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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허 스님 [상]

일곱살부터 한학 배워 四書 통달

 

▲스님은 독립운동 중 뜻하지 않은 계기로 불교에 입문했다.

 

 

20세기 한국불교사에서 뛰어난 학승으로, 또 불경번역의 일인자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운허 스님은 ‘나라를 위해서는 애국인, 후배를 위해서는 교육인, 자신을 위해서는 수행인이면서 고금을 통한 지식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스님은 1892년 평안북도 정주군 신안면 어호동 전주 이 씨 집안에서 태어나 불과 여섯 살에 한글을 깨우칠 정도로 어려서부터 영민했다. 한글을 깨치고 곧바로 일곱 살에 고향에서 한학을 배우기 시작한 스님은 14세에 한학당인 회보제가 폐지됨에 따라, 집에서 김익진 선생으로부터 유교경전인 ‘논어’, ‘맹자’, ‘중용’, ‘대학’ 등 사서(四書)를 배웠다. 그리고 17세에 사서를 마친 후 정주의 향교에 임시로 세운 측량학교에 입학해 산술과 평면측량법을 배우고 평양 도근측량강습소에서 다시 3개월간 측량법을 익혔다.


이어 열여덟 봄에 임야를 측량하는 곳에 취직해 1910년까지 일을 하며 평범한 가정의 가장으로 역할을 다했다. 그러나 세월은 그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1910년 일제강점 소식을 듣고는 독립운동에 투신할 생각으로 만주로 향하던 중 학식을 쌓는 것이 먼저라는 판단에 따라 평양 대성중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입학 다음해 일제가 항일단체를 와해시키기 위해 조작한 이른바 105인 사건으로 교사와 학생들이 대거 투옥되자 2학년 때 학교를 중퇴하고 만주로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이때부터 교육을 통한 구국운동에 헌신했다. 대종교에 귀의해 이름을 이시열로 바꾸고 봉천성 환인현 동창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독립사상 고취를 위한 교육을 하다가 일본의 침공으로 학교를 계속 할 수 없게 되면서 정주 본가로 돌아갔다. 이어 24세인 1915년 가족들을 이끌고 봉천성 신빈현으로 이사해 친구들과 함께 흥동학교를 설립해 아동교육을 시작했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동지들을 규합해 독립운동을 벌이면서 등사판 통신인 ‘경종’을 발행했다. 또한 남만주 한족회가 조직되자 한족회 기관지 ‘한족신보’의 사장과 주필을 맡아 매주 2회씩 한글신문으로 간행했다.


이 시기 운허, 즉 이시열의 활동은 상해임시정부 독립신문 1920년 2월3일자에 잘 나타나 있다. “(이시열의) 평론은 글자마다 단어마다 모두 열렬한 애국지성과 공정한 판단으로부터 나왔으며 그 중 한편은 본 신문에서 전호에 이미 전재했다. 우리는 먼저 이 신문 집필자의 순결한 성의와 사심 없는 태도에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라고 찬양했던 것이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하며 동포 자녀들의 교육에 힘썼던 운허는 1920년 동지 40여명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국내에 침투해 왜적의 기구, 즉 행정관서나 경찰서 등을 파괴하자는데 합의하고 광한단을 결성했다. 그리고 마침내 1921년 압록강을 건너 국내로 잡입하던 그는 신의주에서 검문을 당해 체포됐다. 하지만 위장을 위해 가방에 일본 역사책을 갖고 다녔던 덕분(?)에 열흘 구류 처분을 받고 풀려날 수 있었다. 다시 서울로 입성한 그는 여비가 떨어진 상태에서 동지들까지 급습을 당해 체포되고 왜경의 추적을 받게 되자, 변장한 채로 급히 서울역을 거쳐 강원도 평강으로 탈출했다.


그때 몸을 숨긴 곳이 바로 회양군 봉일사였다. 그는 그 봉일사에서 경송 스님을 만나 뜻하지 않게 불문에 귀의하게 됐다. 신분을 속인 채 불안한 마음으로 산 속 생활을 하던 그는 그곳에서 불교 서적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시작한 불서 읽기는 어느덧 그를 불교에 깊이 빠져들게 하는 매개체가 되고 말았다. 훗날 시대를 대표하는 위대한 학승이자 역경승이 된 운허의 불교 인연은 그렇게 몇 권의 불서로 시작됐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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