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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허 스님 [하]

‘능엄경’에 수행 원리 다 들어 있다

▲스님은 능엄경 독경소리를 들으며 입적했다.

경전 번역으로 일관했던 운허는 1952년부터 ‘능엄경’을 번역하고 사람들에게 강의를 하기도 했다. 이후 몇 년간 동학사, 봉선사, 통도사, 해인사 등에서 학인들에게 강의하던 운허는 1956년 ‘사미율의’를 시작으로 ‘무량수경’, ‘범망경’, ‘금강경’, ‘정토삼부경’ 등 중요 경전들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능엄경’ 인연은 운허가 입적할 때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자신이 지은 ‘능엄경강화’에서 수행과 관련하여 “우리나라는 선종이라고 해서, 참선을 해야 되지 경만 보아 가지고는 성불치 못한다고 한다면 부처님이 경을 설하지 않았어야 한다”며 “성불하라고 경을 설했는데 왜 경 가지고는 안 된다고 하는가. 그러니까 경을 보면 본대로 행해야지 외우기만 한다든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운허는 이처럼 경을 보고 그것을 실천하면 누구나 부처가 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또한 “‘능엄경’에서는 ‘대승기신론’의 진여나 ‘화엄경’의 일심이라는 용어대신 ‘묘명(妙明)하고 진정(眞精)한 묘심(妙心)’이니, ‘원묘한 명심’이니, ‘묘명한 원심’이니 하는 등등의 용어로 표현을 달리하고 있을 뿐”이라며 ‘능엄경’에 수행의 원리가 그대로 들어 있음을 역설했다. 운허는 ‘능엄경강화’에서 이런 사상을 반복적으로 누차에 걸쳐서 설명하고 있다. 때문에 ‘운허는 일심의 이치를 관찰하는 수행을 했다’고 평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렇게 ‘능엄경’을 특별하게 애용했던 운허는 입적할 때도 제자들의 ‘능엄경’ 독경 소리를 들으며 앉은 채로 열반에 들었을 만큼, 그 인연 또한 지중했다. ‘능엄경’은 본래 이름이 ‘대불정여래밀인수증료의제보살만행수릉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이다.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세존과 아난의 문답으로 시작해 깨달음의 본성과 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설하고, 여래장(如來藏)이 무엇인가를 밝힌 경전이다. 또한 깨달음으로 들어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관음신앙이라 하고 능엄다라니(楞嚴陀羅尼)를 설한 다음, 보살의 수행 단계와 중생이 수행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번뇌에 대해 그 원인과 종류를 밝히고 있다.


그런가하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법당에 한글 현판을 붙이기도 했을 만큼 우리말을 사랑했고, 생전에 ‘불교사전’을 비롯해 ‘능엄경주해’, ‘한글범망경’ 등 30여 권의 번역서를 남긴 운허의 역경에 관한 집념과 열의는 “내생에도 내 마음대로 태어난다면 20세까지 글을 배운 뒤에 중이 되어 역경사업을 또 하고 싶다”고 한 데서 잘 나타난다. 또한 “경전 읽고 번역하던 운허당 법사의 관이라고 한글로 영정을 써 달라. 이 몇 자가 내 생애를 다 표현할 것”이라고 유언한 대목에서도 그의 강한 역경의지를 읽을 수 있다.


운허는 스스로 역경에 몰두하면서 한편으로는 고은 시인을 선학원으로 불러 ‘화엄경’ 서사시를 쓰도록 권했고, 동갑내기 팔촌형이었던 이광수가 안창호의 체포와 아들의 죽음으로 힘겨워 할 때는 직접 ‘법화경’ 한 질을 져다 주면서 슬픔을 달래주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근검절약도 몸에 밴 선지식이었다. 1972년 남긴 유촉에서 그는 후학들에게 “봉선사 문도의 장례로 검소하게 할 것, 꽃과 비단에 만장을 사절하고, 사리를 주우려 하지 말며, 대종사나 법사로 쓰지 말고, 49재도 간소하게 하라. 그리고 마음 속이는 중노릇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한편 1953년 전쟁이 끝나고 부산에서 한국독립운동사를 편찬하기도 했던 그는 이미 만주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하며 마르크스주의 이념을 만나기도 했을 만큼 폭넓은 사상을 지닌 사상가이기도 했다.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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