이고 현실적 기초였다. 문제는 그 사회가 이제 발전의 한계에 직면했다는 데 있다.


실체로서 자아를 부정하는 제법무아의 논리는 현대 사회의 한계를 넘어서는 데 새로운 상상력을 불러온다. 그 말은 제법무아라는 2600년 전 가르침이 그대로 21세기인 오늘의 문제점을 풀 해법이라는 뜻이 아니다. 제법무아에 담긴 ‘생각의 혁명’을 삶의 현실로 구현하려면, 현대 사회를 바꿔갈 비전과 정책을 제시해야 옳다.


더구나 인터넷이 보편화하면서 초기불교의 가르침에 얼마든지 다가설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더러는 인터넷을 통해 초기불교 교리와 동영상 강의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현실을 두고 한국불교 1700년 역사에서 ‘조용한 혁명’이라고 진단한다.


나는 그 혁명이 비단 불교만이 아니라 21세기 현대 문명을 넘어서는 큰 혁명으로 커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렇기에 토인비가 불교와 기독교의 만남을 세계사적 사건으로 전망한 게 아닐까.


▲손석춘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문제는 무엇일까. 사람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고, 그 전망을 실현할 방법을 동시대인들과 가능한 많이 소통하는 데 있지 않을까. 조계종이 한국 불교의 정체성을 세울 때 과거만이 아니라 미래 문명사적 의미까지 담아가길 기대한다.
 

손석춘 언론인 2020g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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