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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가 서쪽에서 온 또 다른 까닭

기자명 이민용

불자라면 좋아하는 스님이 한두 분 있기 마련이다. 직접 알아 가깝게 모시기도 하지만 멀리서 혼자 짝사랑하는 경우도 많다. 나에게도 역시 그런 스님이 계셨다. 이미 입적했지만 일타(日陀) 스님이 바로 그렇다.


우리들은 언제부터인가 스님의 별칭을 만들었다. 지난 세기의 음악 지휘자였던 ‘부루노 왈터’의 이름을 본 따서 “왈타(曰陀)”스님이라고 붙여드린 것이다. 스님은 선수행과 지계(持戒)에 각별하였지만, 세속의 일에도 관심 있어 하셨다. 두루두루 아시는 것도 많고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모두 받아드리고, 내치는 법이 없었다. 성철 스님의 엄격하고 정형화된 분위기와는 조금도 닮지 않은 모습이었다. 일타 스님의 주처가 바로 성철 스님의 코앞 암자여서 더욱 대조적이었다. 외국 여행도 좋아하셨다. 지식도 풍부하고, 다변이며, 여행도 즐기시고, 누구나 받아들이는 스님의 별명으로 우리는 널찍하고 넉넉한 왈(曰)자가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한때 내 주거처인 보스톤 지역의 문수사에 일타 스님이 들리셨다. 나로서는 신바람 나는 일이었다. 미주에서 불자로 행세하기가 그리 편치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런 판에 내가 좋아하는 스님이 바로 옆에 한 철을 상주하셨으니 번질나게 스님 주변을 맴돈 것이다. 그런데 한번은 스님이 나를 찬찬히 보더니 “이 선생, 체질하고 행태가 서양사람 다 됐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는 “나도 내생에는 서양에서 태어날까 봐”라고 말을 이었다. 나는 얼른 스님의 방랑벽(!)을 기억해 냈지만, 무심한 척하며 “왜 그러시지요?”라고 까닭을 되물었다.


혹 외로운 이민 불자들을 위로하며, 내생에도 불자로 태어나라는 격려(!)로 한 말씀은 아닐까 하면서. “이 서양 사람들, 아무리 봐도 불제자 될 성품과 소양이 제격이야, 우리보다 훨씬 나아.” 이미 하와이의 한국사찰에서도 오랫동안 주석하셨고 세계 곳곳을 다닌 후의 술회이니 그냥 던진 말씀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 관해 더 이상의 말씀은 끝내 듣지 못했다. 그 후 스님은 하와이에서 입적하셨다. 나는 스님이 서양에서 다시 태어나 서양 스님이 되실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 후 나는 서양인들이 왜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는지, 그리고 그들이 자신도 모르게 불자가 되어있는 까닭이 무엇인지를 관심 있게 살펴보았다. 우리 주변에도 인기 있는 현각 스님이며 무송 스님 등 적지 않은 서양 스님들이 계신다. 그들이 불교를 믿는 방식은 우리와 똑같지 않다. 다시 자신들의 땅에 돌아가서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불교를 생활화한다. 비승비속(非僧非俗, Anagariaka)의 생활, 즉 스님도 아니고 세속인도 아닌 모습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직장도 다니고 결혼을 하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아침과 저녁 예불을 지키고, 수련 혹은 계절에 따른 입제 결제를 준수한다. 나름대로의 사찰도 갖고 있다. 자신의 집이 절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혹 이전에 집안에서 따르던 종교가 있더라도 구태여 그것을 버리려고 하지도 않는다. 미국의 어느 불자는 이런 분위기를 자신의 책, ‘어, 이상한데, 당신은 불자같이 보이지 않는데’(It’s Funny, You Don’t Look Buddhist)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저자는 유태인이며, 심리학 교수이고, 집안 전래의 유대교 의식을 따르며 살고 있는 여성 불자이다. 전통적인 불자의 생활방식과는 다르나 “나는 당당한 불교도”라는 주장을 읽을 수 있다.

 

▲이민용 원장

우리는 스스로 불자인 것을 어떤 방식으로 주장하는가? 어느 사찰 소속 신도이므로? 나처럼 어느 스님을 좋아해서?  어느 것 하나 불자성을 확인하기에는 석연치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재가에 있으면서 불자 노릇 한다는 일이 이렇게 어렵고, 자기 정체성을 찾기 힘들다면 승보에 위기가 온 것이 분명하다. 적어도 불교 현장에서는 말이다. 이제 현대적 불교와 불자의 모델을 서양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지? 환생하실 일타 스님을 생각하며 달마는 또 다시 서쪽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하면서 혼자 짚어본다.  


이민용 한국불교연구원장 minyong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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