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재의료회 연천군 청산면 무료 진료 현장

약왕보살 손길로 자비인술 펼치며 정토세상 꿈꾸다

1999년 봉은사서 진료 시작
회원 300여명 중 90% 불자


중국 연변 등 해외봉사활동
외국인 전문병원 설립 목표

 

 

▲청산면에서 실시했던 선재의료회 무료진료에서는 20명의 의료진과 지역 자원봉사자 10여명, 연천 수불사 스님과 봉사자 10여명이 모여 220여명을 진찰했다.

 


때늦은 추위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 세차게 불어대던 3월25일 아침.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에 자리 잡은 청산배드민턴장에 인근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코흘리개 아이, 허리 굽은 할머니, 한국에 시집온 외국인 등 다양한 사람들은 불어대는 바람에 몸을 잔뜩 움츠린 채 배드민턴장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복지관 안에는 의사와 약사,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추위 대신 따듯한 온정 담은 열기가 사람들을 반기는 이곳은 선재의료회가 진행하는 무료진료 현장이다.


“할머니 어디가 아프세요?”

“아이고, 안 아픈 데가 없어요. 온 몸이 다 쑤시고 아프니깐 어디가 진짜 아픈 건지 모르겠네. 잘 좀 봐줘요.”

여기저기서 아픈 몸에 대한 하소연이 터져 나왔지만 들어주는 누구도 찡그리지 않고 정성껏 진료에 임했다. 병원이 멀거나 돈이 없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진료를 받지 못했던 사람들은 이날 오랜만에 자신의 건강 상태를 진단받을 수 있었다. 아울러 궂은 날씨와 병치레로 차갑게 얼어붙었던 마음도 덩달아 봄눈 녹듯 녹아내렸다. 베트남에서 온 응원 티마이(29)씨는 멀리까지 와준 선재의료원 회원들에게 연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2년 전 한국에 시집와 지금까지 사는 동안 병원을 이용하는 것에 항상 불편함을 느껴왔어요. 아무래도 대도시보다 치료받을 수 있는 공간도 적고 무엇보다 돈이 많이 드니까요. 그러던 차에 얼마 전 다문화센터에서 무료진료 공고를 봤고 베트남에서 함께 온 친구와 함께 달려왔죠. 정말 감사합니다.”


배드민턴장 옆 청산복지관에는 이문호 원장의 한방진료소가 문을 열었다. 이문호 원장은 선재의료회에서 ‘망치도사’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조그만 망치로 몸을 몇 번 두드리고 사람들의 건강 상태를 귀신같이 알아낸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여오숙 선재의료회 부회장은 어디를 가도 이문호 원장의 인기는 대단하다고 귀띔했다. 이날도 한방진료소에는 진료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 원장은 복지관 곳곳을 누비며 망치로 두드리고 침을 놓으며 점심식사도 거른 채 진료를 했지만 밀려드는 사람들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청산배드민턴장과 복지관에는 진료를 받기 위해 방문한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한적십자사 청산봉사회 소속 자원봉사자 10명도 곳곳에서 힘을 보태고 있었다. 그들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안내하는 등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지만 표정만큼은 밝아보였다. 내과와 함께 가장 많은 인원이 몰렸던 한방진료소에서 접수업무를 진행하던 청산봉사회 이형숙(67)씨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우리 지역 어르신, 우리 지역 사람들을 진료하기 위해 선재의료회에서 온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매우 기뻤어요. 오늘은 비록 일요일이고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나왔습니다.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주민 220명에 치과와 양·한방 진료

 

 

 


마을 주민들의 인사에 선재의료회 회원들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어났다. 사실 선재의료회 회원들이 생각하는 봉사란 단순히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재능을 기부하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에게 이롭고 남에게도 이로운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보살행이다. 그래서 눈이오나 비가 오나 정해진 순서가 오면 정기봉사에 참석하며 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이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달려간다.


하지만 선재의료회가 처음부터 의료봉사활동을 해왔던 것은 아니다. 선재의료회의 시작은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불교계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진 의사와 언론인, 회사원 등 10명의 재가불자들이 뭉쳐 ‘선재마을’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선재마을’ 회원들은 정기적으로 만나 불교의 나아갈 방향을 토론하고 해결책을 모색했다.


