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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도윤회 ⑤-인간계2

기자명 서광 스님

인간계는 윤회 고통 근본적 해결 가능한 곳
아상 드러내는 일로 악마 될 수 있음을 유념

지난 호에서 인간계는 행복을 창조하려는 열정과 갈망이 지식, 꿈, 계획,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지적활동으로 드러난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주어진 상황이나 조건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아에 대한 추구, 즉 진짜 자기를 찾아서 계속적으로 방황하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인간계의 특징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인간의 마인드로부터 우리는 어떻게 해방될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문제해결이 절실하다. 왜냐하면 육도 가운데 인간계만큼 행복을 추구하지만 행복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애쓰지만 만족할 수 없고, 자기가 진짜 누구인지 쉬지 않고 질문하고 답을 구하지만 결코 자기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모순 속에서 희망과 좌절, 즐거움과 괴로움의 갈등 속에서 번민하고 괴로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육도 가운데 인간계만큼 희망적인 영역도 없다. 왜냐하면 나머지 다섯 영역과는 달리 인간의 영역에서만이 유일하게 윤회의 고통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계에서는 고통의 근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델로 수행의 동기와 깨달음의 과정, 결과를 아주 풍부하고 세밀하게 설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껏 고통으로부터의 해방과 깨달음의 길을 걸어왔던, 또 현재도 걷고 있고 앞으로도 걸을 무수한 수행자들이 우리 가까이에 실존하고 모범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 주변에는 수행의 모델과 방법론이 넘치고 마음만 먹으면 도처에서 삶의 시련과 고통으로부터 해방할 수 있는 수행처들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수행하고자 하는 간절한 의지가 부족한 것일까? 그건 하루 가운데 우리가 진실로 인간계의 정신세계를 유지하는 순간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축생이나 지옥, 아수라 등의 세계에 머물러있기 때문에 수행하고자 하는 욕구나 의지를 발동할 수가 없다. 즉 아수라와 천상의 상태에 있는 동안은 각각 경쟁심과 황홀감에 탐닉되고 심취되어 변화나 성장, 깨달음과 같은 우리의 정신에너지는 완전히 마취되고 응고된 상태이다. 또 축생의 상태에서는 앞만 보고 돌진하고 있는 상태인지라 타자에 대한 인식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상태에 대한 인지조차 불가능하다. 지옥은 고통과 일체가 되었기 때문에 고통을 알아차리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의지를 일으킬 수 있는 인식의 주체 자체가 고통에 먹혀버린 상태다. 그렇다면 인간계의 정신세계에 있는 순간이 너무 짧기 때문에 우리들 대부분은 수행하려는 의지를 낼 수가 없다는 말인가? 그건 아니라고 본다. 단 한 찰나만이라도 진실로 우리 자신이 처한 삶과 죽음의 현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수행의 씨앗은 충분히 뿌려졌다고 본다.


우리가 인간계의 정신세계에 머무르는 순간에도 진실된 수행의 의지를 일으키지 못하는 것은 마크 엡스타인이 말했듯이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데 가장 큰 장애가 되는 두 가지 요소와 관련이 있다. 즉 우리가 되고 싶어하는 이상적인 자아상을 갈망하고, 실제로 ‘자기’라고 믿고 주장하는 아상(我相)을 드러내는 일에 온 열정을 쏟아붇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우리는 원치 않는 자신의 모습이나 특성을 숨기고 억압하고 부정하는 일에 우리의 온갖 지식과 노력을 동원하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에 부합한다고 믿는 대상을 추구하고 갈망하면서 무던히 노력하고 성취하지만 끝내 만족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원하는 이상적인 자아상이 진짜 자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인정하고 싶지 않는 자기모습을 숨기고 부정하고 변명하는 일에 평생을 바쳐서 씨름해도 스스로를 속이지 못하기 때문에 자아에 대한 진정한 믿음이나 프라이드를 가질 수가 없다.

 

▲서광 스님
그래서 인간계의 정신세계는 자기가 원하는 자아상을 전면에 앞세우고 원하지 않는 자아상을 제거하는 일로 항상 분주하고 혼란스럽다. 그리고 수고하면 할수록 전자는 가면이 되고, 후자는 악마가 되어 스스로를 괴롭히고 공격하는지도 모른다.
 

서광 스님 동국대 겸임교수seogwang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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