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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용담, 불을 꺼주다

기자명 성재헌

번민 훌훌 털고 안락 누리는게 불교공부

남보다 잘하기 위해 불안하고
불편하게 살면 본말전도된 것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새벽 세시, 화장실을 가려다 창이 훤한 아들의 방을 보고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영어문제집 꼬부랑글자에 코를 박고 잠이 들어있었다. 불을 꺼주고 조심조심 방문을 닫으며 돌아서려는데, 이런 게 아비 된 심정일까? 가슴이 저렸다.


많이 힘들게다. 감수성이 도드라질 고등학교 1학년, 재미난 것도 많고, 해보고 싶은 것도 참 많을 나이다. 그러나 하루 두 끼를 학교에서 해결해가며 종일 책상머리에 앉아 지루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끝없이 들어야만 하고, 10시가 훌쩍 넘긴 시각에 집으로 돌아와서도 쪽지 시험에, 모의고사, 중간고사를 준비해야 한다.


공부, 익혀두면 반드시 유용하리라. 하지만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공부가 필요한 것이지, 그 공부를 위해 현재의 삶이 바닥까지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세상 편히 살아보겠다고 하는 공부가 잠 한숨 편히 못자는 불편한 삶을 살게 하다니, 아무래도 본말이 전도된 성 싶다.


불교공부, 붓다의 가르침을 열심히 배우고 실천하는 까닭은 골치가 지끈지끈한 번민을 훌훌 털어버리고 평안과 안락을 맘껏 누리기 위해서이다. 만약 불교공부를 위해 고뇌와 번민을 더한다면, 그것도 남보다 더 잘하기 위해 불안하고 불편하게 현재의 삶을 꾸려간다면,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벽암록’에 다음 이야기가 전한다.


당나라 때 검남(劍南) 출신에 주(周)씨 성을 가진 선감(宣鑑:782~865)스님이 있었다. 서촉(西蜀)지방에서 ‘금강경’을 강의하던 그는 “남방의 선승들은 마음이 바로 부처라고 가르친다”는 소문을 듣고 분기탱천하였다.


“3아승기겁을 수행해 금강유정(金剛喩定)을 얻고, 후득지(後得智)를 활용하여 천 겁 동안 부처님의 위의를 배우고 만 겁 동안 부처님의 미세한 계행을 배운 뒤에야 완전한 깨달음을 이룰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마음이 곧 부처라 배울 것도 닦을 것도 없다니, 이런 망언이 있나. 남방의 선승들은 모조리 불법을 파괴하는 마귀다.”


커다란 몸집에 날카로운 눈매, 유난히 시뻘건 입술에 칼날처럼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졌던 선감은 관상만큼이나 살벌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내가 직접 찾아가 남방의 마귀들을 쓸어버리리라.”


그는 잔뜩 짐을 짊어지고 남방으로 길을 나섰다. 그러다 풍양(灃陽)에 다다랐을 때였다. 먼 걸음에 허기진 배를 채울 요량으로 길가의 떡집으로 찾아들었다.


“점심(點心) 좀 합시다.”
다가온 노파가 신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스님, 저 무거운 짐은 다 뭐랍니까?”
“아, 저거요. 제가 쓴 ‘금강경’ 주석서입니다.”
선감의 목소리엔 거드름이 잔뜩 묻어있었다.
할머니는 조용조용 물었다.

“스님, 제가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쭈어도 괜찮을까요? 스님이 가르쳐주시면 제가 떡을 그냥 보시하겠습니다. 그러나 대답하지 못하면 다른 집으로 가셔야 합니다.”
선감은 피식 웃었다.

“아, 뭐든지 물어보십시오.”
“‘금강경’에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 하였는데, 스님은 어느 마음에 점을 찍으시겠다[點心]는 겁니까?”

말문이 막혔다. 궁리할 짬도 없이 할머니는 곧바로 돌아섰다.

 

해탈 못했단 자책은 결박만 더해
지혜는 밤 밝히는 촛불처럼 유용


‘금강경’을 꿰뚫어 주금강(周金剛)이라 자칭하던 선감이었다. 그는 벌겋게 달은 얼굴로 노파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할머니, 그런 얘기는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노파는 싱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 길을 쭉 따라가면 용담선원(龍潭禪院)이 나옵니다. 거기 숭신 스님이 계시니, 그분을 한번 찾아뵈세요.”
숭신 선사가 떡집 아들이었으니, 그 할머니는 어쩜 숭신 선사의 어머니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건 선감은 곧장 용담선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용담선원에 당도한 선감은 허탈하였다. 거창한 총림은커녕 선원은 겨우 비나 가릴 초막 몇 채뿐이었고, 그 숭신이란 스님도 어수룩한 차림새에 딱히 봐줄만한 꺼리가 없었다. 실망한 선감은 문턱에 들어서며 인사도 없이 한마디 던졌다.


“용담 스님, 소문 듣고 흠모했는데 와서 보니 연못[潭]도 없고 용(龍)도 보이지 않는군요.”
별 볼일 없다는 핀잔에도 용담은 그저 사람 좋은 웃음만 보였다.
“당신 스스로 찾아왔지 않습니까?”
누가 오라고 사정했냐는 뜻이니, 선감은 자존심이 상했을 게다. 곧장 뒤돌아서 떠나려 하자 용담이 다정한 목소리로 붙잡았다.


“날이 저물었습니다. 하룻밤 주무시고 가십시오.”
못이기는 척 객실에 여장을 푼 선감은 저녁내 마당을 서성이다가 용담의 방으로 찾아갔다. 허나 한마디도 묻지 않은 채 우두커니 서있을 뿐이었다. 다 아는데 묻긴 뭘 물어 싶기도 하고, 물어봐야 저 노인네가 뭘 알겠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머릿속이 복잡했을 게다. 용담 역시 가만히 앉아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어색한 침묵 속에서 밤이 깊다가 삼경쯤 용담이 한마디 건넸다.


“왜 당신 처소로 내려가지 않습니까?”
“그럼, 안녕히 주무십시오.”
일어서긴 했지만 그믐에 별빛마저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 답답한 자기 속내만 같았을 게다. 선감은 다시 돌아와 용담에게 말했다.
“스님, 너무 어둡습니다.”


용담은 종이에 불을 붙여 선감에게 건네었다. 그리고 선감이 이를 받아들려는 순간 ‘훅’ 하고 입김을 불어 꺼버렸다. 화들짝 놀란 선감은 크게 깨쳤고, 비로소 용담 스님에게 진심으로 절을 올렸다.


불교공부, 고뇌와 번민을 해소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허나 해탈을 얻지 못했다면서 자책과 번민으로 스스로를 괴롭힌다면 이는 결박을 더하는 짓이지 결코 결박을 푸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 온 몸과 맘을 둘러쌌던 밧줄이 툭 하고 터졌으니 통쾌하고 시원한 순간이다. 허나 천하에 없는 깨달음도 인연 따라 일어났다가 인연 따라 사라질 뿐이다. 그걸 붙들고 놓지 않는다면 다시 제 손으로 스스로를 얽어매는 어리석은 짓이다. 지혜, 밤을 밝히는 촛불처럼 매우 유용한 것이다. 허나 훤한 대낮에 촛불을 들고 다닌다면 그는 바보소리를 면치 못한다.


선감을 바라본 용담의 눈빛, 아마 시험걱정에 편히 잠들지 못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빛이었으리라. 어두운 밤에 불을 붙여주었다 불을 꺼준 용담, 새벽녘 켜진 전깃불 꺼주며 하룻밤 편히 잠들길 바란 아비의 심정이었으리라.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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