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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길, 종교의 길

4·11총선은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이명박 정부를 심판하자는 야권의 호소가 있었지만 결과는 달랐다. 한나라당에서 이름을 바꾼 새누리당이 원내 1당은 물론, 과반의석을 확보하며 승리했다.


더러는 총선 결과를 놓고 ‘이변’으로 풀이 하지만, 이변이란 말은 적절하지 않다. 투표 결과를 예측하는 사람들이 국민의 마음을 정확히 읽지 못한 채, 자신의 분석이 틀렸다고 해서 ‘이변’이라 부르는 것은 옳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당이든 야당이든 선거 결과 앞에 겸손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성찰이 필요한 곳은 민주통합당이다. 선거 국면 초기에 민주당은 원내 과반의석 확보가 목표라고 할 정도로 객관적 조건이 좋았다. 보수언론조차 인정하듯이 청와대가 국민을 상대로 불법 사찰하고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나선 사실이 속속 드러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경제를 살리고 ‘국민 성공시대’를 열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말을 맞고 있는 데도 서민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기에 현 정권을 심판하자는 목소리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주체적 조건이다. 객관적 조건에 고무된 민주통합당은 안일했다. 한명숙 체제는 선거판을 주도하지 못했고 막판에 불거진 ‘나꼼수’ 김용민의 막말이 잇따라 논란을 빚었을 때도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총선 1주일 전까지 새누리당을 앞섰지만 김용민의 막말을 신문과 방송이 적극 부각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더구나 나꼼수 지지자들이 김용민을 두남두는 모습을 보이면서 여론은 더 악화됐다. 특히 강원도와 충청도에서 보수층을 결집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과반의석을 확보한 새누리당은 표정관리에 나서야 할 정도다. 원내 1당이 목표였지 과반의석까지 바랄 상황은 분명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선거 막판에 ‘거대야당’의 출현을 막아달라고 유세한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선거전략이 돋보인다. 실제로 박근혜의 정치적 위상은 총선을 계기로 확고해졌다. 더러는 이미 12월 대선에서 그의 승리를 기정사실화하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와 새누리당 또한 겸손해야 옳다. 비록 과반의석을 확보했기에 ‘승리’라고 할 수 있지만 18대 국회와 견주어 새누리당의 의석이 줄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주목할 것은 서울에서의 참패다. 서울과 인접한 경기지역에서도 정권 심판은 냉엄했다.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은 기존의 신문과 방송에만 의존해 정보를 얻지 않고 그들 스스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정보를 찾아간다. 지역구와 달리 비례대표를 짚어보면 새누리당의 득표율은 야권연대(민주당과 통합진보당)보다 적다. 만일 선거 막판에 김용민의 막말이 신문과 방송에 의해 정치쟁점으로 부각되지 않았다면, 과연 새누리당이 과반의석을 확보할 수 있었을까 성찰이 필요하다.


그래서다. 총선을 앞두고 불교와 기독교를 아우른 4대 종단이 청와대의 민간인 불법 사찰에 대한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고 방송 파업을 지지하며 언론 자유 보장을 요구한 것은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유효하다. 아니, 선거 결과가 새누리당의 과반의석 확보로 나타났기에 4대종단의 요구는 오히려 더 소중하다.


물론, 정치적인 종교인들은 총선 결과를 보며 권세가 보이는 쪽에 줄을 서려고 나설 수도 있다. 우리는 언제나 권력을 좇는 종교인들을 숱하게 보아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종교의 길은 다른 데 있다. 정치판이 권모와 술수가 지배하는 곳이라면 종교계는 그곳을 정화하는 힘이 되어야 마땅하다.


▲손석춘
지금 우리 앞에는 부익부빈익빈의 경제 현실, 방송 통제, 국민을 상대로 한 청와대의 사찰과 조직적 은폐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정치 현실에 매몰될 게 아니라 여당이든 야당이든 현실의 정치에 맑은 기운을 불어넣는 일은 언제나 종교 본연의 소명이다.
 

손석춘 언론인 2020g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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