그러나 당시 30대 중반이던 회원들이 한국불교를 개혁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회원들은 훗날 힘을 더 모은 후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1988년 모임을 해체했다. 그리고 11년이 흘러 경제한파가 한반도를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던 1999년. 선재마을 창립을 주도했던 강경구 의학박사는 모임이 다시 활동을 시작할 때라고 생각했다.


“일반인 대상의 의료봉사는 그때도 많았어요. 그래서 고민을 거듭한 끝에 당시에는 생소했던 외국인근로자와 다문화가정을 위한 의료봉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서울 봉은사에 진료소를 열고 일주일에 한번 외국인을 위한 무료봉사를 실시했습니다.”


진료를 시작하고 한동안 사람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선재의료회를 바라봤다. 얼마 가지 않아 그만둘 거라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다. 강경구 박사를 비롯한 회원들은 어디에서도 도움을 얻을 수 없어 자비로 의료회를 운영해야하는 상황이었지만 묵묵히 봉사에 매진했다.


그렇게 2년여가 흐르자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컨테이너 박스에서 운영되던 봉은사 무료진료소는 경내 식당 지하 공간으로 이동해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의료봉사를 펼칠 수 있게 됐다. 또 의료 활동을 위한 장비 등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어디선가 그것이 나타나는 신기한 상황도 많이 발생했다. 봉은사 내에 외국인근로자·다문화가정을 위한 병원을 설립하는 것이 목표라는 강경구 박사는 “내 일이 아닌 부처님 일”이라고 설명한다.


회원들의 꾸준한 노력과 봉사의 결과 선재의료회에는 현재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약사, 간호사 등 300여명이 등록,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그중 90%가 불자다. 서울 봉은사에서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1주일에 한번, 지금까지 6만여명이 넘는 사람들을 진료했다. 또 화재나 수해 등 각종 재난현장에 특별봉사단을 파견해왔으며 2000년 중국 조선족 진료, 2007년 몽골 울란바토르 순회 진료 등 해외봉사활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청산면에서 실시했던 봉사도 선재의료회가 그동안 수십여 차례 진행했던 순회 진료 가운데 하나다. 이날 의사, 약사, 한의사 등 20명의 의료진과 지역 자원봉사자 10여명, 연천 수불사 스님과 봉사자 10여명이 모여 220여명을 진료했다.


“봉사활동 통해 살아있음 느껴”

 

 

 


비록 자발적 참여로 모였지만 참가 회원들이 많고 이들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 자칫 나이나 경력에 따른 위계질서가 생길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회원들은 서로에게 ‘명령’하는 대신 ‘협동’을 통해 봉사를 펼치고 있었다. 피부진료를 맡은 정규동 국군양주병원 소령은 “저는 청진기 하나만 있으면 되지만 약사와 간호사 선생님은 이것저것 챙길 것이 많으니 더 힘들 것”라며 회원들을 배려했다. 이어 정 소령이 들려준 일화는 선재의료회 회원들이 13년 동안 흔들림 없이 의료봉사를 펼쳐온 이유였다.


“2000년대 초반, 선재의료회에서 노숙자 진료를 위해 서울역에 나갔을 때였어요. 말끔한 양복을 입은 분이 먹을 것을 잔뜩 사서 저를 찾아왔어요. 달라진 모습에 바로 알아보진 못했지만 분명 1년 전 저에게 진료를 받은 노숙자였습니다. 그분은 사회에 다시 복귀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면서 고마워했어요. 그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느 누구나 봉사는 힘들다고 생각해요. 봉사를 위한 시간은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것은 단지 생각의 문제입니다. 봉사는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이니까요.”


선재의료회는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봉은사에서 진료소를 운영할 것이며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갈 것이다. 회원들은 ‘봉사’가 ‘말’이 아닌 ‘실천’이고 그 대상이 결국 자신에게 향해있음을 직접 보여줘 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래왔듯, 이들의 봉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약왕보살 손길로 자비인술 펼치며 꿈꾸던 정토세상을 만들때까지.
 

연천=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